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후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른들의 사랑’이다.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결국 가족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마음 깊이 묻어둔 채 평생을 살아간다. 로버트 또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혹시나 있을 연락을 묵묵히 기다리다 생을 마감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성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1막을 보는 동안은 “너무 급작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만 들 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2막 전반부에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두 주인공의 감정을 노래하는 세 곡이 연이어 나오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잡힐듯한 꿈 Almost Real, 널 알기 전과 후 Before and After You, 단 한 번의 순간 One Second and a Million Miles으로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마치 성스루 sung through 뮤지컬을 보는 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조정은 배우(프란체스카 역)는 ‘잡힐듯한 꿈’을 내 기억속의 그녀 목소리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강렬하게 불렀다. 조정은 배우가 이렇게 강렬했던 적이 있던가. 그래서 프란체스카가 살아온 이야기와 아쉬움, 못 이룬 꿈이 내 가슴 속에 그대로 꽂혔다. 최재림 배우(로버트 역)가 무반주로 노래를 시작하는 ‘단 한 번의 순간’은 이 작품의 대표곡. 이 곡에서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떠나자”고 말하는 순간은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떠나냐고 울며 노래하는 프란체스카의 절절함도 대단했다. 이 2막의 시퀀스는 진짜 역대급이라고 할 만큼 좋았다.
극 마지막에 로버트가 부르는 내게 남은건 그대 It all fades away 역시 좋은 곡이다. 역시나 무반주로 시작하는 소울풀한 이 곡은 로버트의 인생의 사랑 Love of Life을 정리하는 동시에 극을 정리하는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며 부질없이 이 커플의 재회를 희망하기도. 프란체스카가 왜 영화에서 죽은 후에 화장해서 로즈만 다리에 뿌려달라고 한지도 공감됐다.
이 작품을 다시 보더라도 같은 페어로 보고 싶을 정도로 조정은-최재림 배우는 완벽히 연기했다. 노래가 훌륭한 최재림 배우는 목소리 톤도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과 비슷하여 마음에 드었다. 조정은 배우는 어쩌다 보니 데뷔작인 <태풍>, 첫 주연작인 <로미오와 줄리엣>, 영국 유학 가기전 마지막 작품인 <스핏파이어그릴>, 복귀작인 <로맨스 로맨스>등, 그녀의 주요 피봇팅 시점의 작품을 다 봤고 이후에도 몇 작품 더 봤다. 이번 작품에서의 조정은은 과거 내가 본 어떤 작품에서보다 훌륭한 노래를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의 프란체스카 배우의 노래보다 훨씬 좋았다.
무대 미술은 이 작품의 또다른 장점. 삼각형이 비어있는 판으로 지붕을 표현하고, 창틀과 문틀만으로 실내 공간을 묘사하는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판과 창틀이 내려오면 2층, 올라가면 1층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무대 전환도 매우 영리했다. 무대 후면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하늘 영상도 작품의 서정적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었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Last Five Years에서도 현악기를 능수능란하게 잘 썼던 이 작품의 작곡가이자 편곡자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Jason Robert Brown은 이 작품에서도 현악기를 훌륭하게 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대표곡인 ‘One Second and Million Miles’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의 ‘The Next Ten Minutes’를 떠올리게 했다. “Next 10 minutes”대신 “Just 1 second”를 말하며 설득하는.
불륜이라는 소재 특성 때문인지 두 주인공의 시선이 맞닿을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특히 둘이 함께 프란체스카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 서 있을 때, 그리고 문틀이 회전하는 동안은 숨을 멈추고 보게 되는.
몇 가지 아쉬운 점들: 중간중간 박람회에 참석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들이 큰 의미도 없이 주요 스토리의 흐름을 끊었다. 또한 프란체스카의 남편 리처드 캐릭터 해석이 다소 이상했다. 처형을 창녀라 부르며 아들에게 급작스럽게 화를 내는 장면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꽤 따뜻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캐릭터에 갸우뚱. 싸이코패스인가?
원작과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이 작품은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1992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마샤 노먼 Marsha Norman이 극본을,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음악과 가사를 맡았다. 이 뮤지컬은 2014년 2월 20일 브로드웨이 제럴드 쇤펠드 극장에서 초연했고, 같은 해 5월 18일에 막을 내렸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 했지만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이 작품으로 토니 어워즈 작곡상과 편곡상 두 개 부문을 수상했다.

2025-05-28 (수) 오후 7시 30분
광림아트센터 BBCH홀 1층 F열 024번
VIP석 1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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