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돈도 없어서 공연 대신 유튜브로 뮤지컬 클립만 주구장창 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유튜브가 추천한 “정은지, 제시카 뮤지컬 금발이너무해 무대 비교”란 영상을 보고 떠오른 기억들을 적어본다. 제시카는 금발이너무해 한국 초연 무대에 섰던 세 명의 엘 중 하나였고, 정은지는 재연 무대에 섰던 배우 중 한 명.
정은지와 제시카의 금발이너무해 공연에 대한 감상은 이 블로그에 썼었기 때문에 지금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꽤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 뮤지컬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Note: “Legally Blonde”의 국내 공연은 초연에선 ‘금발이너무해’란 제목을 썼고 재연에서는 ‘리걸리블론드’란 제목을 썼다. 여기선 ‘리걸리블론드’로 통칭한다.)
리걸리 블론드 트라이아웃
이 작품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이 작품을 공연 초창기 때 봤기 때문. 리걸리 블론드가 브로드웨이에 올라가기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트라이아웃을 했다. 트라이아웃공연은 스프트웨어로 치면 일종의 베타 테스트인데 내가 본 것은 트라이아웃 공연 중에서도 프리뷰 공연이었다. 즉, 트라이아웃의 트라이아웃을 본 것이다. 한국인 중엔 이 공연을 내가 가장 먼저 보지 않았을까? “초연부심” 뭐 이런 게 있어서 애정이 생긴 듯?
2007년, 저지보이즈를 보러 간 샌프란시스코 커란 씨어터(Curran Theater) 로비에서 새로운 뮤지컬의 트라이아웃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예매한 게 이 리걸리블론드 트라이아웃이였다. 새로운 뮤지컬이어서 리뷰를 찾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재미에 확신이 없어 가장 싼 3층 좌석을 예매했다. 당시 공연을 보고 적어놓은 후기를 보면 거의 흠잡을 데 없이 재미있지만 몰입하게 만들진 못 했다고 적어놨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3층에서 본 게 사쉬울 정도의 공연은 됐던 것 같다.
현장에서 느낀 건 그 정도였지만 추후 찾아본 이런 저런 정보들이 이 공연에 대한 애정을 더 높였다. 특히 누군가가 MTV에서 녹화 중계한 이 공연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준 덕분에 무대에서 멀고 영어가 부족해서 놓쳤던 여러 부분들을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었고 이 작품의 매력도 다시 느끼게 됐다.
로라 벨 번디 (Laura Bell Bundy)
이 작품의 매력의 상당 부분은 주연인 엘역을 맡은 배우인 로라 벨 번디 (줄여서 LBB) 덕이다. 뮤지컬 헤이스프레이의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앰버 역으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한 LBB는 뮤지컬 리걸리블론드의 주인공인 엘 역을 맡아서 파워풀한 가창과 깨알 같은 코미디를 잘 살리는 연기를 했다. 이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에 한국 번안 공연도 여러 회 봤지만 LBB가 보여줬던 에너지풀한 연기를 볼 수는 없었다. 국내 리걸리블론드 무대를 보고 ‘에너지’, ‘파워풀’이 모자라단 표현을 후기에 많이 적은 이유이다. 이 공연의 1막을 마무리하는 대표곡인 So Much Better (한국 공연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네’란 제목을 쓴다)만 봐도 이 배우의 에너지와 파워, 그리고 능청스러움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LBB를 이을 엘을 찾는 MTV의 오디션 프로그램: The Search for Next Elle Woods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인 LBB의 뒤를 이을 배우를 찾기 위해 2008년 MTV에서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을 했다. 이름은 Legally Blonde: The Musical – The Search for Elle Woods. 여기서 우승한 Bailey Hanks는 2008년 7월 23일 공연부터 엘을 연기했는데 공연이 2008년 10월 19일에 내려가서 겨우 두달 남짓 밖에 공연하지 못 했다는… 이 프로그램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큰 재미는 없다. 8개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Bailey의 공연 영상도 유튜브에 있지만 LBB와 비교돼서 욕 먹는 상황…….

2007년 4월에 브로드웨이에 올라가서 2008년 10월에 내려갔으니 약 1년 6개월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다. 썩 성공적인 프로덕션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웨스트엔드에서는 조금 더 인기가 있었는지 2년 넘게 공연했다. 한국 공연을 포함한 여러 로컬, 그리고 투어 공연들도 있었다. 유튜브에는 프로들이 아닌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덕션 영상들도 많이 올라와 있는데 찾아보고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런 미국 아마추어 무대들의 스케일도 꽤 크다. 이런 친구들이 커서 브로드웨이로 가는구나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