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28 20:00 @ LG 아트센터
스위니토드: 류정한
러빗부인: 박해미
안소니: 이동명
토비야스: 홍광호
일찌감치 예매해 둔 ‘스위니토드’를 보러 LG 아트센터로 향하다. 아내의 급한 출장 때문에 남은 옆자리 표를 미리 연락해둔 분께 양도한 후 자리에 앉았다. 가장 앞 줄. 이거 무서운 스릴러라는데 너무 무대에서 가까운 거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된다 (난 깜짝 깜짝 놀라는 무서운 영화 같은거 매우 싫어함).
철판이 긁히는 듯한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막이 올라가고 공연 시작. 주인공인 스위니토드 역의 류정한, 분장이 아주 그럴 듯 해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이 공연에서 류정한은 완벽한 연기를 해냈다. 류정한씨가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배우인 건 맞는데 노래를 할 때 행복한 표정을 못 짓는다는 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때문에 사랑 관련한 노래를 류정한 씨가 부를 때면 보는 내가 괴로워지곤 했다 – 워낙 오래 전의 일이니 지금은 고쳐졌을지도. 그런데 이 공연에서 류정한 씨가 맡은 스위니토드는 다행히도(?) 행복할 일이 전혀 없다! 그래서 행복을 노래하는 곡을 부를 일도 없다! 세상 모든 것에 악 받힌 배역에 딱 맞는 류정한씨.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 쪽을 보며 “죽여줄까?” 하는데 정말 무서웠다. 최고! 그동안 류정한씨 공연은 되도록 피해왔는데 이젠 좀 찾아 봐야겠다.
류정한씨와 함께 등장한 안소니 이동명. 처음 보는 배운데 검색해 보니 경력이 화려한 팝페라 테너. 류정한 씨 못지 않은 음색을 가졌고, 서구적으로 생긴 외모는 역에 적절했다. 토비야스 역의 홍광호는 연기도 잘 하지만 고음이 굉장히 맑아 박수를 많이 받았다. 공연에 온통 성악도 목소리라서 더 빛이 난 것일 수도… 목소리가 돋보인 배우 또 한 명은 비들 경사 역의 박완. 아, 이 아저씨 목소리 정말 좋더라. 그런데 역이 작은 편이어서 노래가 별로 없어 아쉬웠다 – 찾아보니 이 아저씨도 팝페라 가수다.
보통 공연을 보면 여배우들이 노래를 훨씬 더 잘하고 남자배우들이 노래가 모자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어찌 이 공연은 완전히 반대다. 러빗부인 역의 박해미씨는 완전 실망. 능청스러운 연기는 좋았지만 노래만 부르면 안습. 중간 중간 대사 몇번 씹는 거는 신경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고음 (솔직히 ‘중음’에서 부터 불안했다) 처리가 영 꽝. 아.. 어찌 완벽한 공연에 티를 남기신 건지… 차라리 홍지민씨 (오래 전 풋루스에서 조연할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배우.) 공연을 볼 껄.
1막 끝나고 커텐이 내려오니 주위에서 ‘벌써 90분이 지났어?’라며 웅성웅성. 나에게도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었다. 그만큼 몰입하게 만든 작품. 1막 뿐 아니라 2막 끝날 때까지도 나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는데 이거는 연출(Adrian Osmond)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손더하임의 곡은 굉장히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는데도 전체적인 공연의 무게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제일 앞에서 듣는데도 앙상블 뿐 아니라 독창을 할 때도 가사가 안들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워낙 공연이 좋으니 이런 사소한 부분은 크게 흠으로 느껴지지 않더군. 미국 가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공연을 봐도 공연이 좋으면 감동 먹는 거랑 비슷한 논리. 🙂 몇가지 미흡한 점도 없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별 5개 만점에 5개 주고 싶다.
ps: 제일 앞 줄 좌측열에서 봤는데 우측열이 나을 듯.
우와..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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