신시에서 제작한 렌트(Rent)의 한국어 공연을 몇번 봤는데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도대체 한국인 스탭과 배우의 연출과 연기가 모자란건지, 아니면 문화적인 차이로 한국어로 공연하는 것이 힘든 작품인지, 혹은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내가 미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을 이해하는게 불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다. 그냥 항상 남의 얘기 보는 느낌이었다. 하긴 대부분 공연이 그렇겠지만…렌트는 이질감이 좀 더 심했다.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은 원어민 공연 1순위는 항상 Rent였다. 때마침 미국 출장 기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Rent의 전미투어 공연을 하는데, 그냥 투어도 아니라 아담 파스칼, 앤소니 랩, 그웬 스튜워트 같은 초연 멤버 (‘오리지널’멤버)에다 브로드웨이 막공 멤버들도 다수 포함된 이번 캐스팅은 진정한 브로드웨이 레벨의 투어라 (Rent, the Broadway tour란 투어명을 붙였다) 한국에서부터 반드시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으며 지난 주말에 힘겹게 할인티켓을 구해 보고 왔다.
본토 프로덕션이 역시나 대단하구나란 걸 느낀건 미국에서 처음 본 뮤지컬인 Brooklyn (전미 투어) 이후 처음이었다. 그 이후 본 Jersey Boys (전미투어, 샌프란시스코 프로덕션), Legally Blonde (프리브로드웨이 프로덕션) 그리고 Wicked (샌프란스시코 프로덕션)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고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은 Brooklyn과 이번 Rent 정도.
지금 생각해보니 Rent나 Brooklyn처럼 흑인 배우 역할이 큰 작품들에서 한국 공연과의 차이를 많이 느낀 것 같다. 한국 배우들에게서 흑인 배우들의 울림을 듣기 힘들기 때문에.
하여튼, 한국에서 본 Rent와는 정말 다르게 아.. 이 작품의 메시지가 이런거구나란 걸 아주 쉽게, 그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사랑을!’이란 메시지.
지금까지 내가 한국 공연에서 이걸 못느낀건 번역부터 배우, 연출 등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음반으로 듣던 앤소니랩의 그 비음섞인 음색, 아담 파스칼의 깨는 (좋은 의미임) 음색 (톤 자체가 높다), 마이클 맥엘로이의 저음풍만한 콜린스의 넘버들, 이건 뭐 한국어 공연에서는 들어볼 수가 없는 노래였다.
한국 배우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어 공연이나 한국어 음반에서 질르거나 쥐어짜는 고음 부분을 이번 공연의 배우들은 목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실크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매끈하게 처리하는데 입에서 감탄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1922년에 지어진 극장에서 듣는 소리는 서울의 최신 극장보다 잘 지어진 건지, 아니면 음향 기기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오디오로 듣는 것보다도 훨씬 듣기 좋은 소리를 들려주어 공연에 완벽히 몰입하게 해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앤젤이 죽은 후의 씬. 등장 인물이 하나씩 등장하고 사람들의 관계가 맺어지며 이야기가 전개 되는 1막이 끝나면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는 2막이 시작하고, 2막 중간에 앤젤이 떠나고 Tom Collins가 I’ll cover you (reprise)를 부르는데 솔로 부분도 워낙 슬프지만, 이곡의 뒷부분에 후렴구처럼 합창으로 반복되는, 이미 2막 시작할 때 불렀던 Seasons of Love를 배우들이 그 곡을 처음 불렀을 때와 똑같은 위치에 서서 부른다. 단,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앤젤의 자리만 비워둔 채. 비워진 앤젤의 자리 옆에 선 Gwen이 안타까운 눈으로 빈 자리를 보는 모습이 가슴이 아프고 코끝이 찡한 걸 넘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한국어 공연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고맙다. 한국어 공연이 없었더라면 내가 렌트를 이렇게 잘 알 수도 없었거니와 한국어 공연으로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이 원어민 공연에서 감동을 받지도 못했을 터.
역시 Rent는 원어민 공연으로 봐야하는 공연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 못할 것 같다.
Cast
- Roger Davis: Adam Pascal
- Mark Cohen: Anthony Rapp
- Tom Collins: Michael McElroy
- Benjamin Coffin III: Jacques C. Smith
- Joanne Jefferson: Haneefah Wood
- Angel Schunard: Justin Johnston
- Mimi Marquez: Lexi Lawson
- Maureen Johnson: Nocolette Hart
- Mrs Jefferson, etc: Gwen Stewart
ps:
뮤지컬 홍보 문구에서 흔히 쓰는 ‘오리지널 팀’이나 ‘브로드웨이 팀’처럼 애매모호한 표현도 없다. 보통 외국 배우들이 연기하는 뮤지컬의 내한 공연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데 마음에 안드는 부정확한 표현이다. 워낙 애매한 표현인데 누가 무슨 의도로 쓰기 시작한 표현인지 모르겠고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중인 전미투어팀이 몇 주전 한국에서도 공연했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부터 함께 한 두 주인공과 또 한명의 브로드웨어 오리지널 (초연) 배우를 포함하고 있고 브로드웨이 초연 연출가가 연출한다는 점에서 ‘렌트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이란 표현을 쓰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틀린 표현이지만).
‘오리지널’이 무서운(?) 점은, 연출과 작가가 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기 때문에, 혹은 배우 그 자신이 자신의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가기 때문에, 후에 누가 그 역할을 하더라도 그 원조 배우만큼 잘 하기 어렵다는 것 같다. 앤소니 랩은 마크 그 자체가, 아담 파스칼이 라저 그 자체가 되는 것처럼.
2009년 10월 10일 오후 2:00
Curran Theatre, San Francisco
Lowbox F Row, 1 USD 30 (시야방해석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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