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공연 좌석 체크한다고 인터파크 들어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틱틱붐 페이지를 봤는데 딱 이날 저녁 공연이 내가 보고 싶던 배우 조합(이해준, 김수하, 양희준)이네? 마침 누가 취소한 건지 무대에선 조금 멀지만 14열에 괜찮은 자리도 있어서 몇 분 고민하고 예약. 20% 할인 안 했으면 안 봤을 수도.
내가 이날의 캐스트를 보고 싶었던 이유:
- 이해준: 얼마 전에 봤던 엘리자벳 실황 공연에서 토드로 나왔는데 상당히 괜찮아서 전혀 다른 캐릭터인 존을 어떻게 연기하는지 궁금했다.
- 김수하: 하데스타운에서 처음 봤는데 목소리 맑고 노래 너무 잘해서 유튜브로 다른 영상도 많이 찾아봤는데 노래 진짜 잘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색. 외모도 귀엽고 깜찍하다.
- 양희준: 김수하의 영상 찾아보다가 한 콘서트에서 하데스타운 넘버를 김수하와 듀엣하는 영상으로 처음 알게 된 배우. 둘이 너무 잘 어울렸는데 찾아보니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김수하와 같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배우라고 한다. 외모가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와 잘 맞겠다 생각했는데 실제 올리버 역을 맡은 적이 있더라. 어쨌든 실제로 무대에서 한 번 보고 싶었다.
이번 틱틱붐의 시츠 영상이나 연습 영상도 여러 개 봤는데 이 배우들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후기
1990년에 서른 살 생일을 앞둔 뮤지컬 작곡가 존의 불안과 고민을 다룬 내용이다. 성공하지 못 한 채 시간만 가는게 불안해서 머릿속에서 째깍째깍 (tick tick)하는 환청이 들린다. 뮤지컬 작곡으로는 돈을 못 버니 생계를 위해선 식당에서 알바를 한다. 서른 살 넘어서까지 작곡 일을 붙잡고 있어야 할 지 고민하면서 올린 뮤지컬 워크샵은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래도 이 워크샵을 본 거물 작곡가의 호평을 전해 듣고 다시 한 번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친구들에 둘러쌓여 서른 번째 생일 케이크의 초를 불며 공연 끝.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 Jonathan Larson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오프 브로드웨이 데뷔를 코앞에 두고 35살에 세상을 떠났음…)
이번 공연은 규모를 키웠지만 틱틱붐은 소극장에 어울리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존은 계속 나불나불 대며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떠드는데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가까워야지 좀 더 호흡하며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존의 독백이 극의 중심인, 넘버 수가 많지 않고 대형 군무도 없는 이 한 막짜리 공연은 과거 산울림소극장이나 충무아트홀 블랙 같이 작은 무대들에서 봤을 때가 훨씬 좋았다. 코엑스 아티움이란 넓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무대 위에는 회전하는 3층 장치를, 옆과 뒤에는 대형 LED 화면을 설치했다. 앙상블까지 5명을 추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틱틱붐이란 작품에 비해 과하게 넓은 무대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큰 극장도 꽉꽉 채워주는 관객을 생각하면 제작사는 큰 극장에서 공연하고 싶기는 할 것 같다. 콘서트처럼 대형 화면으로 가끔 존의 얼굴을 잡아주는 건 마음에 들었다. 소극장에 어울리는 작품을 연기하는 배우의 표정을 생생히 살필 수 없는 대극장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으로 판단된다.
이 공연을 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2001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계속 3인극1이었던 작품에 추가된 앙상블이었다. 애매하다. 다른 공연의 앙상블과 역할이 다르다. 원래 넘버 수도 적지만 합창을 할만한 곡은 더 적어 코러스 역할이 많지 않다. 무대 위 오브제 같다. 회전 무대를 돌리는 일은 꼭 해야 하는 걸까(왜 하데스타운의 일꾼들이 생각날까?). 원래 3인극일 때는 배우가 모자라니까 마이클이랑 수잔이 멀티맨 역할을 하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앙상블이 저렇게 많은데도 두 배우가 단역까지 멀티로 하는 것도 이상하다. 앙상블 5명을 추가하면서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됐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니어서 아쉬웠다 (라이센스 문제가 있을까?). 그래도 Sunday에서 음악적인 풍성함을 만드는데는 도움이 됐다. 아마 최근의 영화 버전에서 영감을 받아 추가한게 아닌가 싶기도?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것 중 내가 찾은 것 하나: 후반부의 곡 Why에서 아홉 살 때 존과 마이클이 불렀다던 “Yellow Bird”2와 “Let’s go fly a kite”3가 “매기의 추억”으로 바뀌었다. 저 원곡 가사에 등장하는 두 곡은 내가 모르는 곡이어서 바뀐 게 마음에 든다. 원래 넘버에서 이 두 곡의 이름을 말할 때 저 두곡의 멜로디로 노래하는데 변경된 “매기의 추억”은 그런 식으로 부르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열여섯 살 때 불렀다는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넘버는 그대로 뒀다. 이 곡은 내가 아는 곡이니 그대로 놔두는 게 좋다. ㅎㅎㅎ. 이 곡 “Why”는 나에게는 눈물 버튼. 절친이던 친구와 어릴 때부터 뮤지컬 노래 부르는게 너무 즐거워서 예술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해왔는데, 절친은 배우의 꿈을 포기한데다 AIDS에 걸렸고, 본인은 작곡가의 꿈을 포기하기 일보 직전. 공연을 보며 나는 저 나이 때 꿈이 뭐였는지 생각해보면 아홉 살 때도, 열여섯 살 때도, 스물 아홉 살 때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꿈을 이뤘구나. 뭉클.
