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시작되자마자 디즈니플러스를 결제했다. 디즈니플러스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뮤지컬 해밀턴을 보기 위해서. 작년에 미쉘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을 읽었는데 2009년 백악관에서 작곡가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가 해밀턴 전 미국 재무장관의 이야기를 랩으로 노래했다는 부분을 본 후 이 뮤지컬에 대해 알게 됐다.
백악관에서 공개한 영상을 찾아보니 랩이 무척 찰져 관심이 생겼지만 뮤지컬 전체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다가 디즈니플러스에 이 공연 실황을 영화로 만든 버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결제. 다만 현재 해밀턴에는 한국어 자막은 없다. 영어, 스페인어, 포루투칼어, 일본어 자막만 존재한다. 그래서 영어 자막을 켜놓고 봤다. 미국에서 공연 볼 때는 자막 없이도 봤는데 영어 자막만 있어도 쌩큐다.

감상
잘 알려진대로 이 공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인생을 다룬 뮤지컬. 이 영상은 2016년 6월의 공연을 녹화한 것으로 대부분의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가 무대에 올랐다. 보통 이렇게 무대를 촬영한 영상들은 인터미션 시간도 집어넣는데, 해밀턴은 딱 1분의 인터미션을 넣어놨다.
잘 알려진 곡인 Alexander Hamilton이나 My Shot도 좋았지만, 진짜 좋았던 건 Yorktown (The World Turned Upside Down)과 마지막 넘버인 Who Lives, Who Dies, Who Tells Your Story.
Yorktown은 강대국 영국을 상대로 한 미국 독립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요크타운 전투를 묘사한 곡이다. 포탄이 터지는 듯한 조명 아래의 군무와 랩이 잘 짜여진데다가 다들 정면을 바라보며 “The world turned upside down”이라고 외치는 마지막이 훌륭하다. 육성으로 “개쩐다”라고 말했을 정도.
이 공연의 마지막 넘버인 Who Lives, Who Dies, Who Tells Your Story는 항상 시간이 모자른 듯 바쁘게 세상을 살았던 해밀턴을 그의 아내가 이해하고 그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한 일들을 설명한 노래이다. 시간의 가치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어, 보고 있으면 눈물이 흐른다. (나무위키에는 이 곡을 ‘대망의 최루탄 파트’라고 표현했다)
이런 곡들이나 호평을 많이 받는 랩 외에도 The Schumyler Sisters, Helpless같이 여성 보컬이 시원한 곡들도 좋다. 영국 왕이 부르는 브릿팝 스타일의 곡들도 재미있다. 러브 송스러운 멜로디에 전형적인 남녀 사랑 얘기 같은 가사의 형태를 일부러 썼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다.
작사, 작곡에다가 주연까지 맡은 린마누엘 미란다는 대단하다. 가창이 아주 훌륭하다곤 할 순 없지만 그의 랩과 연기는 개성이 있다. 그는 전작 인더하이츠에서도 작사, 작곡과 주연을 맡았다. 뮤지컬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던 배우는 조지워싱턴 역의 크리스토퍼 잭슨. 워싱턴답게 진중한 역할과 가창이 마음에 들었다. 여성 배우에선 슈마이러 자매의 첫째인 안젤리카 역을 맡은 르네 엘리지 골즈베리가 좋았다. 고음이 시원시원하다. 사실 다른 배우들도 다들 훌륭하다.
무대는 거의 바뀌지 않는데 회전무대와 소품을 참 잘 썼다. 작품에 힘이 있으니 무대 장치는 중요하지 않구나. 만약 뉴욕을 간다면 무대 장치가 화려한 공연을 보고 싶지만 해밀턴도 보고 싶다. (그런데 매우 비싸다 ㅠㅠ). 영상을 통한 예습으로 대략적인 내용도 알았으니 잘 됐네.
작품 내내 “I am not throwing away my shot” 이라던 해밀턴이 정작 결투에선 한 발을 버린다는 게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알렉산더 해밀턴인 것이다. 그래서 총을 들어 하늘로 쏘는 해밀턴의 모습을 한 별 모양이 이 공연의 상징인지도 모르겠다.
토니상
2015년에 브로드웨이에 올린 후 토니상 13개 부문에 노미테이트된 후 11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 최우수 뮤지컬, 최우수 각본상,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남우 주연상, 최우수 남우 조연, 최우수 여우 조연, 취우수 의상상, 최우수 조명상, 최우수 연출상, 최우수 안무상, 최우수 오케스트라상. 그야말로 휩쓸었다. 내가 인상적으로 봤던 크리스토퍼 잭슨은 최우수 남우 조연상에 노미테이션됐고, 르네 엘리제 골즈베리는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22년 2월 추가)
한국어 자막
한 능력자가 해밀턴 한글 자막을 만들어 올려두셨다. 자막을 켜놓고 다시 보니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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