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헬스키친>을 세 번이나 보고 쓰게 되는 후기:
맨하탄 플라자에서 우연히 만난 피아노 선생님이 주인공인 앨리에게 자신의 뿌리와 음악의 즐거움을 깨우쳐 준다는 것 때문에 이 작품의 핵심 서사는 스승-제자 사이의 관계인 것 같다. 물론 모녀 관계 역시 중요하지만 이 작품이 소녀의 성장 스토리인만큼 스승-제자 서사가 더 중요해 보인다.
<헬스키친>을 세번째 보며 이 작품이 크게 와닿지 않은 이유를 깨닫게 됐는데, 이 핵심 서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 앨리와 아버지의 관계는 If I ain’t got you를 함께 부르는 짧은 씬만 봐도 딱 와닿는 데 반해 엘리와 선생님의 관계는 그저 앨리와 라이자의 직접적으로 표현한 내용 외에는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 원인은 라이자 선생님이 가르친 게 미국 흑인의 뿌리와 현실, 그럼에도 세대를 이어 유산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이해는 해도 공감은 못 하는 이야기. Perfect ways to die에서 얘기하는 여러 흑인들의 죽음이나, 흑인 여성 피아니스트인 플로렌스 프라이스, 마가렛 본즈, 헤이젤 스캇의 계보를 이어가야 한다는 내용에 한국인 중년 남성인 내가 얼마나 공감을 하겠나.
그래서 이렇게 바꿔 생각해봤다. LA 코리아타운에 사는 앨리는 아빠가 한국계 미국인, 엄마가 미국 백인이란 설정. 싱글맘인 백인 엄마는 앨리에게 코리아타운이 위험하다고 집-학교만 돌아다니라고 하지만 앨리는 길에서 친구들과 K팝 랜덤댄스 추는게 너무 좋은 거야. 그러다가 동네에서 우연히 한국인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 20세기초 한국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고생하며 일하다가 LA로 이주한 이야기며 힘들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며 불렀던 아리랑 같은 한국 전통 음악 얘기를 들으며 엄마에게선 배우지 못 했던, 그리고 앨리 본인도 몰랐던 한국인의 음악적 정서와 역사를 깨닫고 배우는 이야기. 이런 내용이면 나 같은 사람에게도 얼마나 와닿겠는가? (공연은 뉴욕시티가 아니라 마지막은 LA찬양으로 끝나겠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록 현재의 <헬스키친>은 가까워지기 어려운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다른 앨리 배우들이 더 보고 싶었지만 이날 공연을 본 이유는 보지 못한 캐스트인 최현선, 한승윤 배우 때문. 저지 역의 최현선 배우는 이 날 아쉬운 몇몇 장면이 있었다. 넉의 곡은 꽤 까다로워 박광선, 한승윤 배우 모두 제대로 소화하지는 못했는데 박광선 배우가 조금 낫게 느껴지기도? 다시 본 주인공 역의 박지원은 이번에도 잘 했다. 모자란 부분이 조금씩 보였지만 아쉬울 정도는 아니다.
번역은 여전히 아쉬웠다. 앞 선 두 번 관람에서는 몰랐던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가 이번엔 겨우 들렸다. 이렇게 원어 쓰는 가사 너무 내 취향 아님. “Let it go” 수준으로 널리 알려진 파트만 그대로 두길.
예전엔 오프닝 곡인 The Gospel만 좋았는데 이번에 보니 2막 오프닝인 Heartburn 역시 좋더라. 우퍼 강하게 쓰는 곡들에서 댄서들 춤추고 싱어들 합창하는 씬들 멋있음. 이번에 깨달았는데 “She’s on fire”는 거의 이하은 배우 혼자 부르는 곡이었음. 노래 상당히 잘 하신다.
커튼콜이 지난 공연들이랑 좀 변경된 것 같다. “Empire state of mind”를 관객과 다시 부르며 끝나는 씬으로. 그런데 가사를 “뉴욕 뉴욕” 밖에 몰라서 다들 영어로 어버버버하는 분위기. 이래서 가사는 한국어야 한다니까.
좌석
로터리로 VIP석을 뽑아 받은 좌석은 좌블 6열 통로에 가까운 좌석. 배우 표정도 잘 보이는 편. 지금까지 본 좌석 중 가장 좋았다. 중블 6열 정도면 바랄 게 없겠다.

이날 특이한 관크를 당했는데
- 1막 끝 쯤 (진지한 씬이었음) 내 옆에 여자들이 킥킥대며 웃는데, 몸까지 떨며 웃어서 내 의자까지 계속 흔들렸다. 처음에는 누가 다리를 떠는 줄 알았는데 옆에 여자들이 숨 넘어갈 듯이 웃어서 그런 것..
- 내 앞에 생수병을 가지고 들어와서 물을 마시며 공연을 보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마지막 넘버인 “Empire state of mind”때 그 생수병을 응원봉처럼 흔들었다. 선생님, 그러면 저는 무대가 안 보인다고요…
2026년 9월 10일 (목) 오후 7시 30분
GS아트센터 1층 A블록 6열 9번
VIP석 9월 로터리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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