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스 프리뷰 – 독특하고 가슴 따듯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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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원스 Once는 2007년에 개봉한 동명의 아일랜드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글렌 한사드 Glen Hansard와 마르케타 이글로바 Markéta Irglová가 작사, 작곡한 영화 속 곡들을 그대로 사용한다. 2011년 뉴욕 씨어터 워크샵과 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2012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그 해 토니상에서는 최고 뮤지컬 부문을 포함 8개 부분에서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2014년에 초연했는데 나는 당시 이태원에서 했던 버스킹 행사는 봤지만 실제 공연은 보지 못했다. 올해 다시 공연한다고 해서 프리뷰 첫공을 예매해서 봤다.

더블린의 펍을 옮겨온 듯한 무대

관람 후기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다.

첫째, 아역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한다. 오케스트라가 아예 없을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지휘자도 없다. 첫공이라 김문정 음악감독이 내 뒷편에 앉아 관람하시던데 멀리서 배우들의 연주를 보며 얼마나 조마조마하셨을까 싶다. 앙상블도 연주와 연기를 다 해야해서 스윙의 어려움도 타 작품보다 더 클 것 같다. 캐스트 보드를 보니 4명의 스윙 배우가 있는데 아마 악기 별로 스윙을 둔 것 같다. 오케스트라를 완벽히 대체한 모든 배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바이올린 최수지 씨, 첼로 곽희성 씨 연주가 훌륭해보였다.

둘째, 공연 시작 전 프리쇼가 있는데 펍으로 꾸민 무대 위에서 실제 음료를 판매한다. 이 펍에서 앙상블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무대 위 인원 제한이 있어 뒤늦게 줄을 선 나는 결국 무대엔 못 올라갔고 좌석에 앉아 프리쇼를 즐겼다. 라이브 연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공연 매너 안내판을 들고 다니는 어셔를 보는 경험은 묘했다. 다른 공연과 다르게 암전도 굉장히 서서히 된다. 공연이 시작됐는지 안 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런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관객은 이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그 외,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는 한국어 공연이지만 자막이 있다. 체코 이민자가 체코어로 대화를 할 때다. 체코어로 말을 하면 한글 자막이 뜨는 게 아니라 떠야할텐데 여기선 반대다. 배우들은 어설픈 한국어로 대화하고 자막은 체코어로 뜬다. 단 한 순간을 제외하면. (심쿵 포인트였음).

내가 촬영한 첫공의 프리쇼

넘버가 몇 없는데 모두 극 중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사용돼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가수가 주인공인 음악극 느낌이다. 마치 음악을 다룬 영화이지만 뮤지컬 영화는 아닌 원작 영화처럼.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향하는 곳이 런던에서 뉴욕으로 바뀐 것 말고는 원작과 줄거리는 거의 같다. 영화에서처럼 인디 포크와 어쿠스틱 락 음악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웃기는 포인트도 있고 가슴이 찡한 포인트도 있다. Falling Slowly같은 히트곡이 흘러 나올 때면 온몸이 짜릿했다. 다만 가사가 잘 안 들리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몇 곡은 템포가 느려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기까지의 발화 시간이 길어 내용의 이해가 어려웠다. 한편 주인공 남자 Guy(이충주)는 작품 분위기에 비해 너무 멀끔했다. 이충주 배우는 어두운 표정을 해도 우울한 분위기가 안 느껴지는 존잘남. 뉴욕타임즈 기사1를 보면 오리지널 프로덕션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긴 하다. 나에게 이충주 씨는 근자감으로 가득한 예술가(뮬랑루즈의 크리스티앙)나 어린 나이에 성공한 인기 작가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의 제이미) 이미지가 강하다.

이 작품의 음악이 묘한게, 보통은 뮤지컬에서 배우가 노래를 할때 노랫말의 대상이 분명한 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극 중에서 노래를 할 때 그 대상이 불분명하게 느껴져 혼란스러웠다. 예컨데 Guy의 노래는 전 애인을 향한 것인지 매사에 솔직한 체코 Girl을 향한 것인지 잘 모르겠었다. 그런데 마지막 곡인 “Falling Slowly Reprise”에서는 그 대상이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2. 아마 극작가나 연출은 원래의 인연인 전애인과 남편을 떠올리며 부르는 노래로 상정했겠지만 나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즉, Guy와 Girl이 서로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라고. 둘이 관계의 한계를 실감 후 각자의 길을 떠나기로 한 후 부르는 곡이니 내 느낌 대로라면 극이 좀 이상한 방향으로 마무리된 셈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 둘은 어떻게 되려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1막의 Girl(박지연)과 Guy의 아버지(박지일)의 대화 장면과, 2막 끝의 Guy와 아버지의 대화 장면. 의자 두 개, 스팟조명 두개에 별 대사도 없는 장면인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었다. 연령대가 높은 역할에 그 나이 대 배우를 선택한 건 탁월한 캐스팅이다.

기네스 한 잔 마신 후 보고 싶은 공연이다. 무대 위의 펍에서 기네스 생맥주를 팔았으면.

본공연에서 수정됐으면 하는 부분

인터파크 관람 후기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가사가 잘 안 들렸던 것 같다. 1막 마지막 곡인 “Gold”는 곡 전체를 거의 못 알아 들었다. 공연 전 유튜브에 올라온 프로모션 영상에서도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 실제 공연에서도 그럴까봐 우려했었는데 현실이 된 것.. 무대 위에 같이 있는 보컬과 악기 음량 사이의 미묘한 조정이 어렵겠지만 프리뷰 공연 이후에는 꼭 나아졌으면 좋겠다.

이충주, 박지연 페어의 “Falling Slowly” 연습 영상 (출처: 더뮤지컬 유튜브 채널) 앞부분 가사가 잘 안 들린다.

좌석 시야 (코엑스 아티움 1층 중블 7열)

무대가 한눈에 잘 보이는 좋은 좌석이지만 조금 멀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무대 가까이 앉으면 완전히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펍의 한구석에 앉아 연주를 듣는 것처럼.

코엑스 아티움 1층

2025-02-19 (수) 오후 7시 30분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1층 B구역 7열 2번
VIP석 프리뷰할인 30% 112,000원

이날의 캐스트

  1. 영문 위키피디아의 Musical Once항목에서 재인용: “Guy, played by Steve Kazee, has been transformed from a shaggy nerd into a figure of leading-man handsomeness” (스티브 카지가 연기한 Guy는 덥수룩한 괴짜에서 주연 급 훈남으로 변신했습니다.) ↩︎
  2.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Guy가 더블린에 남아있는 상태로 이해했다. 그런데 위 위키피디아의 줄거리를 보면 뉴욕 아파트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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