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무대 위로
2001년에 나온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를 좋아했다. 극중에 나오는 노래인 Your Song과 Come What May도 참 좋아해서 여러 번 혼자 부르곤 했다. 영화 물랑루즈는 무척 화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독자적인 곡이 없고 서사가 아쉬워 공연으로는 만들어지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 잘해봤자 1시간짜리 라스베가스 쇼라면 모를까.
하지만 예상 외로 무대 뮤지컬로 만들어져 2019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2020년엔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한 여러 부문에서 토니상을 수상했다. 그런데도 보고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쥬크박스 뮤지컬을 안 좋아해서. 또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클립을 보니 예상했던 대로 화려하기만 한 것 같아서.
그러다가 연말이 기한인 복지비를 써야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에서 지금 공연하는 뮤지컬 중 끌리는 게 없더라. 고민하다가 매진을 부르는 홍광호 회차인데도 마침 자리가 남아있는 물랑루즈를 골랐다.
공연을 보고 나서
- 줄거리는 영화와 거의 같다. 프랑스 파리의 물랑루즈 클럽 쇼걸인 사틴은 클럽을 살리기 위해 돈많은 공작을 물주로 물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온 보헤미안 크리스티앙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 극장 내부의 화려함은 역대급이다. 뮤지컬 관람을 하러 극장에 와 있는 게 아니라 파리의 물랑루즈에 와 있는 느낌을 주려했던 것 같다. 극장 대기실의 포토존도 무척 화려하여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엄청나게 길다.
- 이 공연은 프리쇼란 이름 하에 공연 시작 전 신사들과 클럽걸들이 무대에서 어슬렁 거린다. 역시나 뮤지컬이 아니라 물랑루즈 클럽에 와 있는 경험을 주기 위함. 난 당연히 무대 위의 여배우들을 관심있게 봤는데 ^^ 이 때가 가장 섹시. 공연 동안엔 이 섹시함이 다 어디간 거지?
- 일반적인 쥬크박스 뮤지컬과는 달리 팝의 매쉬업으로 뒤덮인 공연. 그래서 다른 쥬크박스 뮤지컬에서 느껴지는 진부함이 없다.
- 첫 넘버 Welcome to the Moulin Rouge. 공연이 시작되며 흥겨운 곡의 매쉬업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이 오프닝 씬은 유튜브로 많이 봤는데 현장에서의 느낌이 훨씬 좋다. 앙상블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연주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건 아쉽다. 공연 초기라서인지 앙상블간의 합도 조금은 안 맞는다.
- 이 공연의 많은 곡들이 팝의 매쉬업이라서 한국어로 번역을 했을 때 유명한 멜로디와 가사를 듣는 즐거움과 가사의 맛이 좀 안 사는 문제가 있다.
- 익히 알곤 있었지만 홍광호 배우는 노래 정말 잘 한다. 정말 정말 잘 한다. 성대를 갈아 끼우며 노래한다는 표현처럼 여러 음색을 사용한다. 크리스티앙과 사틴이 너무 금사빠란 의견도 있는데, 홍광호 크리스티앙이 Elephant Love Medley씬에서처럼 옆에서 노래해준다면 나라도 사랑에 빠질 듯.
- 홍광호가 노래를 잘 하지만 좀 더 팝스러운 곡을 잘 부르는 배우가 있다면 크리스티앙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 다른 배우들은 아쉬움이 조금씩은 있었지만 홍광호와 정원영은 완벽했다. 정원영은 꼭 무대에서 한 번 보고 싶은 배우였는데 이 기회에 보게됐다. 영화 인더하이츠를 보고 국내 공연 영상을 찾아보다 알게 된 배우.
- 지우 사틴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1막 중간 Fireworks에서는 음정 자체가 잘못된 느낌. 후렴에서 폭발하듯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악을 쓰는 것처럼만 들렸다. 브로드웨이 공연 실황 녹화본에서 OBC Original Broadway Cast 인 카렌 올리보 Karen Olivo가 부를 때도 조금 이상하게 들리긴 한다.