예전에 봤던 한국 공연과 또 다른 것 하나. Sugar의 핵심인 “Twinkie”를 2001년에는 “슈가 케익”이라 했고, 2010년엔 “쪼꼬바”라고 칭했는데 드디어 “트윙키”란 이름을 찾았다. 극장이 커진 건 아쉽지만 좋아진 것들도 많다. 2010년 공연에서 Green Green Dress를 초록 드레스를 안 입고 불렀던 것에 비하면!!!!
극의 배경이 1990년으로 30년이 넘은 얘기지만 엘리자벳, 일 테노레, 드라큘라 등 상당수의 다른 뮤지컬에 비하면 훨씬 현재에 가까워 요즘 같으면서도 요즘 같지 않은 묘한 이질감이 있다. 이 때문에 “지금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 꼰대 중의 상 꼰대!!” 같은 개그가 재미있는 것. 사실은 AIDS가 사망선고처럼 여겨지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60달러 (국내 초연을 봤던 2001년만 해도 납득가는 대사였다), 멀리 떠나는 전 애인에게 편지하라는 시대의 얘기인데.
배우들 얘기를 해보자. 우선 극의 중심인 존을 맡은 이해준. 중간에 대사를 3~4번 더듬었지만 잘했다. 시츠나 기자간담회 영상보면 존을 맡은 배우들의 음정이 약간씩 어긋날 때가 있었는데 그런 건 못 느꼈다. 여러 개그 씬도 잘 살렸다. 수잔의 김수하. 노래 잘 하는 배우인데 그 실력을 보여줄 넘버가 별로 없어 아쉬웠다. 극장까지 와서 뮤지컬을 보는 이유는 배우의 노래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이지만 이 큰 극장에서 공연되는 틱틱붐이란 작품은 그게 어려웠다. 다만 김수하의 Superbia는 제외. 내가 본 역대 어느 수잔의 노래보다 훌륭하고 짜릿했다. 이 큰 극장의 14열에 앉은 나에게까지 에너지가 와 닿았다. 당연히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마이클의 양희준. 이 작품에서 마이클의 대표곡인 No More에서 코미디가 안 살더라. 재미있게 부르려고 하는데 재미가 없는. 웃긴 가사가 중요한 곡인데 가사가 또렷하게 안 들려서인 듯. 곡도 빠른데다 동선이 여러 층을 뛰어나니며 불러야 하니… 한편 다른 곡들은 무척 잘 불렀다. 세 배우 모두 대극장 작품 주연 경력이 있어 노래 실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하다. 춤출 때 배우들 사이의 합은 살짝씩 안 맞는 느낌. Green Green Dress의 춤도 그랬고 No More에서도 비슷. 배우 여럿이 같은 역을 맡으니 로딩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지… 공연이 진행되며 나아지길.
세 배우 모두 서른을 목전에 두고 삶을 고민하기엔 너무 애기애기해 보였는데, 찾아보니 이해준 36세, 김수하 30세, 양희준 33세란다. 다들 서른이 넘으셨네. 그들이 어리게 보인게 내가 늙어서인지 배우들이 동안이어서인지 모르겠다.
결론. 그래서 추천할 수 있을가? 애매하다. 소극장 용 뮤지컬을 대극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된 옛날의 소설이나 역사책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약 30년 전 30세에 방황하던 예술가의 현실적인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

좌석 시야
급하게 구했던 좌석은 코엑스 아티움 1층 14열 8번 좌석. 무대와의 거리가 먼 것 빼고는 완벽했다. 앞 열과의 단차가 커서 무대를 보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 이 작품은 웅장한 군무가 없고 배우와의 감정 공유가 중요해서 무조건 앞자리에 앉아야 하는 작품인데 뒤에 앉은게 아쉽다. 요즘 공연 보는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무대 가까운 티켓 구하기 너무 어렵다.

2024-11-21 (목) 오후 7시 30분
coex 신한카드 artium 1층 A구역 14열 8번
VIP석, 초반할인 20% 88,000원
- 기자 간담회 내용을 보니 최근 미국에서도 큰 극장에서 공연한 앙상블이 추가된 프로덕션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닐 패트릭 해리슨이 연출한 이 프로덕션인 듯. ↩︎
- 아이티의 전통 민요에서 유래한 칼립소 리듬의 곡이라고 한다. ↩︎
- 뮤지컬 영화 <매리 포핀스>의 삽입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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