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 한국 프로덕션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정식 공연 하루 전, 마지막 프리뷰 공연을 보러 성남아트센터를 찾았다.
살다 살다 이렇게 오케스트라 피트가 인기 있는 공연은 처음 봤다. 인터미션에도, 공연이 완전히 끝난 후에도 나이 좀 있는 관객들이 줄을 서서 국민 스타(?) 박칼린 음악슈퍼바이저가 있는 피트 안을 구경 했다. 1열에 앉아 내 앞을 늘어선 그 순례자 행렬을 보고 있자니 좀 어이가 없었다. 극장 직원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피트 안을 못 들여다 보게 할 정도였다. 커튼콜 때도 박칼린 감독이 주연 배우들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았으니 할 말 다 했음. 공중파의 힘과 박칼린 감독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신시컴퍼니는 예상치 않은(?) 박칼린 감독의 인기가 마케팅에 도움이 좀 되셨는지? ^^
아이다는 이집트 남쪽 누비아란 나라의 공주로 이집트 장군 롸돠메스(조세르 역의 문종원씨가 ‘라다메스’를 발음하는 방법 ㅎ)에게 재수 없이 잡혀 이집트로 이송된다. 당돌한 모습으로 롸돠메스의 눈길을 끈 아이다는 롸돠메스의 약혼녀인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에게 선물로 보내진다. 공주란 자리의 고충을 잘 아는 아이다는 암네리스의 마음을 얻는다. 한편 자유를 갈구한다는 공통점으로 아이다와 라돠메스 사이엔 사랑이 싹 터 암네리스 -> 롸돠메스 <-> 아이다 삼각 관계가 형성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뤄지기 힘든 사랑에 대한 도전과 좌절에 이은 암네리스의 단호하고도 현명한 마지막 판결로 극이 마무리 된다. 꽤 재미있는 스토리라인. 그런데 아내가 이렇게 노예가 장군과 사랑에 빠지는 얘기가 순정만화에 많다고 함. 뭐야, 흔한 얘기였던거야? -_-;
이 공연을 짧게 표현하자면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 몇몇 씬을 제외하곤 무대 장치가 단촐한 편이지만 조명이 엄청나게 화려하다. 게다가 의상은 또 얼마나 멋진지.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My Strongest Suit 씬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이집트 군인들이 입는 라인이 살아있는 현대적으로 해석된 의상도 멋지다. 패션쇼장이랑 비교할 수 있을까, 가요 프로그램과 비교할 수 있을까? 옷 얘기가 나오니 몇년 전에 본 ‘하루’란 뮤지컬의 홍보 영상에서 본 의상이 생각나는구나. 내가 HOT 단복이라고 비아냥 거렸던, 실제로 공연에선 입지도 않던 그 옷들 ㅎㅎ. 하여튼 아이다의 무대든, 조명이든, 의상이든, 하나도 허투로 만들어진게 없었다. 이런 것들이 아이다의 가장 확실한 장점! 디즈니가 이런 쪽으론 워낙 강한데 한국 프로덕션에서 잘 재현했다. 완벽한 무대 예술을 보여줬다.