- 지우 사틴의 큰 문제는 춤. 뻣뻣하게 느껴진다. 10년 전 렌트에서 미미할 때도 이러셨지. 다이아몬드 형상의 무대 위에 올라가서 춤출 때는 긴 치마를 밟을지, 발을 헛디딜지 걱정해서인지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이 나왔고. 브로드웨이 공연 녹화본의 같은 장면에서 카렌은 아예 치마를 말아 쥐고 춤을 추던데 이렇게 해야할 듯.
- 김지우 배우의 연기는 언제나 훌륭하다. 옷이 커 보일 정도로 너무 말라서 2막의 아픈 역을 할 때 더 와닿았다.
- Finale에선가, 홍광호 배우 혼자 노래하는데 측면열인 내 자리에선 배우가 1도 안 보이고 노래만 들렸다. 측면이지만 15만원짜리 R석인데 시야방해의 정도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한국 극장 좌석의 이런 문제에 대해선 예전에도 투덜거린 적이 있는데 개선이 안 된다. 시야 방해석은 훨씬 할인해서 팔아야 한다고 생각.
뮤지컬 넘버
앞서 말했듯이 많은 곡들이 팝의 매쉬업과 메들리로 만들어져있다. 팝을 많이 듣지 않는 내 귀에도 익은 곡들이 많다. 이 곡들을 많이 알면 알 수록 뮤지컬은 재미있을 것이다. 각 넘버별로 매쉬업된 곡들이 영문 위키피디아에 정리돼 있어 옮겨본다. †표시된 곡은 2001년 영화에도 나왔던 곡이고 나머지는 새로 추가된 곡들.
1막
- Welcome to the Moulin Rouge!: Lady Marmalade†/Because We Can/Galop Infernal/Amores Como El Nuestro/Mr. Big Stuff/So Fresh, So Clean/Money (That’s What I Want)/Ride wit Me/Burning Down The House/Walk This Way/Where It’s At/Let’s Dance/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
- Bohemian Ideas: The Sound of Music†/I Don’t Want To Wait/Every Breath You Take/Never Gonna Give You Up
- Truth, Beauty, Freedom, Love: Royals/Children of the Revolution†/We Are Young
- The Sparkling Diamond: Diamonds Are Forever/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Material Girl†/Single Ladies (Put a Ring on It)/Brick House/My Lovin’ (You’re Never Gonna Get It)/Jungle Boogie/Diamonds
- Shut Up and Raise Your Glass: Shut Up And Dance/Raise Your Glass/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 Firework
- Your Song†
- So Exciting! (The Pitch Song): Milord/La Vie en rose/Habanera (L’amour est un oiseau rebelle)/Galop Infernal†
- Sympathy For The Duke: Sympathy For The Devil/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Gimme Shelter
- Nature Boy†
- Elephant Love Medley†: One More Night†/Pride (In the Name of Love)†/Play the Game/Love Hurts/Take On Me/It Ain’t Me Babe/I Love You Always Forever/Love is a Battlefield/Don’t Speak/Everlasting Love/What’s Love Got To Do with It/Fidelity/Can’t Help Falling In Love/Torn/Such Great Heights/Up Where We Belong†/Heroes†/Your Song/I Will Always Love You
2막
- Backstage Romance: Bad Romance/Tainted Love/Seven Nation Army/Toxic/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 Come What MayҠ
- Only Girl In A Material World: Only Girl (In the World)/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Material Girl†
- Chandelier
- El Tango de Roxanne†: Roxanne/es:Tanguera/Chandelier
- Crazy Rolling: Crazy/Rolling in the Deep
- Your Song (Reprise): Come What May/Your Song/Heroes
- Finale (Come What May): Come What May/Lady Marmalade
- More More More!: Lady Marmalade†/Hey Ya!/Because We Can/Bad Romance/What’s Love Got to Do with It/Crazy/Galop Infernal†



2022년 12월 21일 (수) 19:30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1층 3열 42번
R석 1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