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Medici는 이탈리아-영국 합작 드라마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 대한 역사 드라마이다. 피렌체 여행을 한 사람은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이 메디치 가문이다. 엄청 재미있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피렌체나 메디치 가문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볼만하다. 시즌1은 마스터즈 오브 플로렌스 Masters of Florence가 부제이고, 시즌 2와 3은 더 매그니피션트 The Magnificient가 부제이다. 시즌1은 “국부” 코시모 로렌초, 시즌2와 3는 그의 손자 “위대한” 로렌초에 대한 내용이다.
드라마 메디치의 배경
내용 이해를 위해선 15세기 이탈리아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있어야 한다. 드라마 내에서는 이에 대한 묘사가 친절치 않아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력 간 다툼이나 무역 이슈가 얼마나 심각한건지 이해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이슈가 유야무야 해결되는 느낌도 든다(논리갑 메디치가 말빨로 해결하는 느낌?).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15세기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국가로 쪼개져 있었고 피렌체 공화국도 그 중 하나였다. 시즌 1, 2에 등장하는 주변의 강대국으로는 밀라노공국과 베니스 공화국이 있다. 그리고 시즌3 초반에 등장하는 나폴리 왕국이 반도 남쪽에 있다. 신의 대리인인 교황도 영토가 넓었다.

이 메디치 드라마의 내용을 시즌 별로 메디치가문에 대한 위키피디아 문서를 참고하며 살펴보자. 스포성이긴 한데… 역사에 스포가 있나?
시즌1: 마스터즈 오브 플로렌스
시즌 1은 위키의 아랫 문단에 대한 내용이다.
조반니 디 비치는 메디치 은행을 설립하여 가문의 재산을 늘렸으며,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비록 얼마간의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그는 가문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조반니 디 비치 이후 메디치가의 계통은 둘로 나뉜다. 조반니 디 비치의 장자 국부 코시모 계통과 조반니 디 비치의 차남인 대 로렌초의 계통이다. 1434년 조반니 디 비치의 장남인 코시모 데 메디치가 그란 마에스트로(비공식적인 국가원수)의 자리를 인계받았으며, 피렌체 공화국의 실권자가 되었다.
다들 이름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한다. 심지어 동명이인도 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과 메디치 예배당에 갔을 때도 그놈이 그놈 같았다. 위 설명에선 세 명만 기억하면 된다. (이 글 아래 내가 직접 그린 인물관계도가 있으니 참고)
- 아버지 조반니: 메디치 은행을 설립
- 큰아들 코시모: 메디치 가문을 피렌체의 군주로 만듬
- 작은 아들 로렌초
시즌 1 시작과 동시에 조반니가 암살 당하며, 이 원인을 밝히는 게 시즌 1의 주 내용이다. 조반니의 암살은 실제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라고.
예술 소년이었던 코시모가 냉혈한 정치를 배워가는 과정을 다뤘다. 시즌1에서는 알비치 가문이 메디치 가문의 정적이다. 기대했던 피렌체 두오모 건설은 큰 분량을 차지하진 않았다. 19금 장면도 종종 나오는데 tving에서는 다 잘렸다.
시즌 2: 더 매그니피션트 1부
시즌 제목부터 대놓고 ‘위대한’ 로렌초를 뜻한다. 이 로렌초는 시즌1의 (작은 아들) 로렌초랑 다른 사람으로 코시모의 손자이다. 시즌1의 끝 부분에 코시모의 아들이 삼촌의 이름을 따서 아들 이름을 로렌초로 짓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가 흘러 시즌 1으로 익숙해졌던 얼굴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
이 시즌의 주인공 로렌초에 대한 위키의 요약은 아래와 같다.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에게는 도시를 이끌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죽은 후에 그는 “위대한 로렌초”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또한, 그는 자기 아이들에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었다. 로렌초는 자신의 성공적인 도시경영을 계속 이어가게 하고자 아이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들의 미래와 직업을 설계하였다. 1478년 4월 26일 부활절에 피렌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는 암살당한다.
여기서 말하는 암살사건은 ‘파치 음모 사건’인데, 시즌2의 핵심 사건이라고 보면 된다.위키에 소개된 파치 음모 사건은 다음과 같다.
