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No Rules Rules.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와 INSEAD 교수 에린 마이어가 함께 쓴 넷플릭스의 문화에 관한 책. 창업자 뿐 아니라 외부인이 함께 작업한 책이라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책이다.
책에서는 딱 세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 인재 밀도를 높여라 (인재만 남겨라)
- 투명하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라
- 통제를 제거하라
마지막 챕터에는 글로벌 진출 시에 현지 문화를 고려하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건 부가적인 내용이고 위 세가지가 핵심이다.
1. 인재 밀도를 높여라
인재 밀도를 높이라는 건 보상을 충분히 하여 일당백의 인재만 채용하는 동시에 기대에 못 미치는 직원은 두둑히 세브란스 패키지를 줘서라도 내보내라는 것인데 해고가 어려운 한국 현실과 사람이 항상 모자란 내 위치에선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
높은 인재 밀도는 이 책에서 얘기하는 모든 것들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 뛰어난 인재들로만 구성된 회사는 규칙이 없어도 알아서 잘 굴러간다. 덕분에 넷플릭스는 휴가 규정, 출장 규정, 비용 규정, KPI, MBO, 성과 향상 계획 (저성과자를 당장 해고하지 않고 역량을 강화하는 절차), 승인 절차 같은 규칙이 없다. 또 인재는 인센과 무관하게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성과 보너스가 없고 기본 연봉 자체를 세게 준다고 한다.
책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연봉 인상을 한국에서 하듯 직원이 현재 받고 있는 연봉과 연봉 밴드, 인상 재원을 고려하여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가치, 즉 해당 업계의 연봉 수준으로 연봉을 책정한다는 것. 이직을 하면 연봉이 뛰기 때문에 회사를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바탕으로 책정한 연봉으로 인상된다면 돈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은 상당히 줄 듯.
2. 솔직한 문화를 만들라
내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건 두번째 얘기인 솔직한 문화를 도입하라는 것. 이 내용은 최근에 읽은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도 강조된 내용이다. 부하에게, 상사에게, 동료에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라는 것.
넷플릭스에서 피드백은 4A 지침을 따른다.
- 피드백을 줄 때:
- AIM TO ASSIST: 화자 본인을 위해 불만만 토로하거나 갈구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을 위한 피드백을 하라는 것
- ACTIONABLE: 피드백을 받는 당사자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걸 분명히 제시
- 피드백을 받을 때
- APPRECIATE: 변명하거나 화낼 생각 말고 감사하면서 신중하게 들어라
- ACCEPT OR DISCARD: 넷플릭스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드백을 듣게 되는데, 반드시 모두 따를 필요는 없다.
넷플릭스의 솔직한 문화에 대해 재미있었던 사례: 원래 넷플릭스의 동료 평가는 무기명이었는데, 솔직하게 피드백하는 넷플릭스의 가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직원들이 자진해서 피드백에 이름을 적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상당수의 피드백에 실명을 적는다고. 넷플릭스는 이런 서면 동료 평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면 동료 평가도 한다고 한다. 회식 같은 자리에서 돌아가며 피드백을 주는 것. 인민재판 느낌일까? ^^ 8명일 경우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니 한 마디 씩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꽤 진지하게 하는 모양이다.
솔직함의 대상은 피드백에 한정하지 않는다. 재무 상태, 정리 해고 계획 같은 민감한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3. 통제를 제거하라
비즈니스 중에는 한 편엔 오류가 일어나면 안 되는 비즈니스가 있고 반대 편엔 혁신이 중요한 비즈니스가 있다. 혁신이 중요한 비즈니스는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위협은 오류가 아니라 혁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류가 일어나면 안 되는 업종에선 통제가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통제보단 권한을 위임하는 게 빠르고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에 유리하다는 얘기. 그래서 넷플릭스는 실무자가 상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일을 진행한다고 한다. (물론 진척 상황은 상사에게 보고) 인재 밀도가 높은 회사여야 가능한 방법이긴 하다.
상사들은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방향성을 지시한다. 예를 들어 ‘모든 결정은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한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다’ 같은 식으로. 리포트 라인에 여러 명의 상사가 있을테니 맥락은 여러 겹으로 덧붙여질 것이다. 이걸 바탕으로 실무자는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는 식.
그리고… 각국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라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에린 마이어가 쓴 <컬쳐 맵>이란 책이 있다. 여러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하나의 도표 위에서 쉽게 비교해 놓았다고 한다. 아마도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가 이 책에 감명을 받아 에린을 넷플릭스의 문화에 대한, 이 책을 쓰는 작업에 초청한 것 같다.
아래 그림의 두번째 줄을 보자.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의 방식인데 왼쪽에 치우칠 수록 직설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국가이고 오른쪽에 치우칠 수록 간접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국가이다. 한국(KR)은 상당히 간접적으로 하는 편으로 돼 있다. 일본(JP)은 한국보다 더 우측이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좌측에 치우쳐있는데 부정적인 평가도 직접적으로 한다는 것. 미국은 중간 정도이다.

넷플릭스는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위 차트에서 미국(US) 근처에 있지만 독특한 기업 문화로 인하여 전형적인 미국 회사보다 낮은 맥락으로 의사소통하고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한다고 한다.
문화가 다른 국가의 직원들과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곳의 문화를 존중하여 넷플릭스의 문화를 버리면 될까?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문화로 책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식은 넷플릭스의 문화는 그대로 지키되 문화적 차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여 원래 의도를 납득시키라는 것이다. 직설적인 피드백을 하되 “우리 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할테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는 식으로 미리 얘기를 하면 될 듯. 이렇게 하는 게 끝은 아니다. 한국 직원이 미국 직원의 직설적인 피드백을 오해하지 않고 들을 수는 있겠지만 미국 직원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주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피드백하는 시간을 추가하고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단다.
요즘 일본이랑 일을 많이 하는데 기억해둬야할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이 비슷해보이지만 위 표에서 보면 의사 결정 (Deciding)과 일정 (Scheduling) 관점에선 차이가 꽤 난다.
책의 마지막 챕터인 이 부분을 읽으며 미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설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최고의 직설적인 문화를 가진 네덜란드인이 미국 사람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하면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할 때 미국에선 일단 긍적적인 말로 시작해서 부정적인 말을 덧붙이는 식으로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대놓고 부정적인 얘기로 말을 시작한다고.
“미국인 동료들이 이렇게 나올 때마다 저는 참 난감해집니다. 그들은 피드백도 열심히 주고 또 열심히 받으려고 하지만, 뭔가 긍정적인 말로 시작하지 않으면 피드백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네덜란드인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먼저 나오면, 일을 전부 망쳤다고 생각해서 비판한 사람을 무색하게 만들죠” — 규칙없음 436/466
이 책의 좋은 방침들이 실제로 잘 지켜지고 있는지, 목표로 한 효과를 내고 있는지를 넷플릭스의 직원과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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