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동안 이어지는 프로젝트에 지친 회사 후배 둘과 퀵한 1박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강릉. 목표는 술 마시기. 서울에서 마시나 강릉에서 마시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원했달까.
재미있는 건 동행한 후배 둘이 최근에 각각 강릉을 다녀왔고 따라서 가볼만한 곳도 둘이 잘 알고 있다는 점. 난 아무 생각도 없이 따라 갔다. 그래서 여행기라고 쓸만한 것도 없다. 가자는 데 가서 그저 먹고 마신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기 위해 방문한 곳을 순서대로 나열한다. 숙소가 강릉시 교동 (신시가지 정도 느낌이란다)에 있었기 때문에 첫날 방문지는 모두 교동이다.
첫째날: 방 잡고 술 마신 날
투뿔우삼
동행한 후배가 아내와의 여행 때 방문했다는 숙소 앞 식당. 제수 씨가 반찬이 맛있다고 한 집이란다. 조금 이른 시간(저녁 5시 정도?)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금요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넓은 식당에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 마음 착한 후배들은 안타까워 했다.
한우, 키조개, 버섯 삼합을 메인으로 하는 집인데, 비슷한 메뉴를 내는 서울의 다른 식당 수준의 맛은 되는 것 같았다. 가격이 저렴한 집은 아니다. 주인으로 보이는 분께서 정성스럽게 재료에 일일이 칼집을 내 구워주셔서 편하게 먹었다. 칭따오 큰 병이 국산 맥주와 같은 가격(5,000원)에 판매 되는 게 놀라웠던 집. 칭따오로 시작해서 쏘맥까지 마셨다.
네이버 지도: http://naver.me/GozuJ6of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2차를 위해 향한 곳. 역시나 동행한 후배가 아내와의 여행 때 방문했다는 곳. 로컬 브루어리로 십여종의 자체 맥주를 팔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벽 뒤로는 양조장도 보였다. 인상적인 점은 맥주 뿐 아니라 자체 제조 막걸리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인데 신기하게 맥주처럼 투명했다. 이곳으로 데려간 후배의 평에 따르면 맛은 독특하지만 절대적으로 맛있다고 보긴 힘든 맥주를 판다고 표현했다.
15000원짜리 샘플러를 주문하면 내가 원하는 맥주 셋, 막걸리 한 잔 해서 총 네 잔을 맛 볼 수 있다. 나는 하트하트 페일에일, 배꽃향기 라거, 정동진IPA, 강릉막걸리를 선택했다. 후배의 말이 맞았다. 독특하지만 마음에 드는 맛은 아니었다. 강릉막걸리는 시다고 해서 금정산성막걸리 같은 맛일 거라 예상했는데 새콤하다기보단 진짜 시었다. 내가 주문한 네 잔 중엔 페일에일이 가장 좋았다. 메뉴판 제일 위에 위치한 건 이유가 있는 거다.
후배가 주문한 강릉세종 맥주도 한 모금 얻어 마셨는데 수정과 맛이 났다. 이건 Farmhouse Ale, 혹은 세종에일 (Saison Ale)인데, 이는 농주처럼 농부들이 일하면서 마시기 위해 만드는 맥주이다. 세종에일이라서 강릉세종이란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영문 표기는 Ganneung Saison이 아니라 Ganneung Sejong.
자리에서 일어설 때 보니 뒷편 테이블에 백발 어르신 세분이 앉아서 맥주를 드시고 계셨다. 그 분들을 보며 미래의 우리 셋 모습인 것 같다고 했다. 김훈 작가가 어느 에세이에서 나이 들면 만나더라도 술을 많이 못 마신다고 썼는데, 많이 못 마실 술, 한 잔 한 잔 개성 강한 크래프트 비어를 마셔도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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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라기
강릉브루어리와 숙소 사이의 골목에 있던 술집이다. 옷 가게처럼 통유리로 돼 있는 1층 가게인데, 통유리는 발로 가려져 있어 안을 볼 수 없고 “せせらぎ”라고 일본어로 적힌 작은 정사각형 나무 간판 하나만 걸려 있어 앞을 지나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서 3차를 하자고 결정.
들어가보니 매우 어둡다. 매장 가운데에 큰 ㄷ자 형태의 바가 있고 그 주변으로 몇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눈이 안 좋은 나는 메뉴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후배가 안주를 몇 개 고르고, 술은 하이볼을 마셨다. 일본 거주 경력이 있는 후배는 일본에서 먹던 것과 다르다며 안주의 퀄리티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난 어두컴컴하고 독특한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기쿠하이볼 6000원, 안주는 대략 2만원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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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전주콩나물국밥 강릉점
3차까지 마치고 숙소 쪽으로 걸어가던 도중 해장(?)을 위해 찾은 곳. 소주를 반주로 마셨다. 콩나물국밥이 5천원 정도 했다. 맛은 그저그랬지만 가격이 모든 걸 용서.
