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작곡가의 곡으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아니, 그 분 노래는 대부분 사랑 (이별 포함) 노래 아닌가? 사랑 노래로만 어떻게 공연 하나를 채우지?’란 것. 이문세가 부른 이영훈씨 곡 외에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이 부른 노랜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상대로 …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사랑 노래로 가득 차 있었고 다양한 상황에 맞는 넘버들이 필요하단 우려는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노래에 맞추기 위해서 액자 안에서 주인공의 옛사랑 이야기가 계속 회상되지만 그 것만으론 그 많은 사랑 노래를 시작할 기회를 주기엔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극 상황과 맞지 않는 곡들이 다수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가 없고. 극작과 연출의 실패.
이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렸을 때 즐겨들었던 이영훈씨의 – 혹은 이문세의 – 곡들을 노래 잘 하는 배우들의 목소리로 듣는 것만으로 좋았다.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플러스 요인. 작품에 들어간 넘버의 수는 꽤 많았고 노래가 계속 계속 흘러나온다. 뮤지컬이라기보단 스토리가 있는 콘서트의 느낌. 추억의 히트곡들을 들을 수 있기에 지금의 30대 후반이나 40대에겐 먹힐 수 있는 공연일 것이다.
고 이영훈씨 자신을 반영한 듯한 주인공 상훈에는 윤도현씨(과거의 상훈)와 박정환씨(현재의 상훈). 윤도현씨는 10년 전쯤 JCS에서 유다할 때 보고 처음 무대에서 보는 것 같다. 그 때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지. 정환씨는 이 작품에서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배우. 콘서트에 가까운 공연에다 워낙 무대에서 먼 자리라 연기력을 논할 만한 입장은 안되지만 정환씨는 참 마음에 드는 목소리 톤과 노래를 들려줬다. 나이 든 아저씨의, 까칠한 작곡가 캐릭터에 딱 맞았음. 이 두 주역과 리사와 임병근씨, 그리고 비스트의 양요섭군까지 노래는 다 괜찮았다. 광화문연가에서 웃음을 책임진 두 조연 김태한, 구원영씨도 노래와 연기 다 좋았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스토리는 시망이지만 훌륭한 배우들이 훌륭한 노래를 훌륭하게 부르는 훌륭하다고 말하긴 좀 어려운 작품. ㅎㅎㅎ 쥬크박스 뮤지컬로의 완성도는 달고나가 더 낫다. 이런 초연은 좀 더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서 완성도를 높여 큰 극장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
2011년 4월 3일 오후 6시0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층 F열 40번
R석 Daum 문화라운지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