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키친을 이틀 연속으로 봐서 후기를 모아 쓴다. 두 차례 모두 로터리 티켓으로 봤다.
공연 후기
뮤지컬 <헬스키친>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앨리샤 키스 Alicia Keys의 음악으로 만든 쥬크박스 뮤지컬로, 90년대 뉴욕 헬스키친 지역의 맨하탄 플라자 Manhattan Plaza란 아파트에 사는 청소년 앨리의 성장기이다. 맨하탄 플라자는 연방 정부 지원으로 조성된 대규모 예술가 전용 주거 단지로, 상당수 세대를 연극·음악·무용 등 공연예술에 종사하는 저소득 예술가들에게 우선 배정했다고 한다. 건물 전체가 예술가로 채워진 곳에서 자란 아이가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 없다. 그중에서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흑인 선생님 라이자 제인 Liza Jane에게 배운 피아노와 가르침은 앨리가 훗날 음악가가 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다. 정작 가수가 되는 이야기는 극에 나오지 않지만, 이 작품이 앨리샤 키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란 점에서 주인공인 앨리는 이후 음악인의 삶을 살 걸로 예측할 수 있다.
앨리는 싱글맘인 엄마 저지와 산다. 이 백인 엄마는 흑인 뮤지션과 결혼해서 앨리를 낳고 이혼한 상태. 엄마는 딸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앨리가 위험한 이웃과 어울리지 않고 집과 학교에만 머물기를 바라지만, 한창 사춘기인 딸이 그 말을 들을 리 없다. 동네의 건실한 청년 넉을 좋아해 쫓아다니다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엄격한 엄마 때문에 연애는 실패로 끝나는데, 앨리는 그 과정에서 인종 차별을 바로 곁에서 간접 경험한다. 피아노 선생을 통해서는 음악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 앞선 흑인 음악인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는 본인을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통제하려는 것이란 것도 깨닫는다. 이런저런 사건을 통과하며 한 뼘 자란 앨리가 마침내 자신의 뿌리인 맨하탄 플라자와 헬스키친의 도시 뉴욕을 찬양하며 극은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보는 내내 조나단 라슨의 <틱틱붐>이 떠올랐다. 떠벌이처럼 말 많은 주인공이 뉴욕에 살면서 방황을 하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이 겹쳐서였을 것이다. 물론 <틱틱붐>은 본인의 꿈을 이미 아는 서른을 앞둔 주인공이 마음을 다잡는 내용인 반면, <헬스키친>은 본인의 꿈이 뭔지도 모르는 십대 아이가 대략 감을 잡는 내용이지만.
이 블로그에 몇 번 쓴 이야기지만, 나는 흑인 음악이 나오는 한국 뮤지컬은 잘 보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 배우가 흑인의 소울을 제대로 살리는 걸 좀처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배우들이 그 많은 곡을 훌륭히 소화했지만, 몇몇 곡은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흉내에 그친다는 인상이었다. 그런 가운데 앨리의 아버지 역을 맡은 케이윌과 테이는 소울과 그루브가 관건인 R&B와 소울 곡을 예상보다 훨씬 잘 살려냈다. 역시 가수는 다르구나 싶었다. 앨리 엄마 저지는 주조연 중 유일한 백인이어서인지 배역의 넘버들이 벨팅에 강한 한국 배우에게 잘 맞았다. 실력있는 배우인 박혜나는 가창력 폭발. 이 두 캐릭터가 함께 부르는 Fallin이 가장 좋았던 넘버 중 하나.
주인공 앨리는 대사도 많고 노래도 까다로운 역이다. 아이돌 프로미스나인 출신 박지원은 우려와 달리 제 몫을 해냈고, 다음 날 본 김수하 역시 아주 잘, 그러면서도 넘치지 않게 소화했다. 둘 다 무척 귀여운 사춘기 소녀였고 힙한 의상도 잘 어울렸으며 댄서 앙상블과 함께 추는 춤도 좋았다. 공연 막바지에 엄마와 화해를 하며 듀엣으로 부른 No One이 무척 좋았다. 첫날 공연에서 박지원 씨가 목이 살짝 매는 것 같아 오페라 글라스로 보니 엄마인 박혜나 씨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곡.
