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Now &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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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홍콩 여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추억이 담긴 곳을 다시 가보고 싶어서. 즉, 추억 여행이 목적이었다. 10년 전에 가족 여행을 갔을 때는 애들을 데리고 가서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니느라 내가 가보고 싶었던 소소한 곳들을 찾지 못했다. 당시 기억과 현재를 비교해 본다. 나 혼자만의 추억 정리랄까? 마침 12월 31일에 가게 돼서 정확히 33년 전에 사진을 찍었던 장소들을 가보고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실패했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을 찍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1.

1990년 12월 31일 사진, 침사초이에서 찍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

다른 사진의 장소들도 마찬가지로 못 찾았다. 추억 여행을 위한 Now & Then 비교 사진은 못 찍었지만 글은 남겨본다.

아시아나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내가 비즈니스 클래스를 처음 타본 건 91년 혹은 92년 여름의 아시아나 김포 -> 인천 편이다. 방학 때 한국에 왔다가 홍콩으로 돌아갈 때 비지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됐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받았던 기념품인 손톱깍이 세트가 희미한 기억에 대한 증거로 남아있다. 우측 상단 철판을 확대해보면 당시 아시아나 로고가 선명하다. 아직 잘 쓰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내 돈/마일리지로 비지니스 클래스를 탔다. 32년 전에 탔던 아시아나 비즈니스를. 이제 기념품은 없었다.

1992(?)년 아시아나 비즈니스 클래스 타고 받은 어매니티.
2024년의 아시아나 비즈니스 클래스.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어매니티는 슬리퍼 정도?

홍콩 공항

내가 홍콩에 살던 90년대 초반의 홍콩 공항은 카이탁 KaiTak 공항이었다. 지금의 홍콩국제공항인 챕락콕 Chek Lap Kok 공항은 98년에 개항했다. 카이탁 공항은 도심 위에서 급선회 후 건물들을 스치듯 지나쳐 착륙하는 방식으로 악명이 높은 공항이다. 아쉽게도 나는 바다를 향해 활주로가 뻗어나와있던 점 외에는 카이탁공항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이번에 과거 카이탁공항 활주로나 착륙을 위해 사용하던 사자산의 체커보드를 방문해볼까 검색도 해봤지만 교통편이 안 좋아 가지 않았다.

지금의 책랍콕공항은 이번과 2014년 여행에 이용해봤다. 역시나 특별한 기억은 없다. 이번에 홍콩에 도착할 때보니 항공기가 지나갈 정도의 대형 육교가 주기장에 있어 놀라웠다. 공항 내 이동을 위해서는 보통 지하로 통로를 만들텐데 지상으로 대형 다리1를 건설하다니… 중국다운 스케일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의 홍콩국제공항인 첵랍콕공항과 대형 육교

센트럴-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내가 홍콩에 살던 90년대 초반엔 없던 것으로 당시에 이걸 만든다는 뉴스만 들었다. 내가 홍콩을 떠난 1년 뒤인 93년에 개통됐다고 한다. 흔히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라고 하지만 여러 개의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를 이어붙인 이 에스컬레이터를 그런 식으로 표현해도 되는진 모르겠다. 하긴 이게 만들어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제일 긴 에스컬레이터라고 주장하던 홍콩 오션파크의 에스컬레이터도 저런 식이었다. 오래전에 영화 중경삼림에서 봤는데 드디어 타봤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저지대인 센트럴이나 셩완에서 산 중턱(미드레벨)의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미니버스를 탔던 기억이 난다. 반대 방향인 내리막은걸어서 많이 다녔다. 이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면 훨씬 편하게 집으로 갔을 것이다. 내가 여행 전에 찍어놓은 희망 방문지들이 이 에스컬레이터 주변이라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번 편하게 이용했다.

2024년에 타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상행선

미드레벨 Mid-Level의 집

홍콩에서 살던 집은 두 곳이다. 폭풀람 PokFuLam에서 살다가 미드레벨으로 이사를 갔었다. 폭풀람 집은 멀어서 이번에 못 가봤지만 미드레벨의 집은 찾아가봤다. 로빈슨 로드Robinson Rd.에 있단 기억만 가진 채 내가 살 때는 없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쉽게 찾았다. 1층에서 5층까지는 차량용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좁은 주차장이고, 그 위가 주거층이었다. 검색해보니 홍콩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이 아파트의 내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추억은 방울방울…

이번에 방문한 1990년대 초 우리 집
1991년 12월에 이 집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

로이든하우스 스쿨

홍콩에서 로이든하우스스쿨 Royden House School이란 학교에 다녔는데, 이번에 찾아가보니 영어유치원(?)으로 바뀌었더라. 내가 이 학교를 다니던 90년대 초에도 꽤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아직도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끔 점심을 사먹던 학교 주변 허름한 식당도 가봤는데 휴일이라 문이 닫혀있었다. 구글 지도로 사진을 보니 주인은 바뀐 듯.

