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스 – 모호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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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뮤지컬 원스를 다시 보고 왔다. 약 한 달 전에 프리뷰 첫공을 본 후 다시 보러 간 것. 이번엔 윤형렬, 이예은 배우의 공연이었다. 이예은 배우는 처음 본 배우.

지난 번엔 공연 전 프리쇼 때 무대 위에 못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올라갔다. 프리쇼 공연도 코 앞에서 보고 무대 위 펍에서 와인도 한 잔 사마셨다 (덮개가 있는 플라스틱 컵 포함 9,000원). 한국 뮤지컬 극장에서는 술을 안 팔고 못 마시게 하는게 항상 아쉬웠는데 이런 식으로 마셔 본다. 아이리쉬 펍이 배경인만큼 기네스 맥주를 팔았으면 더 좋았겠단 아쉬움은 또 들었다.

무대 위에서 사마신 소비뇽블랑

공연 감상

프리뷰 때 불만이었던 노래 가사가 잘 안 들리던 점은 해결되었다. 이걸 음향 세팅을 잘 조정해서 해결 된 건지, 아니면 내가 앞 쪽에 앉아서 가사가 잘 들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배우가 연주를 직접해서 음향 세팅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잘 해결돼서 다행이다. 자리 덕도 있겠지만 여느 공연보다 가사가 또렷히 들렸다.

프리뷰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넘버들의 대상이 모호하여 노래에 내 감정을 얹기가 어려웠다. 내가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을 들을 때 가장 좋았던 곡은 “If you want me”인데 (영어 가사를 100% 알아듣진 못함) 언젠가 포루투칼에서 들었던 파두가 떠오르는, 심금을 울리는 곡이었다. 이곡의 번역된 가사를 살펴 보자

그대인가요, 아니면 내가 꿈꾸고 있는 걸까요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대 얼굴도 떠오르지 않아요
나 또 쓸쓸하고 침묵에 사로잡히면
나 다시 떠올려요 그대의 눈빛 아련한 그 미소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

정말인가요 세상 모두가 나를 믿지 않는다해도
그대는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나를 믿을 건가요
나를 지워가며 그대를 위해 내 모든 걸 바쳤지만
자유롭게 그대 품을 떠나고 싶기도 해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

프레스콜의 “If you want me”

이곡은 여주인 걸 Girl이 남자인 가이 Guy를 집에 데려와 가족에게 인사를 시킨 이후에 부르는 곡이다. 시간이 흘러 얼굴이 잘 안 떠오른다는 가사를 보면 전남편에 대한 감정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후렴인 “날 원한다면 내 마음 채워줘”란 부분은 헤어진지 몇 년 된 전남편이 아니라 조금 전 자신의 가족에게 소개한 남주(가이)에게 하는 말 같다1.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을 노래하는 건지 헷갈린다. 물론 작사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극 중 캐릭터의 감정과 100%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캐릭터의 감정이나 상황과 무관한 노래를 갖다 쓰는, 아쉬운 쥬크박스 뮤지컬이 되는 것. 뮤지컬 영화가 아닌 음악 영화인 원작에서는 강점이자 문제가 안 됐던 부분이다. 하긴, 이런 식인데도 불구하고 저지 보이스 Jersey Boys처럼 훌륭한 뮤지컬이 있긴 했다 – 물론 그 작품에선 “Who has short shorts”라고 가사를 붙일 때 배우의 감정을 표현할 거라고 기대한 적도 없지만. 언덕 위에서 걸이 체코어로 진심을 몰래 고백한 후에 부르는 “The Hill”도 마찬가지였다. 대상이 전남편인지 가이인지 모호했다. 어쨌든 뮤지컬 원스의 이런 특징은 노래를 통해 배우의 감정을 공감하는 게 중요한 나한테는 어색했고 멜로디가 훌륭하니 아쉬움이 더 크다.

마지막에 부르는 Falling Slowly Reprise도 애매하다. 중간엔 “늦지 않았어, 저 배를 타, 내 손을 잡아”라고 해놓고 마지막엔 “망설인 난 너를 잃었어”라고 한다. 지난 후기에 썼듯 열린 결말인지 각자의 길을 가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공연 후 객석을 나설 때 다른 관객들이 비슷한 대화를 하는 걸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두 주인공들이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겠는 것처럼 노래 가사도 의도적으로 헷갈리게 쓴 걸까?