내 기준에서 아쉬운 건 연출이다. 댄서 앙상블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 무대는 화려했지만 몇몇 곡에선 앙상블의 코러스 볼륨이 큰 편이고 가사도 잘 들리지 않아 앨리의 솔로곡을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무대 전체는 뮤지컬의 여러 요소가 잘 어우러져 좋았지만 내가 가창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도 오프닝 넘버 격인 The Gospel의 그루브와 분위기는 단연 최고였다. 아프리칸의 박동을 듣는 듯한 리듬 위에 얹힌 음악도, 그 위에서 움직이는 댄서들의 춤도 좋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씬이 몇 개 있었지만 이 씬이 최고.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에서는 느껴지는 그루브와 리듬감이 다른 곡에서는 이 만큼 잘 느껴지지 않았다.
뮤지컬 <헬스키친>의 극은 크리스토퍼 디아즈 Kristoffer Diaz, 곡과 가사는 앨리샤 키스 등이 썼다. 극 중에서 내가 들어본 앨리샤 키스의 곡은 If I ain’t got you와 Empire state of mind 정도 있었고 나머지는 다 모르는 곡들. 앨리샤 키스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쯤 볼만할 듯.
로터리 티켓
뮤지컬 헬스키친 Hell’s Kitchen은 볼지말지 고민하던 공연이었다. 앨리샤 키스의 음악으로 만든 쥬크박스 뮤지컬인데 난 엘리샤 키스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끌릴 리가 없었다. 김수하 배우가 주연이란 점 정도가 이 작품을 보고 싶은 유일한 이유.
흥행이 잘 안 되는지 개막 2주만에 1주일 간 로터리 티켓을 5만원에 판매한다는 공지를 봤다. 최근에 흔히 보던 온라인 추첨 방식과는 달리 현장에서 뽑기를 하는 방식이다. 최대 50팀에게만 로터리 티켓을 팔기 때문에 극장에 가서도 할인 티켓을 구하지 못 하는 리스크가 있지만 나처럼 무계획한 사람에게는 당일 표를 싸게 구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는 방식이다. 마침 로터리 티켓 시작일이 내가 휴가를 낸 날이어서 일찍 극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로터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됐다.
- 상자에 담긴 노란 공들 중 하나(VIP, R, S 석 중 하나)를 뽑기
- 해당 등급 좌석을 최대 4매까지 결제
- 좌석은 알아서 지정해주는데 해당 등급 내에서 (매표소 직원 판단으로) 좋은 좌석부터 주는 걸로 보임.
첫날 나는 R석이 당첨됐고, 1층 중블 제일 뒷자리 정중앙 자리를 받았다. 그런데 이 날은 박지원의 공연이었다.
수하 공연 안 보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아서 바로 다음 날 다시 GS아트센터에 갔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가느라 늦게 도착했더니 로터리 상자에는 공이 단 두개 남아 있었다. VIP석을 뽑았고 좌석은 좌블 14열 통로석을 받았다. 가격 생각하면 완전 혜자 좌석.
GS아트센터 좌석 시야
로터리티켓 R석으로 받은 중블 16열은 무대가 정중앙으로 보이고 단차가 있어 전체 무대를 보기가 좋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얼굴을 제대로 보려면 오페라 글라스를 써야했다. 2층 아래 자리라 위가 막혀 있는데 베이스 울리는 음이 매우 잘 들렸다.
로터리티켓 VIP석으로 받은 좌블 14열 10번 봐석은 복도석이라 시야방해없이 무대가 잘 보였고, 오페라 글라스 없이도 어느 정도 표정까지 보이는 쾌적한 좌석이었다. VIP석의 마지노선 느낌. 앨리의 엄마가 밥을 철저히 챙기는데, 앨리와 엄마가 밥 먹는 씬이 무대 좌측에서 진행돼서 좋았다.

브로드웨이에선
2024년 4월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해서 2026년 2월에 공연을 마쳤다. 2024년 토니어워즈에서 앨리 역을 맡은 말레아 조이 문 Maleah Joi Moon이 여우주연상을 , 미스 리자 제인 역의 케시아 루이스 Kecia Lewis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말레아는 갖 스물 넘기고 수상한 것. 대단하다.
2026년 08월 11일 (화) 오후 7시 30분
GS아트센터 1층 B블록 18열 6번
VIP석 여름방학 로터리티켓 50,000원
2026년 08월 12일 (수) 오후 7시 30분
GS아트센터 1층 A블록 14열 10번
VIP석 여름방학 로터리티켓 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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