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시간 못 잤는데 아내가 깨웠다. 아침 식사가 10시까지이기 때문에 적어도 9시 50분엔 방에서 나가야 했다. 돈 주고 산 조식 쿠폰을 그냥 날리기에는 우리 부부가 너무 쪼잔했기 때문. –; 자는 가현이는 방에서 나가기 직전에 깨워서 안고 내려갔다.
식당은 1층에 있었고 바로 옆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보통 호텔 조식처럼 부페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조식 쿠폰을 주고 주문을 하는거였다. 메뉴에는 “한식세트”, “일식세트”, “양식세트”, 달랑 3개만 있었다. 돈 주고 사먹으면 각각 $10 이상 하는 메뉴였다. 나랑 아내는 양식세트, 가현이는 일식세트를 시켰다. 일식 세트에 쌀밥과 고등어구이, 미소된장국, 김이 포함돼 있어서 가현이가 먹기에 가장 나을 듯 싶었다. 하지만 잘 안먹어서 김밥을 싸서 후식으로 나온 과일과 함께 미리 준비 해 간 락앤락에 챙겨넣었다. 구경 다니면서 먹이려고.

식사 후 로비에서 가이드와 어제 함께 숙소로 온 다른 팀들을 만나서 반나절 시내 관광을 나갔다. 딴 팀은 짐도 거의 안 갖고 편하게 가는데 우리는 유모차부터 가현이 기저귀 및 분유 가방, SLR 카메라까지 짐이 너무 많아서 좀 민망.
우선 아푸간 요새란 곳에 갔다. 오래 전 괌이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 당시에 요새로 사용됐던 곳이라고 한다. 지대가 높아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날씨도 좋지 않고, 가현이는 응아를 한 것 같은데 기저귀를 갈 곳도 없고, 졸리기까지 해서 괌에서의 첫 관광을 즐길 기분은 아니었다.

아푸간 요새를 떠나서는 다시 차를 타고 아산만 전망대로 갔다. 1898년부터 미국 영토였던 괌은 1941년 12월, 일본에게 공격을 당해 일본의 영토가 된다. 진주만 공습 직후의 일이다. 그리고 약 3년 뒤인 1944년 7월 21일에 미군은 괌 상륙작전을 감행하는데 그 때 상륙했던 곳이 아산만이다. 그 당시 일본군은 아산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위치에서 반격을 지휘했다고 한다. 그러던 이곳이 지금은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하나의 기념포인트로 지정 되어 전망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우리 부부는 가현이 똥기저귀를 갈 방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_-; 이미 가현이 응아 냄새가 전체 일행이 타고 있는 밴 안에 퍼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다행히 전망대에 가보니 벤치 같은 곳이 있었다. 얼른 차로 돌아가 기저귀 가방을 들고 전망대로 돌아가 가현이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그제서야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바다가 눈 앞에 펼쳐졌는데, 날씨가 맑았다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가이드 아저씨가 말한다.
다시 차에 타고 괌에서 제일 대표적인 관광지라 할 수 있는 (워낙 괌에는 관광지가 없다) 사랑의 절벽 (Two Lovers Point)으로 향했다. 사랑의 절벽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한 차모로 (괌의 원주민)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사랑하는 차모로 청년이 있었으나 부모에 의해 권력을 가진 스페인 장교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연인은 몰래 섬을 빠져나가다가 쫓기게 되자 이 절벽에 이르러 함께 머리를 묶고 바다로 몸을 던졌습니다.
절벽까진 무료인데 절벽 끄뜨머리에 만들어둔 전망대에 들어가는 것인 일인당 $3이라는 입장료를 받았다. 가이드 아저씨는 날씨가 쨍쨍하면 돈내고 입장하는 것을 100% 추천하겠지만 이날은 날이 흐려 그렇겐 추천을 못하겠다고 했다. 전망대에 들어가서 보는 경치가 밖에서 보는 경치보다는 훨씬 낫다는 얘기를 서울에서 미리 보고 간 터라 우리 부부는 망설임 없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여기 입장할 때 주는 티켓 뒷면에는 식당 쿠폰이 붙어있기 때문에 잘 보관할 필요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정말 전망이 좋긴 좋았다. 부산의 달맞이 고개와는 비교도 안된다. 고개를 숙여 절벽 아래를 바라보면 아찔 아찔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과 바다가 펼쳐져 있다. 가현이 안고 기념사진 많이 찍었다. ㅎㅎ. 날씨가 흐리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그 다음에는 투몬 시내로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숙소 라데라타워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 대신 라데라타워에서는 투몬으로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한시간마다 운행한다. 운행 시간은 다음과 같다.
운행 시간 : 오전 8:30부터 오후 9:30까지 (라데라 출발 기준)
각 정류장 도착 시간 :
– 라데라 : 매시 30분
– 하얏트호텔 : 매시 55분
– 갤러리아 면세점 : 매시 정각
– 마이크로네시안 몰 : 매시 10분
가이드 아저씨는 이 셔틀버스가 서는 시내의 정류장 세곳 (하얏트 호텔, 갤러리아 면세점 – 여기는 승하차위치가 다르다 -, 마이크로네시안 몰)을 보여주는 것으로 반나절 투어를 마쳤다. 물론 중간 중간 차 안에서 옵션투어에 관한 광고도 잊지 않으셨다. ㅎㅎ.
우리는 1시쯤 마이크로네시안몰에 내려 필요한 물품 구입 및 쇼핑을 시작했다. 마이크로네시안 몰은 쇼핑몰. Macy’s 백화점과 Payless 슈퍼마켓도 붙어있다. 여기서 애기 옷과 신발 위주로 구경을 하다가 몰 2층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아내는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며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주문. 난 여기까지 와서 한국에서 먹던 것을 먹는 것보단 이 곳 전통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에 Rambie’s란 카페테리아식 식당에서 이곳 음식 몇가질 주문해 먹었다.


