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화신백화점 – 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란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해서 보고왔다.
화신백화점: 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다섯 개의 백화점이 있었다. 네 개는 일본계 백화점(미츠코시, 히라다, 미나카이, 죠지야)으로 일본인 상권이었던 명동쪽에 있었고, 한국인 상권이던 종로에는 조선인이 세운 화신백화점이 있었다.
화신백화점은 현재 종로타워 자리에 있던 백화점이다. 원래 여기에는 화신상회가 있었는데, 박흥식이 인수하여 3층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축 후 1932년 화신백화점이란 이름으로 백화점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바로 옆에 있던 한국인이 세운 동아백화점도 인수하여 화신백화점 서관, 동관이 된다.
1935년, 화재로 서관이 전소되자 6층에 달하는 화신백화점 신관을 지어 1937년 준공됐다. 조선인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했다. 화재에 일부 영향을 받은 동관도 5층으로 증축했단다. 네온사인과 19m길이의 전광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트로 눈길을 끌었다고. 경성 인구의 80퍼센트가 구경했다고 하고, 시골 노인들도 알 정도였단다. 장안의 명물이자 종로의 랜드마크이다.
6.25 전쟁 이후 불타 뼈대만 남았다가 1967년 교복을 만들어 파는 신생이란 업체에게 백화점을 넘겼다. 1986년, 내가 배재중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 체육복을 사러 이 화신백화점에 간 적이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부는 오래된 아파트 상가 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1987년 화신백화점 건물이 헐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종로타워가 생겼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공평동 일대의 조선시대 유적을 전시하는 곳이다. 위의 화신백화점 전시를 포함하여 1시간에 걸쳐 둘러봤다. 전시관 자체보다 이 전시관이 생기게 된 배경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이 곳에 있던 공평빌딩을 철거하고 보니 땅 아래에서 다양한 유물이 나왔는데, 유물이 나왔다고 도심재개발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고, 유물을 무시하고 재개발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찾은 방식을 ‘공평동 룰(Rules)’으로 표현하는데 다음과 같단다.
- 매장문화재 위치를 고려한 건축 설계
- 매장문화재 보존 면적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사업시행자의 자발적인 참여 유도
- 유적전시관 조성 가이드라인을 제시, 총괄 건축가와 협의
- 보존된 유적전시관은 서울특별시에서 운영
실제 당사자들은 어느 정도 불만이 있었겠지만 제삼자인 내가 보기엔 어느 정도 합리적인, 여럿이 양보를 해서 만든 규칙으로 느껴졌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진 이 전시관은 공평빌딩을 철거하고 만든 건물인 센트로폴리스의 지하에 있다.
전시관 끝쪽에 ‘이문안길’에 대한 영상이 있었는데 영상의 스토리텔링이 아주 좋았다. 스크린 속의 돌담과 실제 돌담 유적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감탄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홈페이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