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렸던 영화다. 공연으로 5번 봤던 뮤지컬이 영화화 됐다. 뮤지컬 해밀턴과 워싱턴하이츠의 원작자인 린마누엘 미란다가 감독을 맡았다. 미쉘오바마의 자서전을 읽으며 린마누엘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라슨이 떠올랐는데 라슨의 작품을 린이 감독했다니 재미있다. (인터넷에서 본 린마누엘이 NYT에 쓴 라슨에 대한 헌사 번역본)
뮤지컬 틱틱붐은 렌트의 창작자 조나단 라슨이 렌트를 만들기 전에 1인극으로 공연하던 ’30/90’이란 작품이 원작이다. 라슨 사후에 극작가 데이빗 어번이 이 1인극을 3인극으로 각색하고 이름도 ‘틱틱붐’으로 변경하여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렸다. 나름 성공해서 국내에까지 들어왔고, 이렇게 영화로도 제작됐네. (1인극 시절의 녹화 영상은 글 뒤에 붙이겠다)
영화 줄거리는 뮤지컬 틱틱붐과 같다. 1990년, 서른 번째 생일이 다가오는데 여전히 뮤지컬 작곡가로 성공하지 못한 조나단 라슨 본인의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친구들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직업으로 옮겨가는데 본인만 식당 알바를 하며 꿈을 좇고 있다. 나이 서른이 되기 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워크샵이 다가오지만 2막에 필요한 여성 솔로곡을 쓰지 못하여 초조한 상태이다. 이번에도 만약 실패하면 꿈을 포기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계속 좇아야 할까?
영화는 공연을 볼 때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잘 보완됐다. 친절하게도 배경 설명이 추가되어 Come to you senses를 만들 때의 절박함이 더 잘 표현됐다. 또, 공연에서는 나오지 않는 뮤지컬 슈퍼비아의 다른 넘버들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넘버 Sunday의 원조(?)인 스티븐 손드하임의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장면이 삽입된 것도 좋았다. 1인극 시절의 원조 무대를 재연한 것도 좋았다. 공연에서 빠져있던 Boho days가 포함된 것도 좋았다. 좋은 것 투성이네.
30/90넘버의 오즈의 마법사 관련 내용 나오는 부분 안무가 위키드 오마쥬 같은는데 재미있었다. 틱틱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인 살랑살랑 거리는 Green Green Dress는 끈적한 분위기로 짧게 나온 건 아쉬웠고, 신나는 곡 Sugar가 빠진 것도 아쉽다. ‘이런 곡은 왜 만든거야?”라며 가사로는 잠깐 언급됐만.
자전적 뮤지컬인 틱틱붐의 서사를 표현하기 위해 1990년 당시의 현실과 1인 공연 무대를 번갈아 가며 쓴 게 인상적이다. 존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는 내가 본 무대 위의 그 어느 존(남경주, 이건명, 강필석, 신성록, 조이 메킨타이어)에도 뒤지지 않았다.
가수, 작곡가, 연출가 등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열정을 가지고 살면 성공한다는 메시지보다는 적어도 혼자만 힘든 건 아니라는 위로의 메시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래는 유튜브에 있는 조나단 라슨의 30/90 (원조 틱틱붐) 공연 당시의 영상. 이 영화에서 공연 장면과 유사하다. 라슨이 캠코더로 많은 영상을 남겨둬 영화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PS:
원 영화에선 그린 그린 드레스가 아주 짧게 나왔었는데 넷플릭스에서 그린 그린 드레스의 삭제된 씬을 공개했다. 설마 이 씬을 촬영해뒀을 줄이야!! 그런데 보고 나니 영화랑은 안 어울려서 뺀게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스무 개의 단추와 끈(Twenty buttons and a strap)을 푸는 살랑살랑 섹시섹시 장면을 상상했는데 너무 장난스럽다.
하지만 이 장면만 떼놓고 즐기기엔 아주 좋음. 쌩큐,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