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ognito 내한 공연 – 올해 본 공연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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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무대 위로 인코그니토의 리더 블루이 Bluey가 홀로 걸어 나왔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왼손이 마비되어 더 이상 직접 연주는 할 수 없지만, 머리와 가슴은 아직 살아 있다고. 인코그니토도, 블루이도 깊이 알지 못하지만 일흔을 앞둔 밴드리더의 이야기는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밴드가 무대에 들어오며 공연이 시작했다. 인코그니토는 리더 블루이 외의 멤버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는 유튜브에서 자주 보던 멤버들이 거의 그대로 와 있었다. 반가웠다. 블루이는 확실히 안 좋아 보였고 쉐이커와 약하게 보컬을 넣는 정도만 할 수 있었지만 중간 중간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공연은 스탠딩이 아닌 GS아트센터의 좌석 공연이었다. 인코그니토의 음악을 과연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런데 공연 중반, “1993”이 흘러나오는 순간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관객을 일으켜 세웠고, 그 이후로는 모두 서서 박수 치고 춤추며 끝까지 달렸다. 앉아서 워밍업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함께 일어나는 흐름. 영리한 구성이었다. 스탠딩 공연이었다면 나는 예매를 안 했을 수도.

티켓 오픈 때 좋은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취소표를 잡아 OP 1열 중앙에 앉았는데 예상보다 무대에 너무 가까운 자리. 왼쪽의 기타와 오른쪽의 베이스를 한눈에 담으려면 고개를 쉼 없이 좌우로 돌려야 했다. 무대를 넓게 쓰는 빅밴드 공연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중간 자리가 낫겠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공연이 스탠딩으로 바뀐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제일 앞줄이라 밴드 멤버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고 교감하며 놀 수 있었으니까.

블루이는 공연 중간 중간 곡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975”를 연주하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1975년, 산타나 티셔츠까지 챙겨 입고 산타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오프닝 밴드로 나온 Earth, Wind & Fire를 처음 접했고, 그날 이후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인코그니토 음악에서 혼 섹션을 풍성하게 쓰는 것, 건반을 두 대씩 두는 것, 그런 것들이 모두 EWF의 영향이라고 했다. 마침 내 뒷줄에 인코그니토 티셔츠를 맞춰 입고 온 커플이 있어서 산타나 티셔츠 얘기를 할 때 그들을 돌아봤더니 그 분들도 뿌듯해하고 있었다. “1993” 연주를 앞두고는 이날 건반을 치던 치코 Chicco Allotta가 처음 블루이의 스튜디오를 찾아와 피아노 앞에서“인코그니토의 1975에 영감을 받았다“며 연주한 곡이 단번에 마음에 들어 앨범에 싣자고 한 곡이 바로 “1993”이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Hats”를 앞두고는 “Don’t You Worry ’bout a Thing”이 다음 곡인지 알고 스티비 원더의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하는 실수도 있었다. 기타리스트 찰리 앨런 Charlie Allen이 다가와 귓속말로 알려준 뒤에야 블루이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주위에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며 웃음으로 넘겼다. 라이브의 묘미.

곡 이야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블루이의 포용에 대한 메시지였다. 혐오와 이기심이 넘치는 이 시대에, 음악과 사랑으로 서로를 포용하자는 이야기. 한 평생 음악을 한 현인의 혜안으로 들렸다. 또 울컥했다. “Still a Friend of Mine”을 부를 때는 관객을 두 파트로 나눠 합창을 시켰다. 다 부르고 나서 서로가 어땠냐고 물었는데 다들 “훌륭했다”라고 대답했다.(나는 눈치 없이 “상대 파트가 기대보다 못했다”고 해버렸다. ㅋㅋ) 블루이는 이렇게 다른 사람을 친구로 여기고 이해하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인지 인코그니토의 멤버들은 다국적 연주자로 구성돼 있다.

인코그니토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이맘 때. 25년 서재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알아보기 위해 곡을 찾아 들었었다. 토요일에는 인코그니토, 일요일에는 타워오브파워 Tower of Power 공연이 있었는데 인코그니토보다는 타워오브파워 음악이 더 내 취향이라 일요일 공연을 보러 갔었다. 그 이후 유튜브 쇼츠에서 “1993”의 연주 영상이 떠서 다시 한 번 인코그니토의 연주에 매력을 느꼈다. 이렇게 알게 된 밴드라서 곡을 많이 알지는 못 하고 공연 예습하기 위해 여러 곡을 들어봤을 뿐이다. 공연에서 연주한 곡들은 대부분 들어본 것이었고, “Colibri”, “1993”, “Running Away” 같은 최애곡이 모두 셋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셋리스트에는 아는 곡과 모르는 곡이 섞여 있었지만, 모르는 곡들도 훅 정도는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전부 신나는 곡들이었다. “1993”은 계이름이 가사인데 내가 아는 부분은 “솔파미” 밖에 없었지만 신나게 따라한 ㅋㅋ. 블루이가 깜빡하여 스킵할 뻔 했던 “Hats”는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집에 와서 찾아 들어보니 엄청 좋더라. 미리 알았으면 바로 내 2미터 앞에서 노래한 토니 몸렐 Tony Momrelle의 보컬을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보컬 곡이든 연주 곡이든 전부 소울과 그루브가 살아 있었다. 스튜디오 앨범보다 훨씬 댄서블하게 느껴져 애시드 재즈의 재미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단순한 연주 감상이 아니라, 모두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좋은 메시지까지 받아 온 공연. 올해 본 공연 중에 단연 최고였다.

Set List

보통 공연을 봐도 셋리스트를 모르지만 이날은 스탭이 공연 후에 바닥에 붙어있던 셋리스트를 떼서 관객에게 나눠주셨다. 마침 내 오른편 여자 분도 셋리스트를 한 장 받으시길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1. Nothing Makes Me Feel Better
  2. Running Away
  3. Talkin’ Loud
  4. Good Love
  5. Labour of Love
  6. Reason to Love
  7. Still a Friend of Mine
  8. Colibri
  9. Supersonic Lord Sumo
  10. 1993
  11. 1975
  12. Hats
  13. Don’t You Worry ‘Bout A Thing
  14. As
  15. Everyday
  16. Always There
  17. Nights Over Egypt

2026년 5월 13일 (수) 오후 7시 30분
1층 OP구역 1열 13번
R석 132,000원

엔딩곡이었던 Nights over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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