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연을 봐도 중간에 조는 우리 와이프, 이번 미스사이공을 보면서는 “졸린데 재미있어 잘 수가 없어!”라며 한순간도 안 졸았다. 몇년 동안 본 공연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최근에 공연을 보러 가면 항상 제 3자의 입장에서 무대 위의 공연을 지켜 보는 느낌이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열정적인 연기를 하더라도 대형 유리막이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것처럼 그 열정과 열기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공연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봐서 그렇구나란 생각을 하기도 했고.
이 공연도 처음엔 비슷했다. ‘드림랜드’를 무대로 한 첫씬(비디오링크)부터 엔지니어역의 김성기 씨 목소리는 전반적으로 낮게 설정된 마이크 볼륨 때문에 잘 안들렸고 킴 역의 김보경씨가 내는 앵앵대는 목소리도 익숙치 않았다. 특히 크리스 역을 맡은 마이클리의 어색한 우리말 발음은 공연에 집중하는 걸 무척 어렵게했다. 마이클리의 한국말은 뭐랄까, 울렁거린다고 표현해야 할까? 높낮이가 파도 같은 억양의 한국말.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마 Sun and moon (비디오링크. 마이클리의 한국어 들어보시라;;) 정도부터? 점점 극에 몰입하기 시작됐다. 갑작스럽게 서로 없으면 못살 듯이 구는 주인공 남녀의 관계 진전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아름다운 넘버 Sun and Moon때문이었으리라. 노래 모임에서 직접 불러봤던 노래였기에 가사와 주인공의 감정이 내 가슴에 좀 더 와 닿았으리라. 그리고 그 감정의 전이는 The Last night of the world에서 극대화됐다.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곡은 남녀가 화음을 넣어 부르는 사랑 테마.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을 고른다면 단연 미스사이공의 The last night of the world다. 듣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곡. 앞선 댄스 장면 (The Dance)에서 색소폰으로 연주되는 이 곡의 멜로디만 들어도 짜릿짜릿해진다. 김보경과 마이클리는 이 곡을 정말 잘 소화해냈다. 노래 하기가 힘들었을 울퉁불퉁한 계단에서 껴안고 누운 자세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이 곡을 들었을 때 이미 나는 공연에 푹 빠진 상태. 내 자신이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사이공의 한 가운데에서 등장인물들과 같은 느낌을 가진 상태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1막이 끝났다.
2막의 시작은 Bui Doi. 반주 없이 시작되는 웅장한 남성 중창은 인터미션 동안 현실로 돌아온 나를 다시 공연에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슬프고도 안타깝고, 아름다운 드라마. 한국어 라이센스 공연이 성공하려면 원작의 우수함과 한국 프로덕션의 우수함이 동반돼야 하는데 이번 미스사이공은 그 두가지를 완벽하게 충족시킨 공연이었다. 원작의 아름다운 곡들과 비극적이며 감동적인 드라마를 잘 표현한 한국 프로덕션은 기립 박수를 쳐줄만 하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란 걸 알았기에 어떻게 끝날지 예상은 했지만 아이를 위한 엄마의 희생에는 눈물이 흐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찌 이런 작품을 뮤지컬로 구현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배우가 아닌 작품에 감동한 것이 얼마만인가…
김보경씨와 마이클리에게 무한한 박수를. 김보경씨는 킴 역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을 정도. 원래 몇주 전 다른 캐스팅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가 정전으로 그날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다른 날 보러 간 것이었는데 만족스러운 배우들의 공연으로 전화위복이 된 셈. 훌륭한 공연이었다!!!
배우: 김성기, 김보경, 마이클리
2010년 8월 13일 오후 8시00분 (금)
충무아트홀 대극장 R석 1층 15열 26번
지인 통해 30,000원에 구함 (아싸!)
드디어 미사공 후기가!!…진짜 제 강추 캐스팅조합으로 보셔서 다행이에요+_+ 그 캐스팅 조합이 8/15일 이후로는 지금 없다능-_-;; (대신 인천에서는 있지만 ㅎㅎ) 아무튼 마이클 발음이 더 좋아졌어요! 어제 보면서 깜짝 놀랐답니다 으흐흐. 미사공 완전히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보러오세요ㅠ_ㅠ…앞에서 보면 감동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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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공연장 찾기가 쉽지 않네요 ㅠㅠ. 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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