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겨울나그네, 올드하다

작성 |

뮤지컬 쪽에서 가장 유명한 시상식인 토니어워즈에는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 Tony Award for Best Revival of a Musical이란 부분이 있다. 브로드웨이에 이미 올라왔던 작품을 훌륭하게 리바이벌 한 프로덕션에게 주는 상이다. 만약 국내 뮤지컬 시상식에도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이란 부분이 있다면 이번 겨울에 무대에 오른 뮤지컬 겨울나그네도 후보가 됐을까?  뮤지컬 겨울나그네는 동명의 최인호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것으로 1997년에 초연, 2005년에 딱 한 번 재연했는데 올해 12월에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나는 2002년 뮤지컬대상에서 선보였던 조승우와 배해선 배우의 축하무대로 이 작품을 알게 됐다. “캠퍼스의 봄”이란 넘버가 마음에 들어 실제 공연이 보고 싶었는데 2005년 공연을 놓친 나에게 드디어 이 작품을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예매를 하러 인터파크에 들어가니 한국인 이름 같지 않은 이름들이 캐스트에 잔뜩(MJ, 렌, 세븐, 진, 주아, …).이 공연 봐도 되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는 배우들이라 캐스트는 고려 않고 내 스케쥴에 맞춰 공연일자를 골랐다. 서범석, 오진영 배우 정도가 내가 아는 배우들. 원더걸스 선예 정도가 내가 아는 가수. 

초연 후 26년 만에 무대에 오른 이 작품에 대한 내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올드하다. 오래된 작품이고 배경도 수십년 전이지만 공연까지 이렇게 구닥다리 느낌일 필요가 있을까. 한국 뮤지컬 시상식에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 부분이 있더라도 후보에 못 오를 것 같다. 가장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한 부분은 너무 잦은 암전. 요즘은 무대 전환을 훨씬 세련되게 하지않나? 중간 중간 여러 장면들에서도 요즘 감성이 아닌 지점들이 있었다. 극을 관통하는 민우(렌 배우)와 다혜(한재아 배우)의 애틋한 감정도 잘 전달되지 않아 공연 내내 3자의 입장에서 보게됐다. 둘 사이의 감정이 표현되는 시간이 너무 짧고 두 배우의 케미가 잘 안 보여 사랑을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다혜는 내가 상상한 여리여리한 다혜 이미지와는 좀 다르기도 했다. 조카를 대하는 로라킴(오진영 배우)이나 삼각 관계를 이루는 현태(진진 배우)의 감정도 마찬가지. 관계에 공감을 못하니 민우의 고단한 삶에 공감을 못했고, 고단함에 공감을 못 하니 마지막 넘버인 레퀴엠의 후렴 가사1가 좀 뜬금 없이 느껴졌다. 마약을 거래하다가 죽은 사람에게 받치는 진혼곡으로 이게 맞는 가사일까 싶은. 그나마 민우 아버지(서범석 역)의 아들에 대한 감정은 잘 표현됐다. 여담으로 서범석 배우는 2005년 공연에서는 현태 역을 맡았다고 한다. 무대에서 본 게 오랜만이라 서범석 배우를 보고 누군지 떠올리는데 한참 걸렸다. 노래 소리를 듣고서야 떠올랐다는.

우려와는 달리 배우들의 가창은 괜찮은 편. 다만 현태 역을 맡은 진진은 미스캐스팅. 본인의 넘버 소화가 안 된다. 찾아보니 이 친구는 래퍼라는데 왜 이 역을 줬는지 모르겠다. 다혜 역을 맡은 한재아는 프리마 돈나에 잘 어울리는 성량 좋고 깨끗한 목소리. 그런데 커플인 렌과의 목소리 조합이 아쉬웠다. 차라리 라이벌(?)인 선예와 함께 부르는 여성 듀엣 넘버가 더 듣기 좋았다. 대중음악 작곡가이기도 한 김형석 작곡가의 곡은 감미롭고 귀에도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양재선 작사가의 노래 가사도 번안 작품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귀가 안 좋아 공연장에서 가사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날은 다 잘들렸다.

오래 전에 산 “뮤지컬 감상법”이란 책에 이 작품 초연 사진이 몇장 있는데 이번 공연에는 없는 씬의 사진이 있다. 초연이나 재연과 비교하여 내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초연, 재연을 개선한 것이 이 정도인 걸까. 회사에서 나오는 문화비를 연말까지 써야해서 여러 공연을 조회해보고 있는데 유독 이 공연이 좌석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이 것인 걸까? 실제로 최근 몇년 동안 갔던 공연장 중 가장 빈 자리가 많았던 것 같다. 앙상블이 많이 투입되는 이런 대작이 잘 돼야할텐데…

2023년 12월 19일 (화) 오후 7시 30분
한전아트센트 1층 E열 23번
VIP석 120,000원 개막기념 타임세일(20%)


PS: 이 공연을 보고난 후에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와 인터넷에서 초연 당시의 기사를 찾아봤다. 요즘 기사와는 달리 너무 적나라 한데? 경향신문과 문화일보 기사 중 일부.

“윤손하는 서창우에 비해 얼굴이 많이 팔렸다 …  윤의 경우 노래 실력이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목이 트였다… 지난해 12월초만 해도 서창우와 윤손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도도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선배들의 보리차 심부름까지 할 만큼 겸손해졌다…” (경향신문 97. 2. 7)

민우역의 서창우씨와 다혜역의 윤손하씨는 기성과 신인을 포함,2백대1의 공개오디션을 통과한 만큼 인물의 캐릭터에 꼭 맞는 청순한 외모와 뛰어난 노래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 정상급의 뮤지컬 배우들의 중후한 연기와 폭발적인 노래에 다소 눌리는 듯한 느낌을 주고있다. (문화일보 97. 1. 8. )

이 97년 초연 공연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화질은 엉망.

그리고 뒤늦게 이번 작품의 시츠프로브 영상을 봤다. 진작 보고 갔으면 내 취향의 배우들로 선택해서 공연을 봤을텐데. 내 취향은 이창섭 – 려욱 – 임예진 트리오. 제니 역은 두 배우 (선예, 여은) 모두 좋더라.

  1. 흘러간다 세상은, 멈추지 않고 변해간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모두 끝난다.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끝이 난다.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마음에 남아. ↩︎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