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올라온 김구 관련 뮤지컬이 그냥 그랬었기 때문이었을까? 안중근을 다룬 새로운 뮤지컬 <영웅>이 나왔단 얘기를 듣고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고 동호회 게시판에서 작품이 굉장히 잘 나왔다는 얘기가 나오더라.
이런저런 이유로 공연 끝나기 직전에서야 마지막 날 낮공연을 예매하고 보러 갔음.
보통 공연에 절대 늦지 않는데 이날은 2009년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낮부터 테헤란로가 꽉꽉 막혀 10분 정도 늦게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씬 2~3개는 놓친 듯. 아.. 아깝다.
플러스 (기대보다 좋았던 점) : 조명과 무대 디자인. 앙상블.
워낙 잘 나왔다는 입소문을 듣고 간터라 기대가 높은 편이었는데도 그 기대를 뛰어넘었던 조명과 무대 디자인. 추격 씬에서의 스피디함. 자작나무 숲, 하얼삔 역에서의 열차 도착 효과, 등 굉장한 무대였음.
추격 씬에서의 앙상블의 군무에 감탄! 앙상블의 노래까지 훌륭.
이븐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던 점) : 정성화, 조승룡씨의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
그 큰 극장을 풍부한 성량으로 혼자 휘어잡을 수 있는 배우들인 정성화씨와 조승룡씨는 기대대로 잘 하셨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노래를 잘하는 뮤지컬 배우인 조승룡씨의 역이 늙은이 –;여서 그의 맑게 뻗어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던게 아주 조금은 아쉬웠지만.
뒤늦게 예매해서 오른쪽 끝으로 치우친 좌석이었는데 관람에 하나도 지장이 없었다 (2막에서는 중앙으로 옮겨 봤지만). 역시 엘지아트센터. 공연에 대한 후한 평에는 극장빨도 분명히 도움이 됐을 듯.
마이너스 (기대보다 못했던 점): 설희역의 이상은씨.
정말 이분껜 미안한 말인데 이 분이 이 훌륭한 공연의 구멍이셨다. ㅠㅠ 성악가라 그런지 질러야 할 때 못질러주시는 아쉬움이 컸다. 같은 역에 더블캐스팅된 김선영씨는 잘 했을 듯.
조국, 어머니처럼 가슴 짠한 소재들을 잘 버무려 효과적으로 배치한 덕에 공연을 보며 좀 찡해지기도 했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했을 때가 31살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31살에 그런 큰 일을 하다니 극중 대사대로 나라를 잃은 사람들은 일찍 철이 들었나보다.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어렵게 찾은 나라의 소중함을 모르는지 역사를 뒷걸음치게 만들고 있는 몇몇 사람이 떠올라 기분이 씁쓸해지기도 했고.
가장 마음에 드는 씬은 ‘누가 죄인인가’. 이 씬을 열린음악회에서 봤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극장에서 봤을 때는 성화 배우의 조목조목 따지는 모습에 감동!!! 안무나 동선 같은 건 좀 마음에 안들지만.
공연 전부터 몇 가지 주요 넘버들이 공개됐고, 나 또한 공연 보러 가기 전에 공연음반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인지 (심지어는 차 타고 엘지아트센터에 가는 길에서도 들으면서 갔음) 곡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몇 십년 전의 우리나라 가요 분위기라고 할까? 귀에 익숙하고 한국인 정서에 꼭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곡 분위기 때문에 같은 기획사에서 몇년 전에 올린 <몽유도원도>처럼 김희갑씨 작곡인가 싶었음. 찾아보니 오상준씨 작곡이란다. 단 편곡은 피터 케이시로 몽유도원도와 같다 (이 아저씨 <퀴즈쇼>에서도 편곡했는데…).
물론 곡만 좋은게 아니라 배우들이 멋들어지게 곡을 불러줌.
2009년 마지막 날에 초연이 끝났지만 2010년에 다시 무대로 되돌아 온다는 것 같다.
재미있다기보단 멋진 작품이었다. 같은 제작사의 명성황후보다 훨씬 낫다.
배우
- 안중근: 정성화
- 이토 히로부미: 조승룡
- 설희: 이상은
- 링링: 전미도
스탭
- 연출: 윤호진
- 극본/가사: 한아름
- 작곡: 오상준
- 편곡: 피터 케이시
- 무대: 박동우
- 안무: 이란영
- 의상: 김지연
- 조명: 구윤영
2009월 12월 31일 오후 3시 (목)
LG아트센터 R석 1층 5열 3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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