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회원님께서 ‘벨기에 맥주 최강자전’이란 이름의 벨기에 맥주 강좌 및 시음회를 진행한다고 해서 얼른 신청했다. 보통 맥주라고 하면 독일을 많이 떠올리지만, 정작 독일에서는 맥주 순수령 때문에 맥주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못 이루어지는 편이다. 반면 벨기에는 맥주의 다양성으로 유명한 곳이다. 글로만 읽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벨기에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벨기에 맥주 스타일
이 날 주최자는 강의 자료와 함께 벨기에 맥주의 여러 스타일에 해당하는 맥주를 준비했다. 정성이 들어간 강좌였다. 이날 맛 본 맥주는 다음과 같다. 아, 벨기에 스타일 맥주라서 벨기에가 아닌 나라에서 만든 맥주들도 있다. 내가 시음하며 적은 메모도 덧붙인다.
- Witbier: 벨기에 Hoegaarden 지방의 전통 맥주로 부재료로 오렌지 껍질이나 코리앤더 등이 들어감
- 셀리스 화이트 Celis White : 블루문과 비슷한 맛 (ABV 5.0)
- 세인트 버나두스 St Bernardus Wit : 일반적인 위트에일 맛, 셀리스 화이트에 비해 향긋함은 덜했음 (ABV 5.5
- Saison: 벨기에 Wallon 지방 농주. 추수 후 만들어 여름 농번기 때 소비
- 세종 듀퐁 Saison Dupont : 살짝 쓰고 시큼한 향 (ABV 6.5, IBU 30)
- 구스아일랜드 소피 Goose Island Sofie : 덜 시큼하고 향긋 (ABV 6.5, IBU 20)
- Belgian Golden Strong Ale: 높은 도수, Tripel과 상당히 유사, 탄산감 높음
- 듀벨 Duvel : 독하고 쓰다. 델리리움보다 좀 더 구수한 편 (ABV 8.5, IBU 33)
- 델리리움 트레멘스 Delirium Tremens : 듀벨보다 향이 있는데, 위트에일스러운 향이랄까? (ABV 8.5)
- Trappist Ale & Abbey Ale: 수도원 맥주로 Abbey Ale은 트라피스트 협회 소속이 아닌 경우
- Dubbel: 시메이 레드 Chimay Premiere (ABV 7.0, IBU 19)
- Tripel: 트리펠 카르멜리엇 Tripel Karmeliet : 듀벨과 비슷한 맛으로 독한데, Quardrupel 비교하면 확실히 순하다 (ABV 8.4, IBU 16)
- Quadrupel: 세인트버나두스 압트12 St. Bernardus Abt 12 : 듀벨과 스타우트를 섞은 맛 (ABV 10, IBU 20)
- Flanders Red Ale: 벨기에 Flanders 서부 지방의 토속 맥주 스타일
- 듀체스 드 부르고뉴 Duchess De Bourgogne : 시큼한 맛 강하고 도수는 안 높다. 단 레드와인 맛 (ABV 6.2, IBU 11)
- Flanders Brown Ale: 벨기에 Flanders 동부 지방의 토속 맥주 스타일. Oud Bruin이라고도 함.
- 리프만스 구덴반트 Liefmans Goudenband : 듀체스 드 부르고뉴 대비 신맛은 덜하다. 우롱차 같은 끝맛이 난다? (ABV 8.0, IBU 9)
- Lambic: 벨기에 브뤼셀과 인근 지역의 자연 발표 에일
- 린데만스 꾸베 르네 Lindemans Cuvee Rene 2020 : 똥향 ㅠㅠ, 맛은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자리를 마무리하며 코르센동크의 크리스마스에일을 마셨다.













도수가 높은 맥주가 많다보니 조금씩 마셔도 확실히 중간 정도부턴 취하더라. 벨기에 맥주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다보니 계속 안 마시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계속 모르는 상태로 흘러 갔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벨기에 맥주를 다양하게 마시면서 많이 배웠다.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최강자는? 듀체스 드 브르고뉴
참석자들이 이 날 마신 맥주 중 가장 선호하는 맥주 3개를 골라 합산을 해보니 듀체스 드 부르고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나 역시 이날 마신 맥주 13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듀체스 드 부르고뉴였다. 긍정적인 의미로 개성이 강했다. Flanders Red Ale 스타일이다. Flanders는 ‘플란더스의 개’의 그 플란더스(불어로는 Flandre 플랑드르)가 맞다. 벨기에의 북쪽 지역이라고 한다. 이 지방의 동부에서는 Brown Ale을, 서부에서는 Red Ale을 많이 만든다고. 듀체스 드 브루고뉴는 이날 마신 술 중 가장 비싼 맥주였는데, 일반 맥주 가격이 아닌 와인 가격과 비교하면 마실만한 가격일 것 같다.
“듀체스 드 부르고뉴”는 “부르고뉴 공작 부인”이란 의미이다. 플랑드르에 살았던 실존 인물인 부르고뉴 공국의 마지막 상속녀 마리를 말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대항해시대의 탄생”에서 그에 대한 내용을 본 적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국왕, 부르고뉴의 공작, 이탈리아의 군주 등 화려한 타이틀을 몽땅 가지고 있던 카를 5세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이다. 마리는 카를 5세의 할머니이다.
카를의 할아버지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막시밀리안 1세는 유럽 변방에 위치한 가문을 일으키고 싶었다. 당시 (15세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는 부르고뉴 공작이었다. 그의 영토는 프랑스 동부의 부르고뉴에서 북부의 벨기에를 거쳐 네덜란드까지 뻗어있었다. 1477년 부르고뉴 공작 샤를이 갑작스럽게 전사하여 공국은 그의 유일한 상속녀 마리에게 돌아갔다. 아버지를 잃은 마리는 자신과 공국을 지켜줄 신랑을 필요로 했다. 유럽의 모든 왕실이 그녀를 탐했을 때 그녀는 마음에 품고 있던 막시밀리안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마리의 요청을 받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플랑드르를 향해 출발했고 결혼했다. (책 내용 요약)
내가 선택한 선호 맥주 중 나머지 두 개는 셀리스 화이트와 트리플 카르멜리엇이었다. 사실 탑원인 듀체스 드 브르고뉴는 자신 있게 뽑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선택이 쉽지 않아서 막 고른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