파치 음모 사건은 파치 가문이 주도하여 피렌체의 통치자로 군림하던 메디치 가문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기 위해 벌인 사건이다. 1478년 4월 26일 피렌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들이고 있는 메디치 가문의 형제 2명에 대한 살해를 감행하였다. 형 로렌초는 부상을 입었지만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남았으나 동생 줄리아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암살과 동시에 프렌체스코 살비아티가 페루자에서 데려온 용병들을 이용해 시뇨리아 궁으로 쳐들어가서 정부를 전복시키고 장악하려 했으나 이것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정권탈취를 위한 쿠테타는 실패로 끝났고 파치가문의 프란체스코를 포함한 주동자 5명등 공모자들의 대부분은 곧 체포되어 성난 군중에 의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파치 가문의 수장인 야코포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곧 잡혀 송환된후 화형에 처해졌다. 파치 가문 일족들은 피렌체에서 추방당했고, 그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였다. 파치 가문의 명칭과 문장들은 영구적으로 사용금지 조치를 당했으며 가문 이름이 공공장소에서 지워졌다.
메디치 가문과 적대관계에 있던 교황 식스토 4세(재위 1471~84)는 이번 반란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재위기간 내내 교황령과 자기 가문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교황은 메디치 가문을 피렌체에서 몰아낸후 피렌체를 교황령에 포함시키려고 하였다.
이 사건을 모를 때는 목표(아버지의 암살자를 찾아라)가 뚜렷한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방향성이 애매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모든 내용이 이 사건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일어나는 시즌2의 마지막 회가 최고였다. 시즌2에서는 파치 가문이 정적이다.
시즌 3: 더 매그니피션트 2부
시즌 3는 파치 음모 사건 이후 비정해진 로렌초의 이야기. 피렌체의 안위(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모든 짓을 한다. 교황과의 전쟁 동안만 유지하겠다는 10인회 (거의 독재)는 마지막 회까지 이어진다.
위키피디아 로렌초 메디치 항목에 시즌3의 배경이 된 내용들이 담겨있다.
피렌체 전쟁
쿠데타(파치 음모 사건)가 실패하자 교황 식스토 4세는 교황령 연합군을 결성하여 피렌체를 침공 했다. 나폴리 국왕 페르디난도 1세는 영토확장의 좋은 기회로 판단하여 교황군과 동맹을 체결한후 그의 아들 알폰소로 하여금 피렌체를 상대로 한 전쟁에 참여하도록 했다. 교황은 우르비노, 시에나, 루카도 전쟁에 가담하도록 만들었다. 로렌초는 시민들을 결집시켜 대항하면서 우방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볼로냐와 밀라노 등 전통적인 메디치 가의 동맹국들로 부터 제대로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전쟁이 장기화 되자 상황은 피렌체에게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전투에서 연패하며 여러 지역들이 함락됨에 따라 피난민이 증가하였고 국토가 파괴되고 도적들에 의한 약탈이 증가하였으며 역병이 창궐한 가운데 잉글랜드가 양모 수출을 중단하자 대량실직이 발생하며 경제가 악화되었다. 전비는 계속 증가하였으나 경기하락으로 전비조달을 위한 추가적인 세금징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피렌체는 실로 건국이래 최대의 난국에 빠졌다.
