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즐거운 경험을 서사했던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이 올해에도 돌아왔다. 올해에는 허비행콕이라는 재즈계의 거장이 초대됐는데, 재즈 퓨전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허비 행콕의 카멜레온은 꼭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허비 행콕의 공연이 있는 서재페 일요일 티켓은 일찍이 매진이 돼서 계속 표를 못 구하다가 공연 몇 주를 앞두고 취소된 티켓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5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올해 서재페. 내가 간 일요일(5/24)의 날씨는 환상적이었고 그만큼 더웠다. 중간 중간 썬크림을 발랐지만 집에 오니 몸 여기저기 시뻘건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무대를 적어본다.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진짜 재즈계의 레전드이신 분. 1940년 생이니 올해 86살. 나이가 나이니만큼 무거워 보이는 키타 Keytar를 못 들 것 같았지만 잘만 들고 연주했다. 앉아서 건반만 쳐도 될텐데 쇼맨쉽이 있으신지 키타를 더 많이 친 거 같고, 관객이 뛰는 걸 보더니 깡총깡총 뛰면서까지 연주하심. 다치실까봐 내가 조마조마 했다.
워터멜론 맨Watermelon Man부터 시작해서 카멜레온까지 약 90분동안의 공연이었다. 하루 종일 거의 계속 서 있어서 발생한 내 체력 이슈와 재즈 퓨전에 대한 불호가 있어 공연 중간엔 좀 힘들었지만, 마지막 곡으로 카멜레온의 그 유명한 베이스라인이 연주되자 나도, 관객도 모두 흥분하여 헤드 부분을 떼창했다. 초메가히트 재즈 곡의 위엄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Rockit도 중간에 다른 곡과 섞어서 연주해줬다. 중간 중간 보코더로 노래도 했는데,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하던 허비 행콕 다웠다.
허비 행콕이 드러머 얘기를 하며 “나보다 몇 살 어린 손자뻘”이라고 농담하자 관객 중 한 명이 “I wanna be your grandson!!!!”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허비 행콕이 사실 본인 손자가 여기 와 있다고 하면서 공연 마지막에 같이 무대 인사까지 했다.
허비 행콕의 무대가 끝나고 스탠딩 존을 빠져나가는데, 뒤에 있던 젊은 여자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다.
- A: 우리가 저 나이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 B: 우리가 저 나이까지 살아나 있을까?
뭘 하려면 건강이 최고다. 특히 얼마 전에 본 인코그니토 공연에서 연주를 못한 블루이(57년생)와 허비 행콕(40년생)을 비교해 보니 더 그렇게 느꼈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인 원곡자가 직접 연주하는 카멜레온과 Rockit을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시마펑크 Cimafunk
난 풩크가 좋다. 허비행콕과 MMW Medeski, Martin & Wood가 재즈펑크를 들려줬지만 가장 즐거운 무대는 시마펑크의 무대였다. 쿠바의 제임스 브라운이란 얘기를 듣는다는 이 쿠반 펑크 아티스트의 무대는 무척이나 신났는데, 그의 무대를 보면서 타고난 엔터테이너란 이런 건가 싶었다. 그의 노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고, 가사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라 분위기를 띄우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시마펑크의 풩키한 음악과 무대 매너 덕에 스탠딩존의 관객들은 다들 신나게 춤추며, 콜 앤 리스폰스까지 하며 놀 수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 곡에서는 스탠딩 존의 관객 중 일부를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해서 같이 노는 장면까지 만들었다. 관객이 무대로 뛰어드는지 알고 보안요원이 달려가 막는 장면은 덤.
밴드 중 테너 색소폰을 부는 일본 연주자가 연주는 자신있게 하면서도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중간중간 익숙치 않은 듯한 행동을 해서 이상했는데, 이번에 참여한 투어 멤버여서 그랬던 게 아닌가 추측된다. Harumo Imai라고 하는데 매력있다.
시마펑크 공연 후 스탠딩 존을 빠져나가는데, 앞에 있던 여자 분이 친구에게 하는 말: “나 쿠바 여행 갈까봐”.
나에겐 올해 서재페 3일차 최고의 무대였다. 마치 작년의 Tower of Power 공연과 같은 임팩트.
한로로
시마펑크 공연 후에 이동해서 보느라 앞 부분은 놓쳤는데 내가 아는 한로로의 두 곡 중 하나인 0+0을 이미 불렀던 것 같다. 아쉽. 마지막에 내가 참 좋아하는 곡인 “사랑하게 될거야”를 부를 때 편곡된 버전으로 빠른 템포로 불러 원래의 그 감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더 아쉽다. 다른 곡들은 내 취향은 아니었기에 편하게 뒷쪽 좌석에 앉아 들었다. 노래보다는 무대 위를 뛰어다니며 발산하는 에너지에 감탄했고, 그걸 보며 뜬금없지만 젊음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꼈다. 귀여운 외모에 매력 있고 젊은데 재능까지 있는 이 가수, KSPO돔의 스탠딩석과 좌석을 가득 채웠다. 한대음 올해의 음악인인 한로로, 벌써 이 정도 거물이 됐구나. 자격이 있다.

