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 역대급 화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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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뮤지컬 하데스타운 라이센스 공연과 영국의 미스사이공 리바이벌 프로덕션 영상을 보면서 이바 노블자다 Eva Noblezada의 팬이 돼버렸다. 이바는 당시 새로운 뮤지컬인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에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공연에 대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이 새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올라간지 약 1년만에 서울에서도 내한 공연 형식으로 올라왔다.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제작자가 국내 기획사 오디컴퍼니의 대표인 신춘수 씨이기 때문에 빨리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연초에만 해도 혹시 이바가 한국 투어도 해주려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어쨌든 배우는 바뀌지만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퀄리티 그대로 들어오는 것은 반길만한 일.

공연 후기

내 눈으로 본 이 공연의 무대는 역대급으로 화려했다. 이 작품은 극중 배경인 192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의상으로 2024년 토니상에서 의상디자인 상을 수상했는데 의상보다는 무대 디자인에 더 눈이 갔다. 무대 위에서 배경을 LED 화면에 띄우는 건 더 이상 특별한게 아니지만 개츠비의 화면은 달랐다. 이미지가 초고해상도로 느껴졌고 패널도 굉장히 많았다. 배경이 표시될때 마치 막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처럼 스르륵 표시되는 것도 좋았고, 앞의 패널들이 움직일 때 뒤의 패널에 맞춰 그림이 움직이는 것도 좋았다. 이 부분은 신춘수 프로듀서가 2009년인가 제작한 뮤지컬 드림걸즈가 떠올랐다. 당시에 무대 위에서 화면을 사용하는 방식이 혁신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화면과 어우러진 무대 세트도 훌륭해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퀄리티였다. 심지어 움직이는 차도 등장한다. 무려 두 대나. 다만 유튜브에서 백스테이지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니 차는 한대인데 커버만 바꿔 두대인 척 하는 것이라고 ㅎㅎ. 작년 토니상에서 무대 미술상 후보에는 들지도 못 한게 의아할 정도. 토니상은 이런 화면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보수적인 걸까?

이번 투어 캐스트는 연기나 가창적인 부분에서 나쁘지 않았지만 엄청난 감동이 있진 않았다. 노래는 요즘 한국 배우들도 훌륭하니까. 다만 극 중 화자 역할을 하는 닉 캐러웨이 역의 제랄드 시저 Gerald Caesar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 듣기 힘든 아프리카계 배우의 음색이 반가웠고 넘버에도 착붙. 개츠비 역의 맷 도일 Matt Doyle은 토니 상 수상 경력 (2022년 Company로 조연상)도 있는 배우라고 한다. 데이지 역의 센젤 아마디 Senzel Ahmady는 무대 위에서 매력 철철. 2막,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하여 정말 즐거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 직전에는 알라딘 전미 투어에서 자스민을 공연했다는 듯. 이번 공연의 유일한 아시아계 배우로 보이는데 브로드웨이에서도 이바가 맡았던 역인 걸 보면 아시안에 맞춘 배역으로 보인다. 원작 소설에서 데이지 남편인 톰 뷰캐넌이 심한 인종 차별주의자인걸 생각하면 아내와 아내의 친척이 아시안과 아프리칸이란 게 좀 코믹하긴 하다.

이 작품의 오리지널 음악은 제이슨 하우랜드 Jason Howland가 작곡을, 네이던 타이센 Nathan Tysen이 작사를 맡았다. 대박 넘버는 없었다. 불륜 커플인 데이지와 개츠비가 같이 떠나자는 곡인 “Go”를 부를 때 얼마 전에 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의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에서는 불륜 커플인 프란체스크와 로버트가 부르는 절절한 한국어 노래에 확 몰입된 거에 비해 이 공연의 “Go”에서는 그런 경험은 하지 못했다. 곡 자체가 별로였을 수도, 아니면 한국어 자막을 흘깃흘깃 보느라 집중력이 떨어져서 였을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기억에 남는 곡이 없었지만 개츠비가 부르는 “For Her”의 “데이지~”라는 부분은 공연 후에도 계속 귀에서 맴돌았다. 공연 보고 나와 OBC앨범과 쇼케이스 영상을 보니 “For Her” 외에도 “For Better or Worse”, “My Greenlight” 같은 넘버들이 괜찮더라.

가장 마음에 든 넘버인 “For Better or Worse” (출처: OD컴퍼니 유튜브 채널)

스콧 피츠제랄드의 원작은 길고 좀 모호한 편인데 각본가인 케이트 케리건 Kait Kerrigan이 컴팩트하게 무대로 잘 옮겼다. 원작에서 보여준 1차대전 후 미국의 계층 간 현실 같은 내용을 기대했다면 실망했겠지만 개츠비의 호구같은 사랑은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볼만한 공연. 무대 미술과 의상 디자인이 화려하며 아름답고 앙상블들이 무대를 꽉 채운다. 주연이며 조연이며 앙상블이며, 어디 떨어지는 부분이 없어 전체적으로 평균 품질이 높았던 프로덕션이다. 자막을 보지 않고 배우에만 집중하며 한 번 더 보고 싶다.

국내 공연은 배우 팬들이 많아서 좋은 좌석 예매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이런 내한 공연은 너무나 쉽게 1열 중앙 좌석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원 캐스트라서 날짜 고민도 필요없다. 좋은 배우들로 구성된 뮤지컬 내한 공연이 더 잦았으면 좋겠다.

좌석 시야

1층 B블록 1열 9번

제일 앞 줄 중앙이었는데 아주 약간 시야가 가리는 장면이 있을 뿐 그 외에는 훌륭. 시야를 가리는 장면은 게츠비와 데이지가 테라스에서 얘기하는 씬. 난간으로 인해 테라스 뒷쪽에 있는 데이지가 가려질 때가 있었다.

자막은 오케스트라 피트 정중앙과 좌우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난 주로 정중앙의 자막 화면(위 그림의 B라고 표시된 부분에 위치)을 봤다. 무대랑 자막이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기 때문에 중간중간 시선을 돌려 자막을 봤다.

2025년 8월 13일 (수) 19:30
GS아트센터 1층 B블록 1열 9번
VIP석 190,000원

PS: 뒤늦게 우연히 알았는데 머틀 역의 Jeanna De Wall은 뮤지컬 다이아나의 오리지널 다이아나였다. 전혀 못 알아봤네. 뮤지컬 다이애나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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