외교 담판
로렌초는 위기 극복을 위해 특별한 용단을 내렸다. 1479년 12월에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인 나폴리로 직접 가서 볼모 생활을 자청하며 나폴리 국왕과 외교 교섭을 진행했다. 이는 목숨을 담보로 한 매우 위험한 결정으로 교황의 복수의지가 여전하며 나폴리 국왕 페르디난도 1세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교섭은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페르디난도 1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고수였고 속내를 잘 들어내지 않으며 의심이 많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등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렌초는 훌륭한 매너와 뛰어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정세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견해를 제시하였다. 교황이 바뀔때마다 교황청 정책이 종잡을 수 없이 바뀌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점, 피렌체 만큼 가치있는 우방이 없다는 점, 전쟁보다는 평화를 추구하여 위인이 된 고대 통치자들의 선례등을 언급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협상을 지속했다. 3개월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페르디난도 1세를 설득하여 강화조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영웅의 귀환
위험을 무릎쓰고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가 뛰어난 기지와 능력으로 값진 결과를 이루어낸 로렌초가 1480년 4월에 피렌체로 돌아왔다. 풍전등화에 놓였던 조국을 구한 로렌초를 피렌체 시민들은 열렬히 환영했으며 로렌초는 피렌체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한편 소식을 접한 교황은 격노하며 전쟁의 지속을 외쳤으나 나폴리가 이탈하자 그 밖의 도시 국가들도 떨어져 나가버렸다. 자신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것을 인지한 교황 식스토 4세는 어쩔 수 없이 참회라는 형식적 단계를 거쳐서 피렌체에 대한 성무금지령을 철회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성공으로 로렌초는 피렌체 공화국내 헌법 개혁할 수 있게 되어 로렌초는 가문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 후 로렌조는 할아버지인 코시모 데 메디치와 마찬가지로 북부 이탈리아 국가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등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이 이탈리아에 넘보지 못하게 하는 평화 유지 정책을 추진하였다.
로렌초가 정치적으로 잘 한 것도 있지만 무능한 면도 드라마에 잘 나타난다. 아래는 메디치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내용.
로렌초는 뛰어난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 피렌체를 번영하도록 했으며 이탈리아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평화를 이끌었다. 예술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미켈란젤로등 예술가를 후원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무능한 경영인이었다. 기업활동과 금융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금융계 수장이었지만 재무제표도 이해하지 못했다. 전문 경영인을 선정하여 운영을 위임하였을뿐 문화예술 후원과 정치활동에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사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 은행들이 줄도산했는데 1472년 런던지점, 1478년 밀라노 지점, 1480년 브뤼제 지점, 1481년 베네치아 지점이 문을 닫았다. 은행들이 계속 도산하는데도 로렌초는 이를 막기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엄청난 금액을 예술분야에 사용하였다.
증조부 조반니 디 비치로부터 물려받은 유럽 전역에 16개 은행중 15개가 도산했고 1492년에 로렌초가 사망할 당시에는 피렌체 본점만 남아있었다. 금고가 바닥나자 로렌초는 피렌체 정부의 공금에 손을 대기도 했다.
드라마의 끝 부분에 그는 피렌체가 유럽의 중심지가 되는 걸 꿈꿨다고 말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유럽의 중심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전세계로부터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인정을 받으니 말이다.

드라마를 보고 나니 그 많은 메디치들을 조금 씩은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드라마를 보며 내가 한땀 한땀 그린 메디치 가문 인물도. 그림만 보면 복잡하지만 드라마를 봤다면 쉽게 이해가 간다.

시즌 1과 시즌 2의 경계에 선 인물이 국부 코시모의 아들이자 위대한 로렌초의 아버지인 피에로이다. 시즌 1,2에 모두 등장한다. 이에 대한 위키의 설명은 안습.
국부 코시모의 아들 피에로 디 코시모 데 메디치는 겨우 5년(1464-1469) 동안 정권을 잡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통풍을 앓고 있어 ‘통풍병자 피에로(Piero il Gotosso)’라고 불렸으며, 통풍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예술 후원 사업에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다. 병에 걸린 그는 집권기 동안 시간 대부분을 자택에서 보냈으며, 그 결과 피렌체에 대한 메디치의 지배력은 점차 약해져 갔다. 그와 같이 메디치의 통치는 그의 아들 로렌초가 물려받을 때까지 정체되어 있었다.
이러니 이 사람의 이야기는 스킵하고 시즌 2로 넘어가지. 담당 배우도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좀 병약한 모습. 드라마에서는 이 사람의 부인인 루크레치아의 비중이 더 큰 편이다.
몇 년 전 알쓸신잡에서 피렌체 두오모 얘기를 할 때 피렌체 두오모 건설 관련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나온 적이 있다. 두오모 위에 얹힌 거대한 돔의 건설 과정이 궁금했던 나는 그 자료 화면을 검색해봤다. 예상 외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아니라 바로 이 드라마의 장면이라 이 드라마를 보게됐다. 콜럼버스의 달걀도 사실은 부르넬레스키의 일화란 것도 알게 됐다. 아쉽게 드라마에서 두오모 건설 관련된 기술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