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1/16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꽤 오랫동안 기다리던 몽유도원도를 보고왔습니다. 아랑 역에 이혜경씨, 여경 역에 김법래씨였습니다. 초연인데다, 시작한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출중해서 공연의 기본은 되어 있는 느낌이었네요.
음악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예술의전당 몽유도원도 소개 페이지의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음악(제목은 모르겠는데, 하여튼 ‘러브송’입니다)을 몇번 듣고 간게 도움이 된 것 같네요. 실제 공연 2막에서 도미와 아랑이 다시 만나서 이 노래를 부를 때 눈물까지 나더군요. 참 마음에 드는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곡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서울예술단-적인 뮤지컬 음악’을 별로 안좋아하는데(이해를 하실까? ^^) 몽유도원도 음악 분위기가 좀 그쪽이더군요. 귀에 쏙쏙 들어와서 공연 끝나고 나오면서 흥얼거릴 정도의 음악은 아니었고요, 가사도 잘 전달이 안돼서 영어 자막을 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혜경씨는 공연이 ‘이혜경씨의 독무대’라고 할만큼 배역의 비중이 컸고(공연의 영어 제목이 ‘musical ARANG’인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죠?), 음악을 잘 소화해내셨습니다. 이혜경씨가 너무 잘하셔서 아랑역에 더블캐스팅된 김선경씨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란 걱정도 됐을 정도였습니다. 김법래씨나 서영주씨도 원래 실력 대로 잘해주셨지만, 이 두 스타보다 더 돋보인건 조승룡씨였습니다. (실제로 이혜경씨보다도 더 많은 박수를 받은 듯) 조승룡씨 공연은 3번째인데(드라큘라에서 2번), 모두 비중이 좀 작은 역인데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굉장히 눈에 띄내요. 쭉쭉 뻗어나가는 노랫소리에 항상 감탄, 경탄합니다. 정말 뮤지컬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인 듯.
무대장치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강물 위에서의 연등이나 배의 움직임이 꽤 볼만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과 크리스틴이 탄 배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작한지 이틀밖에 안된 공연이라서 그런지, 움직임이 좀 어설퍼 보이더군요.
예를 들어 노를 젓지않는 나뭇배 두개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더군요. 그렇게 가까운 두 지점에서 물의 흐름이 다를 리가 없는데 배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좀 코믹해 보였답니다. 물론 연등들도 그랫고요. 동일한 방향으로, 약간의 거리와 속도 차이를 두고 움직였으면 훨씬 더 보기 좋았고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아랑이 묶인 배가 움직일 때도 나루터의 움직임, 갈대밭의 움직임, 배의 움직임이 모두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관객이 봤을 때 원거리에 있는 사물이 좀 천천이 움직이고, 근거리에 있는 갈대들이 좀 빨리 움직이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했을텐데 말이죠.
사람들이 일식을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일식이 일어났다’라고 노래는 하는데 배경의 해가 전혀 가려지지 않더군요. 그래서서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1절 정도 끝나니깐 해가 가려지더군요. 일식 장면도 좀 자연스럽게 표현됐으면 좋겠더군요.
또, 아랑이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원작에서는 몇달동안 그렇게 상처를 내지 않나요? 그 장면에서 배경의 변화를 주어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 변화를 보여주면 훨씬 더 가슴 아픈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막이 훨씬 더 마음에 든 공연이었습니다. 아랑과 도미의 재회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다음 번에 볼 김성기씨-김선경씨 커플의 공연이 기대됩니다.
ps : 노을을 배경으로 아랑과 도미가 배타고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뒤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비춰지더군요. 아마 커튼콜 준비한다고 이동하는 거 같은데, 다음부터 이러면 안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