그나마 1막 마지막에 가이가 부르는 “Gold”는 대상이 명확하게 걸인 노래이지만 가사 자체가 과하게 은유적이라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프레스콜 영상을 보고 받아 썼는데 가사를 못 적는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가사가 안 들렸다고요…)

그댈 사랑해 그 무엇과 바꾸리
난 달빛 속을 걷네
황금도 필요없다네

나는 내가 되어 자유를 찾으리
난 달빛 속을 걷고
저 바다를 보리

그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리니
저 커튼을 찢고 태양을 맞으라

너는 네가 되어 자유에 취해
그 달빛 속을 걷고 저 바다를 보리

??하늘처럼 혹시 누가 ??다 귀한 그대
그 하늘처럼 혹시 뺐길까 귀한 그대

그댈 사랑해 그 무엇과 바꾸리

프레스콜의 “Gold”

“난 너를 사랑하네,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처럼 돌직구를 던지면 안되나. 아일랜드 사람들은 느릿 느릿 돌려돌려 말하는 충청도식 화법을 구사하는 건가? 그래서 템포가 빠른 “When Your Mind’s Made Up”이 난 좋았다. 스튜디오 주인이 찬사를 할 만한 곡이었다. “Say it to me now”도 좋았다. 대출을 허락해줄만한 곡이었다.

이 공연 특유의 몰입감있는 체험은 아주 좋았고 곡의 멜로디도 괜찮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많은 가사들이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방식인게 아쉬웠다. 시적인 가사를 좋아하는 분들은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다. 그냥 작사, 작곡하는 음악가들의 이야기라고 이해하며 보면 좀 나을까.

언덕 위에서의 걸의 고백은 여전히 심쿵했고, 걸이 가이에게 뉴욕에 엄마도 같이 가자고 할 때는 슬펐다. 현실적이지 않은 가이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부분인데 뜬금없이 고령화 시대의 현실이 느껴졌다. 가이가 아버지를 더블린에 남겨두고 떠날 때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

앙상블을 포함한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빠뜨릴 수가 없다. 연주하며 연기하는 ‘액터뮤지션’ 모두들에게 감탄했다. 심지어 안무까지 하면서 연주하신다 (위의 Gold 영상을 보라). 곽희성 배우는 첼로를 몸에 감아 안무하며 연주할 정도. 보통 뮤지컬 공연은 두 달 정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악기에 익숙치 않은 배우는 이 작품을 위해 훨씬 더 긴 시간을 투자하였으리라. 지휘자 없이 하는 연주라서 귀에 클릭커라도 끼우고 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듯. 놀랍다. 살아있는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공연이다.

배우 비교

프리뷰 공연과 이번 공연은 세명이 달랐다.

공연GuyGirlDa
프리뷰 (2/19)이충주박지연박지일
이번 공연 (3/16)윤형렬이예은이정열

확실한 건 원스의 넘버에는 묵직한 윤형렬 씨의 음색이 더 어울린다는 것. 프리뷰를 보기 전부터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충주 배우의 공연을 놓치기도 아까울 것. 걸의 경우에는 근소하게 박지연 배우가 내 취향. 이충주, 박지연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뮤지컬 배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같이 본 아내는 이예은 씨가 더 좋았다고 한다. 비주얼 합은 이충주, 박지연 배우가 좋다. 개그 포인트가 꽤 많은 작품인데 이것도 이 페어가 더 잘 살렸다. 아버지 Da 역에는 박지일 배우에게 한 표. 연기가 참 좋았다. 노래는 이정열 배우가 낫겠지만 노래의 비중이 큰 역은 아니다.

좌석 시야

2열 중블에 앉아서 시야는 아주 좋았다. 참고로 코엑스 아티움은 2열부터 단차가 시작되고 OP석과 1열은 단차가 없다. 최근에 돈이 남아서 자리에 관계없이 공연을 봤지만 앞으로는 앞쪽 좌석이 없으면 아예 공연을 포기하려고 한다. 같은 값인데 너무 만족도 차이가 난다.

코엑스 아티움 1층 중블 2열

2025년 3월 16일 (일) 오후 7시 00분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1층 B구역 2열 13번
VIP석 망설일필요없어 40%할인 96,000원

이날의 캐스트

  1.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이 곡은 가이가 떠난 후 걸이 그를 떠올리며 자신의 가사를 대입하여 피아노로 그의 노래 중 하나를 연주하는 곡으로 돼 있다. 원문: “After Guy leaves, Girl plays one of his songs on the piano, substituting her own lyrics as she thinks of him (“If You Want Me”)”.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Once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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