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테노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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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과 27일, 두 차례 공연을 보았다. 두 공연 모두 주연 삼인방은 박은태, 박지연, 전재홍 배우로 동일1하였다. 유튜브에서 창작 초연인데 훌륭하다는 평을 보고 4월 23일 공연을 예매해둔 상태에서 50%할인을 하는 27일 낮공을 추가로 예매하였다.

직품명인 일 테노레는 이태리어로 테너란 의미로 아래는 제작사에서 제공한 시놉시스.

일제강점기 경성. 항일운동 모임인 ‘문학회’ 멤버들은 점점 심해지는 총독부의 검열을 피할 방법을 찾던 중 뜻하지 않게 이탈리아 오페라 공연을 계획하게 된다. 침략에 맞서 싸우는 베네치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I Sognatori – 꿈꾸는 자들’이 경성 시민들의 항일정신을 고취할 것이라 기대하며, 이 낯선 ‘서양 창극’을 공연하기 위해 뭉치는 사람들.

그 중심엔 자신도 몰랐던 특별한 테너의 목소리를 가진 의대생 윤이선, 지금 경성에서 가장 영민한 리더이자 연출 서진연, 자칫 위험할 정도로 열정적인 독립운동가이자 무대디자이너 이수한이 있다. 하지만 점점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 속, 이들의 ‘조선 최초 오페라’는 무사히 공연할 수 있을까?

나를 이 공연으로 이끈 유튜브에서는 이 “뜻하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을 조금 더 소개했는데 그게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기로 유명한 일명 “까마귀”라는 일본인이 조선 최초 오페라 공연을 보러온다는 첩보를 문학회 리더들이 접하게 된 것. 항일 운동가인 서진연과 이수한은 이를 까마귀 암살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에 이들의 오페라가 무사히 공연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간 내용.

이 공연은 이 작품의 초연이다. 2018년에 이 작품의 낭독회가 있었고, 2023년 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 후 반응이 좋았는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연장 공연 중인데 나는 이 연장 공연을 봤다. 작·작사 박천휴, 작·작곡·편곡 윌 애런슨. 윌 애런슨은 내가 과거에 본 <마이 스케어리 걸>에서 음악으로 기억에 남았던 작곡가다. 2018년 낭독회의 프로듀서는 김유철, 음악감독 서혜선이었고, 2023년 공연의 프로듀서는 신춘수, 연출 김동연, 음악감독 변희석.

(이하 스포일러 포함)

막이 오르고 첫 넘버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의 가사 중에 “이건 우리의 이야기”란 부분이 있다. 문학회 멤버들이 올리려는 연극에 대한 내용이지만 이 새로운 창작 뮤지컬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우리가 만든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뮤지컬이라는 것.

곧이어 주인공인 윤이선이 이화여전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처음 접하는 씬이 나온다. 인상적인 점은 외국인 선교사인 베커 여사 역에 실제로 외국인 배우(브룩 프린스, 아드리아나 토메우)를 썼다는 것. 국내 공연에서 극중 인물의 인종과 상관없이 다 한국인이 배역을 맡아 어울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씬에서는 이 극의 주요 소재인 오페라 I Sognatori(꿈꾸는 자들)의 아리아가 소개되는데 첫 관람 때는 이게 실제 있는 오페라와 아리아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가상의 오페라이고 아리아도 이 뮤지컬의 작사작곡가가 새로 만든 것이라고. 물론 오페라 전체를 작곡한 건 아니고 뮤지컬에 필요한 ‘꿈의 무게’ (아리아 1), ‘그리하여, 사랑이여’ (아리아 2)라고 이름 붙은 두 곡을 작곡한 것.

베커 여사2 를 통해 오페라를 접한 세브란스 의대생인 윤이선은 의사와 오페라 테너 (이탈리아어로 ‘일 테노레’)사이에서 고민하는 넘버인 ‘환상 오페라’는 남성 중창의 매력을 제대로 발산하는 곡. 현장에서 들어야만 배우들의 힘과 에너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아마도 관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느낌의 곡일 것이다. “안돼 이선 안돼~”하는 맹원태 배우 목소리가 참 좋다.

환상오페라 (출처: OD Company 유튜브채널)

이선 역의 박은태 배우는 여리고 소심하지만 강하기도 한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 다만 오페라 아리아 두 곡을 부를 때는 곡(특히 아리아1)과 박은태 배우의 목소리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은태 배우는 여리고 날카로운 고음의 매력이 있는데 오페라 아리아는 조금 더 웅장한 목소리가 어울릴 것 같아서. 같은 역을 맡은 홍광호 배우의 목소리는 잘 어울릴 걸로 예상. 아리아를 제외한 다른 넘버들은 박은태 배우에게 잘 맞았다.

박은태 배우의 꿈의무게 (아리아 1) (출처: OD Company 유튜브채널)

이후 문학회가 조선 연극의 대안으로 베네치아에 대한 오페라를 하기로 결정하고 멤버를 모으며 부르는 “합시다 오페라” (정식 넘버 명칭은 ‘조선 최초 오페라’)도 쿵짝짝 쿵짝짝 하며 귀에 쏙 박히는 넘버로 뮤지컬 스쿨오브락의 You’re in the band 느낌.

공연은 흐르고 흘러 2막의 부민관 공연 씬. 여기서 무대가 크게 회전을 하여 부민관 무대의 상수 쪽으로 변한다. 이 때서야 회전하는 무대란 걸 처음 깨닫게 될 정도로 이 전에는 무대의 변화를 최소화 시켰다. 여기서 주역 삼인방인 이선, 진연, 수한이 무대에 나란히 서서 삼중창으로 ‘잘못된 꿈’을 부른다.