입맛이 없다던 아내는 샌드위치는 거의 안먹었다. 대신 내가 고른 음식은 맛있다며 조금 먹었다. 식사 후 Macy’s 백화점 이층의 애기 옷 파는 곳을 좀 더 둘러보다가 옆에 붙어있는 Payless 슈퍼마켓에 가서 생수, 맥주, 스테이크 고기, 인스턴트 파스타, 초콜렛, 요플레, 선블락크림(바나나보트 아기용) 등을 구입하였다.
라데라 수영장 옆에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곳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먹으면 기가 막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일행이 너무 적어서 바비큐를 준비하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게 적을 것 같아 그냥 방 안에서 구워 먹을려고 스테이크 고기를 산 것이다. 그런데 그릴이 아닌 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다면 버터가 있어야지 팬에 눌러붙지 않는데, 스테이크 한번 해 먹으려고 버터를 한통 사자니 영 아까운 것이다. 그래봤자 버터 한통이 한 $1.5 밖에 안하지만 우리 부부는 소심하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몇번이나 버터를 들었다 놨다를 하다가 결국 구입하지 않았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 프라이팬에 구워 먹어 보고, 잘 안되면 지하 식당 가서 빵에 발라 먹는 버터 하나를 얻거나 숙소 지하의 편의점에 가서 버터를 사자고 결정했다. (실수였다. ㅠㅠ)
가현이 옷을 쇼핑하는 데도 우리 부부의 소심함이 그대로 반영되어 한참 시간만 끌고 옷은 아무 것도 구입하지 못한 채 4시 10분에 라데라셔틀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 가현이 우유병을 씻으며 맥주와 남겨온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 계획된 일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가져간 펌프로 가현이의 보행기튜브와 고무공에 바람을 낑낑 넣고, 온 가족이 수영복을 입고 호텔 수영장으로 갔다. 프론트에 가서 방 번호를 말하면 비치타올을 빌려준다. 그런데 수영장에 손을 넣어봤더니 물이 너무 차갑다. 성인 풀도, 유아 풀도. 그래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조그만 자꾸지에 온 가족이 들어갔다. 물론 가현이는 보행기튜브를 탄 채로. 가현이 최초의 물놀이다. 처음엔 좀 무서워 하더니 그래도 나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40분 정도 놀다가 방으로 올라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산 고기를 조금 잘라 팬에 구어보니 그대로 팬에 눌러붙었다. 그래서 버터를 사려고 지하에 있는 편의점을 갔는데, 이런 문을 닫아버렸다. ㅠㅠ. 그래서 스테이크 구워 먹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결국은 떠나는 날까지 못먹음) 인스턴트 치킨 파스타를 렌지에 돌려 먹었다. 나름 맛있었다. 양이 적고 비쌌지만.
라데라에서 애기 침대를 빌려준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하우스키핑에 전화를 해 애기 침대를 갖다 달라고 했다. 한참만에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애기 침대가 오늘 밤에는 모두 다 사용중이라고 하며 내일은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 겨우 하루 밖에 못쓰는 것이다.
자기 전에 가현이랑 침대 위에서 노는데 가현이가 사이드테이블 위에 있던 조식 쿠폰을 가지고 놀길래 뺏어보니, 이런 가현이 식사 쿠폰 2장이 사라졌다. 나와 아내의 쿠폰 4장만이 남아 있었다. 오전에 나갈 때 급하게 나가느라 팁을 안놔두고 나갔는데 혹시 직원이 팁 대신 가져간 건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침대 이불을 다 들쳐보고 침대 밑과 화장대 서랍까지 일일이 다 뒤졌는데도 사라진 조식 쿠폰 두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은 찾지 못했다. 이렇게 괌에서의 첫 날이 다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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