Medeski, Martin & Wood
이 분들도 재즈퓨전 하시는 분들로, 공연 전에 미리 예습했을 때 재즈펑크 곡들이 내 마음에 들어서 스탠딩 존 앞쪽에서 듣기 시작했다. 시작 후 몇몇 곡들은 참 재미있게 들었다. 다양한 건반을 연주하는 Medeski의 과감함, 베이스를 힘있게 튕기는 Wood의 당당함, 이것저것 많이 치는 드러머 Martin의 열정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공연이 계속 될 수록 지루해졌고 난해했다. 80분은 너무 길었다. 인스타에 누군가가 “정신병”걸릴 것 같은 (p) 연주라고 표현한 걸 봤는데 딱 공감 ㅋㅋ. 중간에 스탠딩 존을 빠져나와 잔디밭 위에서 앉아 들었다.

윤석철 ARTIFACTION
잔디광장의 첫 무대. 윤석철 씨가 서재페의 메인 무대에 처음 서보시는 거라고 한다. 윤석철 ARTIFACTION이라고 표기된 밴드는 윤석철 트리오에 색소폰, 트럼펫이 추가된 밴드였다. 윤석철 밴드 공연은 거의 항상 내 스타일하고는 안 맞아서 잘 듣진 않는 편인데 이 날 색소폰과 트럼펫 솔로가 추가되니 좀 더 내 취향에 맞았다. 특히 솔로를 받쳐주기 위해 윤석철 트리오가 리듬을 연주할 땐 너무 좋더라. 율음이라는 17살짜리 래퍼가 함께한 곡 몇 개도 선보였다.
트럼페터의 얼굴이 낯이 익어 자세히 보니 스카재즈유닛의 박준규 씨 같았다. 스카재즈유닛에서 무심히 스캥킹을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 무대에서도 다른 분들이 솔로할 때 무심히 춤을 잘 추시더라.

이 외에,
적재, Aron!, Of Monsters and Men 공연을 조금씩 봤다.
적재의 공연은 공연장에서 볼 때는 so so 였는데 집에 돌아와 녹화한 “사랑한대” 영상을 보니 꽤 좋아서 공연장에서 제대로 안 들었던 게 후회된다. 보통은 아티스트 본인보다는 세션들이 박수를 유도하는데 적재는 기타까지 매고 있으면서도 직접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Aron!은 유튜브 재즈기자 영상에서 추천한 공연이라 봤는데, 수변무대란 장소와 잘 어울리는 공연으로 트리오가 소소하게 연주하는 재즈 클럽 공연 분위기. 다만 내가 배민으로 집에 있는 가족들 밥을 주문해줘야 하는 상황인데 폰 데이터를 다 쓴데다가 전파도 안 잡혀 공연 중간 극장을 나가야만 해서 몇 분 못 들었다 ㅠㅠ.
Of Monsters and Men은 허비행콕 공연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들러서 봤다. 내 취향은 아닌 음악이었고, 그 넓은 KSPO돔은 많이 비어있었다. 보통 페스티벌 마지막 공연은 어느 정도 티켓 파워가 있는 밴드가 할 것 같은데 예상 외. 허비행콕 공연을 안 보러 갈 것 같은 밴드를 고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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