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에 호암아트홀에서 봤던 브로드웨이42번가는 탭댄스와 군무가 화려했지만 스토리가 매력적이지 않고 고난이도 솔로곡 같은 건 없어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던 공연이었다. 나는 외면했지만 꽤 자주 재공연이 열린 걸로 안다. 지난 달에 샤롯데에서 시작된 올해 공연은 IOI 출신 최유정이 주연을 맡았다는(그리고 귀엽다는) 릴스를 몇 번 봤지만 역시나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지난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습관처럼 인터파크 (이제는 NOL티켓) 산책을 하다가 브로드웨이42번가 티켓을 체크했고, 1층 중블 10열에 누가봐도 취소한 자리 두개를 발견했다. 마침 30% 할인도 받을 수 있네? 미국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내한테 의견을 물어봤더니 웬일로 좋다고해서 당일 공연을 예매했다. 마침 릴스에서 칭찬받은 최유정 출연 회차.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 내 곡들을 메들리로 연주하는 오버추어를 듣고 있으니 27년 전에 듣던 귀에 익은 곡이 줄줄 흘러나온다. 당시는 뮤지컬 음반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이 작품 같은 클래식 뮤지컬의 넘버들을 반복해서 듣곤했다. About a Quarter to Nine, Young and Healthy, Lullaby of Broadway, Go into Your Dance 같은 곡들 정말 많이 들었고고 좋아했던 걸 한동안 잊고 있었네. 27년 전 공연은 송영창 (줄리안 마쉬), 이재영 (도로시 브록), 양소민 (페기 소여), 남경주 (빌리) 씨의 공연이었는데 이재영, 양소민 씨는 소식 들은지 꽤 된 것 같다.
공연을 보고나니 주인공 페기 소여 역의 최유정이 귀엽단 소리가 왜 나오는지 알겠다. 춤 안 추고 있을 땐 모르겠지만 쬐그만 애가 이상한 퍼런 할머니 옷 같은거 입고 다다닥 거리며 탭댄스를 추니 귀여운 것. 게다가 탭할 때의 팔 선이 참 곱다. 얼마 없는 노래도 잘 하고 톤도 역에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오디션 프로 출신이자 첫 뮤지컬 주연을 맡은 본인의 스토리와 작품 내 배역의 스토리가 잘 맞아 떨어지는 게 큰 장점.
군무는 말해 뭐해. 공연 시작하면 무대 위 커튼이 올라가며 발만 보이는 상태에서 탭 하는 건 다 알고 있는 장면인데도 직접 보면 감탄이 나온다. <We’re in the Money>의 팔 각도가 착착 맞는 군무 역시 장관. 마지막의 계단 위의 안무는 예전에도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조명으로 빛나는 계단에서 추는 탭댄스는 화려함 그 자체이지만 배우들이 실수해 다칠까 걱정되기도. 앙상블들 모두 칭찬하고 싶다.
예상했듯 스토리는 좀 허술하면서 올드하다. 27년 전에도 올드했으니 지금은 더 그렇지. 한편으로는 고구마 같은 내용이 거의 없어 굳이 작품 보며 스트레스 받는 거 싫어하는 요즘 문화랑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기도. 인물들이 다들 착한 건 요즘 작품에선 보기 힘든 내용이다. 줄리안 마쉬는 츤데레, 도로시 브룩도 본인을 다치게 한(?) 후배를 응원, 코러스걸들은 신출내기가 주연으로 발탁됐는데도 질투는 커녕 응원한다.
양준모 배우가 츤데레 줄리안 마쉬 역을 맡은 회차였는데, 이 노래 잘하는 배우가 몇 개 없는 솔로 넘버 중 하나인 Lullaby of Broadway를 그다지 잘 소화하지 못 했다. 도로시 브록역의 정영주 배우는 딱 예상했던 연기를 보여줬는데, 같은 역에 캐스팅된 최현주, 윤공주 배우는 이 역을 어떻게 연기할 지 상상이 안 돼서 이들 배우들의 회차를 놓친 게 좀 아쉬웠다. 기세중 배우는 극장에서 처음 본 배우인데 무난히 잘 했고, 관록의 전수경 씨는 나오는 장면마다 관객석을 빵빵 터뜨렸지만 노래는 예전 같지 않았던.
이날 마침 커튼콜데이라서 영상도 몇 개 찍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영상을 찍지말고 화려한 커튼콜 쇼를 좀 더 눈으로 즐길걸 그랬다. 타 뮤지컬보다 훨씬 더 화려한 애프터 쇼였다.
딴 거 기대 안 하고 화려한 무대에서의 화려한 탭댄스의 박력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쇼뮤지컬의 대명사답다.

2025-08-02 (토) 오후 6시 30분
샤롯데씨어터 1층 B구역 10열 15번
VIP석, 신한카드 30%할인 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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