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마드리드간 이동과 마드리드-리스본간 이동은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숙박과 이동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호텔트레인이란 침대칸 야간 열차를 이용했다. 호텔트레인 객실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제일 좋은 Luxury Class는 1인 객실에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붙어있고 조식도 제공되지만 비싸다. 우리는 제일 싼 4인실 컴파트먼트 (T4)를 끊었다. 세면대만 있는 4인용 방이다.
파리 -> 마드리드
파리의 오스텔리쯔역(Gare d’Austerlitz)에서 저녁 7시 반 정도 쯤 마드리드행 기차를 탔다. 마드리드까지는 13시간 반이나 걸린다. 우리가 12시간을 보내야 할 컴파트먼트에는 서로 마주보는 좌석 4개가 있다. 순방향 좌석 2개, 역방향 좌석 2개. 이 좌석을 접으면 양 측에 이층 침대 두개씩이 생긴다.
▲ 왼측 위부터 1. 침대 (각자 쓸 수 있는 독서등이 있음), 2.작은 세면대, 3.침대를 접었을 때 앉을 수 있는 좌석, 4.이층 침대, 5.기본으로 제공되는 생수와 타올. (엘립소스 홈페이지에서 캡쳐한 사진들)
출발 시간이 저녁 7시 43분이었기 때문에 객실의 좌석은 침대로 변신해있지 않고 그냥 좌석인 상태. 4인용 객실에 3명의 일행이 탔으니 나머지 한자리는 비워두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우리의 오산. 곧 이봉주를 닮은 중국계 할아버지 (아저씨일 수도 있다. 이봉주도 아저씨지만 할아버지처럼 보이지 않는가?) 한명이 우리와 함께 잘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행히 이 할아버지는 딴 객실에 일행이 있었는지 방 확인하러 한 번 온 후, 잠자기 전까지는 우리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차가 파리를 출발한다. 얼마 있다 배불뚝이 차장이 와서 뭐라고 말하는데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같다. “티켓”과 “빠스뽀뜨”는 알아 들을 수 있어 내 여권과 기차 티켓을 맡겼다. 국제 열차의 차장 치곤 뭔가 좀 어설프고 내 여권만 가져간 것도 이상하여 같이 간 이사님들은 이 사람은 가짜고 얼마 후에 진짜 차장이 나타날거란 농담을 한다. 다행히 그날 밤 더 이상의 차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다음 날 마드리드 도착 직전 이 배불뚝이 차장이 다시 나타나 내 여권과 기차표를 돌려줬다.
기차 타기 전에는 자기 전에 포커를 치느니, 독서를 하느니, 술을 마시느니 얘기를 했었지만 실제로는 기차가 많이 흔들렸고 의자도 매우 불편했다. 또 우리 모두 많이 지쳐있어 눈이 빨개진 채 의자에 쓰려져 있었다. 그래서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우리 마음대로 침대를 펼 수가 없었다. 열쇠로 잠겨 있었기 때문. 침대를 펼 때는 차장을 부르라고 옆에 써 있었는데, 우리는 차장을 부르는 법을 몰랐다. -.ㅜ. 비행기에 있는 기내 잡지에는 기내 시설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설명돼 있는 반면, 이 기차에 있는 기내 잡지에는 기내 시설물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없었고 스페인어인지 불어로 된 관광 기사만 잔뜩 있었다. 벽에 있는 버튼이란 버튼은 다 눌러봤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좁은 컴파트먼트에 갇혀있으니 더 멀미가 나는 것 같아서 복도로 나갔다가 복도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에게 혹시나 싶어 영어로 어떻게 차장을 부를 수 있는 지 물어보았다. 정말 다행히도 그 사람은 영어를 할 수가 있었고 (이 때 기분은 사람 한명 없는 사막에서 며칠 만에 사람을 만난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시간이 되면 일괄적으로 차장이 침대를 만들어 줄 거란 얘기를 들었다고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그래서 얌전히 컴파트먼트에 들어가 의자에 쓰러진 채 차장을 기다렸다. 다행히 우리의 룸메이트 중국계 이봉주 아저씨가 딴 방에 있어 나름대로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국 11시 쯤인가 차장이 방을 차례로 돌며 침대를 펴줬다. 침대에 올라가 이불 속으로 폭 들어가니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비록 좀 많이 흔들려 – 이층 침대의 윗 칸이라 더 흔들렸을 수도 있겠다. – 중간 중간 몇번 깼지만 말이다.
잠에서 깨 세면대에서 좀 씻고 나니 마드리드 챠마틴(Chamartin) 역에 도착했다.
▲ 마드리드 역에 도착하니 다음 날 탈 리스본 행 열차가 옆 플랫폼에 있었다.
마드리드 -> 리스본
▲ 마드리드 Chamrtin 역
리스본행 열차를 Chamartin 역에서 탔다. 밤 10시 45분 기차. 역시나 호텔트레인이며, 4인실 객차이다.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시간.
▲ 리스본 (포루투칼 말로 Lisboa)행은 밤 10시 45분.
객실은 파리 <-> 마드리드 열차와 대동소이했다. 출발이 늦어 처음 기차를 탔을 때부터 침대가 펴져 있어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4인용 객실에 우리 3명만 타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으나 빈 자리 한자리에 캐나다에서 온 의사가 탔다. 아마 객실을 꽉꽉 채워 열차를 운행하는 것 같다.
이 의사는 영어가 통해서 얘기를 좀 나눌 수가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학회가 있어 왔다가 마드리드에 왔고, 이 열차를 타고 포루투칼로 간다는 것. 송이사님이 나를 가리키며 “He is also a doctor.”라고 하셔서 내가 Ph.D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oh, not a real doctor”라고 했다. ㅋㅋㅋ. 시트콤 Friends에 보면 고생물학 박사인 Rose가 자주 듣는 말이다. 물론 뒤에 “Just Kidding”이라고 하더라.
우리가 탄 마드리드발 리스본행 열차의 차장은 파리-마드리드 간 열차의 차장과는 달리 영어도 잘하고 무척 잘 생겼다. 포루투칼 축구선수 피구(Luís Figo)를 닮았다. 멋쟁이 아저씨~
차장도 영어가 통하고, 룸메이트도 영어가 통해서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또 이번에는 이층 침대의 아랫층에서 잤는데, 아랫층이라 덜 흔들려서인지, 아니면 기차에서 자는 데 익숙해 져서인지 굉장히 잘 잤다.
▲ 리스본 산타아폴로니아 역에 도착한 직후, 플랫폼에서 이사님.
멀미를 하는 사람이거나 폐쇄공포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차에서 자는거 비추다. 나는 앉아서 갈 때는 힘들었지만 누워서 갈 때는 별로 힘들지 않고 편안했다.
이번엔 “열차이야기”이군요. 11시에 침대를 펴준다니… 그건 좀 아니다 싶네요.혹시 덩치큰사람에게 2자리를 준다거나, 혹은 가격을 비싸게 하지는 않나요? 왠지 해외에서 덩치큰사람은 부당하단 선입관에 잡혀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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