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발레 하는 꼬마에 대한 얘기라는 것 외에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본 뮤지컬 빌리엘리엇 (원래 제목은 빌리엘리’어트’라고 써야 하지만 난 내 맘대로 엘리’엇’이라고 표기하겠다). 공연을 보기 전엔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연 첫 부분에 흑백 필름으로 상영되는 80년대 영국 광산파업 이야기처럼. 그런데 웬걸, 깨알같은 유머로 가득 찬 공연이었다. 줄거리는 인터넷 검색 해 보면 나오고…
일단 애들이 나오는 공연이라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ㅎㅎ. 주인공조차도 어린 아이들. 그래서였을까? 앞쪽 중앙열엔 이모팬들이 몰려 앉아 춤 끝나면 기립 박수를 추더라. 공연 중에 기립 박수 치는 뮤지컬은 처음 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씬은 ‘Solidarity’ – ‘연대’란 뜻인데 음절 수 때문에 ‘하나가되자’라고, 조금은 어색하게 번안됐다 – 장면. 어른들의 파업 데모 현장과 아이들의 발레 학원 현장을 대조시켜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교차 편집을 시켰다. 영상이 아닌 무대에서 이런 연출이 가능하다니. 이 어이 없이 훌륭한,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연출에 완전 감동을 하여 1막 끝나고 트위터에 ‘연출이 천재’란 글을 올렸을 정도.
전체적인 느낌은 별 다섯개 만점에 별 세개 반 정도. 무척 좋았던 1막 후반에 비해 2막이 좀 약하다. 또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냈다는 점은 좋지만 너무 가볍다는 느낌을 좀 받았다. 몰겠다. 차라리 덜 웃겼으면 넘 건조하다가 불만이었을까? -_-; <– 나는야 까도남!
주인공 빌리의 발레 실력도 기대 이하. 아역 배우지만 큰 무대의 주인공이니만큼 성인 수준의 완벽함을 기대했으므로. 발레가 강하다는 세용이나 선우의 공연이 궁금하다. 하긴, 빌리가 최고의 발레 실력을 가진 배역이 아니라 그저 꿈나무 수준의 역인데 내 기대가 너무 컷을 수도 있겠다.
빌리 역의 지명군은 발레 실력 외엔 괜찮았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노래 솜씨도 괜찮았고. 빌리는 좀 반항적인 이미지를 풍기는데 조연 마이클 범준군은 꽤 귀여웠다. 탭이 꽤 괜찮았고 Expressing yourself에서 눈에 뭐가 들어갔는데도 인상 좀 쓰고 눈 좀 비볐지만 맡은 씬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기특. 이 두명의 어린 배우들은 한국말로 얘기하는데도 액센트 때문에 원래 빌리 엘리엇의 배경이 되는 영국 북부 사투리로 들린다. 연출이 의도했던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고도 희안한 일이다.
성인 배우들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어쨌든 제대로 만든 뮤지컬임은 확실하다. Original London Cast 앨범에 겨우 15곡 밖에 없는 걸 보고 극 위주의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공연은 음악으로 꽉 차 있었다.
2010년 12월 24일 오후 8시 00분
LG아트센터 1층 05열 005번
VIP석 130,000원 아버지께 받은 신한카드 초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