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새, 소녀시대 같이 리메이크 된 가요가 원곡보다 좋았던 경우는 드물다. 객관적으로 원곡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귀에 익숙한 곡이 더 낫게 느껴져서일 것이다. Jonathan Larson의 틱틱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고 10년 전쯤 크리스마스 이브에 신촌의 작은 소극장에서 봤던 틱틱붐은 내가 국내에서 본 공연 중 최고로 기억하는 공연 중 하나다.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추억의 작품을 새로운 연출로 다시 봤을 때 더 낫다고 느낄 확률은 어느 정도나 될까?
2010년에 이항나 연출로 돌아온 틱틱붐은 내가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틱틱붐과는 꽤 많이 달랐다. 내가 아는 틱틱붐은 꿈을 향해 손을 뻗고 있지만 손이 꿈에 닿지 않아 괴로워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진지한 이야기인데 그에 비해 2010년 충무로의 틱틱붐은 가볍다. 배우들의 연기는 술에 취한 듯 약간 붕 떠 있어 가라앉은 분위기가 잘 안난다. 원래 재기발랄한 면이 있는 작품이지만 코믹스러움이 강조됐고 진지한 부분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줄었다. 요즘 톡식히어로나 스패멀랏처럼 코미디 공연이 많은데 그런 대세에 따른 걸까?
이번 공연은 의상 체인지가 하나도 없다. 등장인물 세 명 모두 처음 등장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끝까지 간다. 수잔은 ‘Green green dress’에서 그린 드레스를 입지 않는다!!!! (내가 그 그린 드레스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엉엉 ㅠㅠ) 그린 드레스가 없는 ‘Green green dress’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첫공까지 의상이 완성이 안돼서 못입은 걸까?’란 생각을 할 정도. 감칠맛이 살살 나는 이 넘버에서 팔랑팔랑 그린 드레스가 없으니 간 안된 음식을 먹는 기분 (그리고 도대체 이 상황에서 배경에 쏘는 그린 드레스를 입은 윤공주씨의 영상은 뭐란 말인가 orz). 마이클은 디폴트 의상이 부적절하기까지 하다. 맨하탄의 광고회사에 다니는데 수트가 아니라 청바지에 자켓을 입는다. 완전 보헤미안,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끝까지 그 의상 입고 간다.
의상 체인지가 없듯이 소도구도 따로 없이 모든 걸 연기한다. Sunday에선 식탁 없이 식사를 하며, 존의 에이전트 로자는 담뱃대와 모피 없이 거들먹거리고, Sugar를 부를 때는 마이클이 가발과 밀대걸레 없이 노래를 하며, Therapy에서는 전화기 대신 생수통을 들고 통화를 한다. 그래서 나는 배우들이 의상이나 소도구의 도움 없이 고도의 연기력만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연출 의도인가 생각했다. 마이클이 AIDS에 걸린 걸 알고 존이 질주하는 씬을 보기 전까진.
이 씬은 존의 슬픔과 혼란스러움을 다 폭발시키는 장면으로 고요한 가운데 전 관객이 존의 독백에 몰두해 배우의 감정선과 우리의 감정이 동기화 돼야 하는 순간이다. 바로 이 순간 2010년의 틱틱붐에선 무척이나 산만한 영상을 배경에 쏜다. 도저히 배우에게만 집중을 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다른 씬에선 필요한 것들을 다 제거해놓고 이 씬에선 필요없는 걸 넣어놓았다…. 쩝
배우들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다. 강필석, 윤공주, 이주광씨 다 무난하셨다. 배우 개개인은 잘하셨지만 셋 사이의 찐득찐득한 우정 같은 건 표현이 덜 된 것 같고 합창곡에서 다 함께 모아 나오는 소리의 힘도 잘 안 느껴지더라. (뒷구석 자리에서 봐서 그런가?) 첫공이었으니 배우들의 하모니는 점점 나아지리라 생각은 하지만…
10여년 전의 공연이 훨씬 좋은 이유가 내게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그게 실제로 더 나은 공연이여서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음악은 여전히 좋았지만 다른 부분이 너무 많이 달랐다. 아, 이제 내가 30살을 훌쩍 넘어서 그런가? orz
아, 올해 공연에서 나아진 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 ‘슈가 케익’이라고 번역됐던 Twinkie를 ‘쪼꼬바’라고 바꾼 것. 그 신나는 ‘ Sugar’를 들으며 예전엔 ‘좋구나~! 그런데 뭐가 그렇게 좋다는거야?’라고 했으니깐. 😐
2010년 9월 30일 오후 8시 00분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S석 1층 C열 91번
트위터 PlayDB 초대권
연출: 이항나
배우: 강필석, 윤공주, 이주광
나랑 같이 안봐서 그런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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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혼자 보니까 재미없죠.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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