귀가 즐거웠던 얘기를 하면 일단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피트 바로 앞이라 오케스트라 소리를 제대로 들었는데 박칼린 슈퍼바이저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색 자체가 좋았다(그런데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오민영 음악감독이 같이 들어가 있더라. 공연 올라가고 좀 시간이 지나면 오민영 감독이 지휘 하려나?). 또 MR 공연의 경우 미묘하게 노래, 대사와 반주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라이브 오케스트라여서 그런 경우가 없는 것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배우들의 보컬에는 귀나 가슴이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아마 내가 앉은 OP석의 문제로 추측한다. MR로 공연을 하거나 공연장 측면이나 뒤, 혹은 아래에 오케스트라가 있으면 무대가 가깝기 때문에 와이어리스를 통하지 않고도 배우들의 육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반면 아이다는 무대 전면의 오케스트라 피트가 넓어 1열과 무대 사이의 거리가 좀 멀었다. 스피커에 의존치 않고 배우의 보컬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기에는 먼 거리인데다 배우와 나 사이에는 불을 뿜을 듯한 기세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극장에 설치된 상단의 센터 스피커는 내가 앉은 OP석 1열 중앙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해 배우들의 노랫소리가 계속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힌 것으로 추측한다. 내가 주연 배우들을 다른 공연에서 봤을 때 모두 감동할만한 노래 솜씨를 보여줬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옥주현씨 같은 경우는 몇 달 전 몬테크리스토에서 여린 캐릭터를 참 잘 소화했고 노래 역시 눈물이 날 정도로 잘 했다. 아이다에서는 이와는 달리 드센 캐릭터를 맡아 연기는 잘 했지만 위에 말한 이유로 보컬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아 좀 아쉽더라. 극의 내용과 넘버들을 듣고 보니 브로드웨이에서는 아랍계인 이집트인들은 백인 배우들이, 아프리카계인 누비아인들은 흑인 배우들이 맡지 않았을까 싶다 – 내가 이집트인과 누비아인이 다른 인종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길은 없으나 느낌이 그렇다는 것. 그러면 두 민족의 대비가 선명하게, 갈등 관계는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어쨌든 누비아인인 아이다의 넘버들은 – 특히 “The Gods love Nubia”같은 곡은 전형적으로 – 흑인영가 풍의 곡인데, 암울한 현실로부터의 탈출과 내세에서의 해방의 약속을 노래하는 그 느낌이 잘 안 살아난 듯. 이건 옥주현씨 뿐 아니라 한국의 어느 배우가 와도 못살리는 거고. 파트너인 김우형씨와는 목소리가 잘 안 어울리는 느낌. 차라리 김호영씨와 듀엣을 할 때의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리더라.


김우형씨는 큰 키에서 나오는 자태가 훌늉하시어 롸다메스 장군 역에 딱 맞았고 옷빨도 잘 살았다. 시작과 끝의 박물관 씬에서 입은 하얀 반팔 와이셔츠는 마치 사이공에서 막 돌아온 사람의 의상으로 보였지만. 🙂 영토 확장에만 전념 하느라 사랑같은 건 난 몰랐다는 듯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거친 인상을 쓰며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작인 미스사이공에서 존역을 할 때 노래가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다에선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인 아담파스칼의 깨는 목소리와 비교돼 이질감이 느껴졌다.
정선아씨는 이번 공연에서 제일 만족스러웠던 배우. 선아씨의 노래는 다 좋았지만 시원시원하게 불러 제끼는 My Strongest Suit 씬이 특히 좋았다.

엘튼 존의 음악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조금 조금씩 포함된 곡들이어서 재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Gods love Nubia에선 시인과촌장의 가시나무새가, Elaborate lives에선 송시현의 그림같은 세상이 떠오른다. 번역된 팀 라이스의 가사는 최근 본 금발이너무해, 톡식히어로, 스패머랏의 훌륭히 한국화된 가사에 비해 아쉬운 편. 그래도 전체적으로 뭐 하나 빠지는게 없는 좋은 공연이었는데 보컬이 묻혀 좀 밍숭밍숭한 기분으로 본게 아쉽다. 그래도 마지막의 Elaborate Lives가 reprise 될 때는 찡해졌다는. 조금 더 뒤에서 한 번 더 보고 싶구나.
아, 잊은 옥의 티가 있다. 프리뷰라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긴박해야 할 누비아 왕 탈출 씬은 너무 어설프더라. 오늘 보고 온 어린이 뮤지컬 마법천자문의 칼싸움 씬도 그것보단 낫더라는 ㅜㅜ. 이 훌륭한 공연의 유일한 오점이다.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20:00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1층 OP열 18번
R석 프리뷰공연 20%할인 80,000원
아이다가 보고 싶어지네요. 아- 돈 없는데..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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