2023년에 영어유치원으로 바뀐 학교 건물
1990년대(추정)의 학교

홍콩 컨벤션 센터

90년에 홍콩으로 이사갔을 때 집 구하기 전에 묵었던 곳이 홍콩컨벤션센터의 동쪽 타워에 있는 뉴월드하버뷰 New World Harbour View 호텔(지금은 르네상스하버뷰 호텔로 바뀌었다)이었다. 그 이후 취업박람회 등등 여러 이유로 홍콩컨벤션센터에 갔었고. 내가 홍콩을 떠난 후 증축을 해서 90년대 초반의 모습과는 달라졌다. 바다를 매립해 거대한 전시장을 붙여 지었다. 1997년의 홍콩 반환식도 여기서 했다고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컨벤션센터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이 건물에 있는 그랜드하얏트와 르네상스 하버뷰 호텔 로비 구경만 잠깐 해봤다2. 90년대 초처럼 서쪽 타워의 그랜드하얏트 로비는 여전히 고급스럽고, 동쪽 타워의 르네상스호텔 로비는 여전히 덜 고급스러웠다. 르네상스호텔은 이름은 바뀌었지만 2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로비가 나오는 방식은 여전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1990년대 홍콩컨벤션센터의 모습. 내 기억 속의 모습이다
1997년에 확장한 홍콩컨벤션센터의 모습

셩완 슌탁센터

이곳의 기억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해외에서 귀국 시 홍콩에서 스탑오버를 하면서 슌탁센터에 있는 빅토리아 호텔 Hotel Victoria 에 묵었다. 어린 나의 눈에 화장실에 깔린 까만 대리석이 엄청 고급스러웠는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 이후 화장실에 대리석 바닥을 까는 것이 희망 사항이 될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끄러워서 위험할 것 같다.

90년대 초에 홍콩에 거주할 때 이미 이 빅토리아 호텔은 없어졌고, 슌탁센터는 마카오행 페리를 타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나 이 곳에서 마카오 행 페리를 탔다.

1991년 요트 위에서. 뒤에 붉은 색 철골이 중간중간 들어간 슌탁센터가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본 슌탁센터.

마카오 리스보아 호텔

홍콩에 살 던 1991년, 마카오에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지금의 마카오처럼 카지노가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딱 한군데, 리스보아 호텔과 카지노만은 기억이 난다. 미성년자였던 나와 동생은 카지노에 들어가지 못 하고 부모님이 구경을 다녀오시는 동안 카지노 입구 밖에서 기다리며 샤프에서 나온 디지털 수첩을 가지고 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 리스보아 호텔 옆에 그랜드 리스보아라는 거대한 신관을 지었다.

이번 방문에서 사진 찍은 리스보아 카지노. 과거 모습 거의 그대로 같다.
신관인 그랜드리스보아. 색상부터 모양까지 어마어마하게 화려하다.

마카오 성바울성당 유적

1991년 마카오의 랜드마크인 성바울성당은 유적 복원 중이어서 성당의 전면이 가림막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마카오까지 가서 랜드마크를 실제로 보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성당 바로 옆의 몬테 요새에 올라가 시가지를 내려다 봤었다.

그 이후 33년이 지난 이번 여행에서야 성바울성당의 파사드를 두 눈으로 보게 됐다. 마카오 관광청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오디오 가이드를 함께 들으며. 같이 있는 박물관도 잠깐 살펴본 후 몬테 요새에 올라가기 위에 벤치에 앉아 잠깐 쉬었는데, 생각해보니 굳이 몬테요새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낮술을 마시러 언덕을 내려갔다. 몬테요새에 올라가서 33년 전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을 걸 그랬나.

1991년 몬테요새
2024년 실제로 보게된 성바울성당 파사드

  1. 사진 찍은 장소를 하버시티 입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간 하버시티 입구는 너무 달랐다. 사진에 China City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있어 검색해보니 침사초이에 China Hongkong City란 곳이 있는데 이곳의 입구도 사진과는 너무 달랐다. 장소가 다른건지, 그동안 리노베이션이 많이 된건지 모르겠다.
    24년 2월에 추가 이 글을 쓰고 페이스북에서 홍콩의 옛날 사진을 공유하는 클럽을 알게 됐다. 거기에 사진을 올렸더니 금방 China City란 유명한 나이트 클럽 앞이라고 한다. 2005년에 폐업했고 침사추이 페닌슐라센터란 건물에 있었다고 함. ↩︎
  2. 찾아보니 이름은 스카이브릿지 Sky Bridge이고, 제1터미널과 북쪽 탑승동을 연결하는 육교. 초대형 여객기인 A380도 아래로 지나갈 정도의 폭이라고 한다 ↩︎
  3. 이번 여행에서 홍콩컨벤션센터에 가본 이유는 1990년 12월 31일, 뉴월드하버뷰호텔에서 찍은 사진의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호텔 로비를 돌아봤지만 사진의 배경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사진을 여기서 찍은 것이 아니라 벽의 무늬가 비슷한 센터럴의 익스체인지 스퀘어에서 찍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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