(이선)

내 오직 유일한 잘못은
너무나 간절하다는 것
간절히 더 간절히 원해 그러면
언젠간 이뤄질 거라며

이젠 제발, 제발
이 고통 멈춰주오
내 꿈을 죽여주오
이렇게 가까운데 닿을 수 없는 꿈
이젠 제발 제발 멈춰주오

(진연)

내 오직 유일한 잘못은
이렇게 확신한다는 것
아파도 해야 할 일이야 당연해
희생은 우리 몫이니까

이젠 제발, 제발
이 싸움을 멈춰줘
이 비극을 막아줘
이렇게 아픈데도 피할 수 없는 꿈
제발 멈춰줘 다

(수한)

미쳐버린 세상 속에
익숙해진 고통들
메마른 모래처럼
휩쓸려 온 우리들 이젠

(이선, 진연, 수한)
이 길 끝이 그 어디든
난 가 봐야겠어
끝까지 가겠어
후회하진 않겠어
나는 내가 되겠어

첫 관람과 두번째 관람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른 곡이다. 뒷 내용을 알지 못하는 첫 관람 때는 수한이 거사를 앞둔 심정을 노래한다고 생각했다. 이선과 진연의 노래 가사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뒷 내용을 알고 보면 세 명 모두 자신이 희생할 각오를 노래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선이 흰 나비넥타이를 죽을 때도 매고 있겠다던, 진연에게 선물받은 검은 나비넥타이로 바꿔 매는 행동은 눈물 버튼.

그리고 회전 무대가 완전히 돌아서 오페라극장의 무대로 변신하고 오페라가 시작된다. 동료들 몰래 거사 용 폭탄을 챙겨 무대에 등장한 이선은 원래 불러야 하던 아리아1이 아니라 ‘나탈리아~ 나탈리아~’로 시작하는 아리아2를 부른다. 인생의 마지막 노래이기에 원래 불러야 하는 아리아 대신 진연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곡으로 바꾼 것.

오 그대여, 내 사랑이여
그댄 어느새 고독을 닮은 그 이름

​그리워라 내 사랑이여
그댄 먼 계절 겨울을 지나 푸른 봄
눈부신 신록이 되어 돌아와주오

그대의 사랑이 내겐 삶이었소

​그리하여, 내 사랑이여
그댄 내 영혼 그댄 내 시작 내 결말
이젠 날 데려가오 그대 곁에
간절한 사랑이여

가사와 곡이 무척 애절하여 듣고 있으면 눈물이 줄줄 난다. 일테노레의 가장 하이라이트3

박은태의 아리아2 (그리하여, 사랑이여) (출처: 유튜브 솜니 채널)

이 아리아를 부르고 이선이 폭탄 투척을 하는가 싶었는데 또 반전이 있다. 암전이 된 가운데 진연이 이선의 폭탄을 빼았아 던진 것. 공연장에서 볼 때는 불이 꺼진 상태에서 우당탕탕하고 지나가는 장면이라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뒤이어 진연의 편지로 상황을 설명하며 이 어수선함을 정리하지만 아름다운 넘버로 감정을 최고조로 올려놓은 다음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 같은 연결이라 아쉬웠다. 좀 더 뻔한 전개이지만 이선이 폭탄을 던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페라 팀 모두 연루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더 이상의 미래는 없었을까. 이후 현재 시점이 되어 새로 건축한 공연장에서 이선과 수한이 만나지만 이 뒷부분은 난 큰 감흥은 없었다. 앞선 부민관 공연 씬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다.

이선 역의 박은태 배우 얘기는 위에 썼고, 다른 배우에 대해 적어보자. 박지연 배우는 딕션이 좋고 소리가 곧아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강하고 당찬 지연 역에 잘 어울렸다. 이수한 배우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 역에 부족함이 없었다.

넘버가 좀 더 많고 대사보다는 좀 더 성스루 형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창작 초연임을 감안하면 좋은 공연이었다. 감안 안 해도 훌륭한 공연. 진지함과 가벼움도 적당히 혼합돼 있다.

그리고 4/27 공연의 커튼콜 뒤에는 신한카드 The Moment 행사를 위한 추첨이 있었는데 최철 역을 맡은 최호중 배우가 사회를 봤다. 행사 진행 너무 잘 하셨다는. 럭키드로우에 당첨 되면 “그게 바로 저입니다!!”를 외치며 일어나라는 호중 배우의 말에 관객 모두가 빵 터졌다. 옆에 있던 박지연 배우는 주저 앉아 계속 웃을 정도로.

2024년 4월 23일 (화) 오후 7시 30분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1층 7열 25번
VIP석 128,000원 2차 조기예매 20% 할인

2024년 4월 27일 (토) 오후 2시 00분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1층 12열 7번
R석 70,000원 신한카드 The Moment 50%할인

  1. 최철 역은 4/23엔 서재홍 배우, 4/27은 최호중 배우로 달랐다. 앙상블인 서재홍 배우가 최철 역을 맡는 날은 스윙인 안현석 배우가 앙상블을 대신 하는 것 같다. ↩︎
  2. 희한하게 공연 중엔 ‘베커 여사’가 ‘백호 여사’로 들렸다. 그래서 호랑이 같이 무서운 백인 여성의 한국식 이름인가 싶었음… ↩︎
  3. 이 곡과 바로 앞의 곡인 잘못된 꿈과 Aria2를 윌 아론손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다. 홍광호, 박지연, 신성민 배우 버전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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