숙소로 돌아오니 밤 9시 좀 넘어서였던가? 좀 쉬다가 또 술을 마시러나가려고 했으나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고 깨보니 1시였다. 후배 중 하나는 혼자 나가서 또 술을 마셨다고 한다.
둘째날: 해장 후 비싼 고기 먹고 서울로
초당소나무집
교동의 교동짬뽕과 초당동의 초당두부 중 초당두부를 먹기로 했다. 서울에서도 흔히 듣던 명칭인 ‘초당 두부’의 기원은 아래와 같단다. 초당동에서 만들어서 초당두부가 아니라 초당이란 사람이 만들어서 초당두부이고, 동네 이름은 초당동이 된 것.
‘초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였던 허엽(許曄·1517~1580)의 호다. 초당 허엽은 여류시인 허난설헌과 ‘홍길동전’ 작가 허균의 아버지. 그가 강릉부사로 재임할 때 탄생한 게 바로 초당두부였다. 두부 명칭과 마을 이름이 ‘초당’인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초당 허엽이 오기 전에도 이 지역 서민들은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소금기가 없어 맛이 퍽 싱거웠다. 강릉 동해의 수심이 깊고 바람도 심해 천일염 생산이 어려운 터라 서민들은 소금기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에 초당은 바닷물이라는 천연의 간수로 두부를 만들게 했는데 특유의 맛이 소문나며 강릉의 대표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땅과 바다, 그리고 인간이 함께 빚어낸 ‘명품’ 먹거리랄까.
출처: 새벽 바다 머금은 강릉 초당두부
초당동의 여러 순두부 가게들 중 우리는 초당소나무집을 선택했다. 몇 주전 아내랑 같이 강릉 여행 왔던 후배가 가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바로 근처에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다. 식당엔 토요일 오전인데도 코로나의 영향이 없는 듯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코로나 전에는 더 사람들이 많았겠지.
지난 속초 여행에서도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순두부의 훌륭한 맛에 놀라웠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시킨 순두부전골도 해장에 딱이었다. 순두부와 밑반찬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잘왔다는 생각이 백번 들었다.
식당 한켠에서 순두부 젤라또를 팔았다. 이탈리아에서 먹던 젤라또 생각이 나서 사먹었는데 순두부 맛이라기보단 두유 맛이더라.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걸어가면서 먹는 대신 주차장에 세워둔 차 옆에서 먹었다. 뜨거운 날씨에 금방 녹았다. 순두부마을 여기저기에서 순두부 젤라또를 팔던데 원조는 어디일까.
순두부백반 9000원, 순두부젤라또 3500원.
네이버 지도: http://naver.me/FDQXXnOF



카페 곳;
강릉까지 와서 바다를 한 번도 안 봤기 때문에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러 찾은 카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 잿빛 노출콘크리트에 창문이 큰 – 건물이다. 인스타 핫플 느낌이 물씬난다. 2층에 잠시 앉아 커피를 마셨는데 사진을 정성스레 찍는 여러 사람들을 봤다.
이 집의 상징은 꼭대기 층의 허공을 향해 솟아오른 유리 계단. 전망대 느낌이다. 커피를 마신 후에 후배들은 놔두고 나 혼자 올라가봤다. 예상 외로 올라갈 때 아찔했다. 후배들은 거길 굳이 왜 올라가냐고 했지만 이까지 왔으니 한 번 해봐야지. 나는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봐야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하는 스타일인 듯. 바다를 따라 걷다보니 모래 위에서 서핑 배우는 사람들이 연습하는 게 보였다. 서핑은 궁금은 하지만 해보고 싶진 않았다.
아이스라테 5,500원.
네이버 지도: http://naver.me/Fn2i6NaP




용평회관
얼마전 강릉 여행을 왔던 다른 후배가 추천한 한우 맛집. 평창에 있는 곳인데 네이버 블로그 후기가 딱 두개의 키워드로 정리되는 곳: #비싸다 #맛있다.
이곳을 추천한 후배가 비싼 고기를 정성스럽게 한점 한점 구웠다. 고기집이라기보단 로바다야끼(화로구이) 느낌으로. 후배 말로는 이 집은 숯도 좋다고 한다. 고기가 좋아서일까, 숯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후배가 정성스럽게 구웠기 때문일까, 고기는 참 맛있었다. 순두부로 아침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간 곳이라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싼 고기를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인데 직접 구워야 하는 건 아쉬운 점.
등심 55,000원, 차돌배기 45,000원.
네이버 지도: http://naver.me/FOvh9KpH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MT를 제외하곤 친구들과 여행온 게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이번에 숙소를 잡을 때 각자 방 하나 씩을 잡았는데 보통 친구들이 여행 갈 때 이런 식으로 방을 잡는지 궁금해서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큰 방 잡고 같이 쓴다는 답변과 각 방 쓴다는 답변이 반반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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