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산업 도시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주도이다. 피에몬테어로 Turin이기 때문에 영어로는 Turin이라고 한다. 이탈리아로는 Torino라고 쓴다.

이탈리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고 알려져있고 2006년에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었다.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1861∼1864년에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첫 수도였다.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는 피렌체(1964년), 로마(1871년)로 옮겨졌다. 1946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공화국이 됐다.
“2세기경 세계적인 명장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와 점령한 그곳”
토리노 관광청 홍보총책임자 알레산드라 토르메나 – 트래블바이크 뉴스


도시의 위치는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의 남쪽. 최근 알프스를 사이에 두고 토리노의 건너쪽에 있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도 두 차례나 방문했는데 정작 알프스는 한 번도 못 올라가봤네…
사실 토리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이 곳에 와서야 토리노가 세계적인 축구 클럽인 유벤투스 FC의 홈이자 커피 브랜드 라바짜(Lavazza)의 발생지, 자동차 브랜드 피아트(FIAT)의 탄생지라는 것을 알았다. 또, 예수의 수의가 있는 곳으로 알려진 도시이다. 유벤투스 FC의 홈구장, 라바짜의 첫 가게, FIAT 공장이었던 링고또 빌딩에 대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들 참고.
예수의 수의
15세기에 건축된 토리노 대성당은 오늘날 ‘토리노의 수의’가 있는 곳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이 성당은 토리노 시 최초의 대규모 르네상스 건물이기도 하다.
토리노의 수의란,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물 중 하나이다. 몇몇 이는 이 수의가 예수 그리스도가 매장될 때 입고 있었던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수의에는 유령처럼 희미하게 남자의 앞모습과 뒷모습 윤곽이 나타나 있다. 1453년 이 수의는 토리노를 다스리던 사보이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1357년부터는 조프루아 드 샤르니라는 한 프랑스 기사가 수의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보다 이전에는 누가 소유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볼 수 없으나, 예루살렘, 에데사, 콘스탄티노플 등 여러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의는 1578년 토리노 대성당으로 운반되었으며, 17세기부터는 전용 예배당에 모셔졌는데, 이 예배당은 바로크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훌륭하고 화려한 본보기이다. 1988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수의가 제작된 연도를 측정해 보았는데,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가톨릭교회는 이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수의가 진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1997년 예배당에 화재가 발생해 피해가 일어났으나, 다행히도 한 소방관이 수의를 안전히 구했다. 이 수의는 대중 앞에 공개되는 일이 거의 드물다. 마지막으로 공개되었던 것은 2000년이며, 다음 예정은 2025년이다. 그러나 예배당에 있는 ‘수의 박물관’과 연결된 비디오를 통해 볼 수 있다. 그 진짜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수의는 수세기 동안 헌신적인 믿음의 대상이었으며, 수백만 명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중요한 성물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토리노 대성당 [Turin Cathedral],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토리노 대성당은 진짜로 인정은 안 됐지만, 예수의 수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토리노 대성당에 들어가보진 않고 앞만 지나갔다.
몰레 안토넬리아나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 원래는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으로 지었는데 현재는 영화박물관이다. 토리노는 CIKM이란 학회 때문에 방문한 도시인데 이 학회의 로고와 홈페이지 배너에도 이 높은 첨탑의 이미지와 사진이 들어있다. 이 도시에서는 이 건물이 피렌체의 두오모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는 것 같다. 이 페이지 첫 사진의 우측에 불쑥 튀어나온 돔이 바로 이 건물이다.
건축가 안토니오 안토넬리의 작품인데, 1963년, 유대교 커뮤니티 돈으로 짓기 시작했으나 공사비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늘어나 공사가 중단됐다고. 그 후 토리노 시가 인수하여 1889년에 최종적으로 완공됐다고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토리노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는 높이 167.5미터의 특이한 건물이다.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1861년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고, 그 후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토리노의 상징물이 되었다.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였던 알레산드로 안토넬리의 작품으로, 안토넬리는 수직적 한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노바라에 지은 바로크 양식의 산 과덴치오 교회의 돔(높이 122미터)에서도 나타난다.
1863년 공사를 시작한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산 과덴치오의 설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벽돌 건물의 구조적 능력에 대해서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원래는 토리노의 유대인을 위한 시나고그로 세워졌으나 1877년 토리노 시의회가 사들여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헌정하였다. 거대한 볼트와 아래층의 육중한 베이스에서 솟아오른 건물의 심장부를 채우고 있는 것은 대형 홀과 돔 비슷한 구조물로 거의 다 덮여 있는 안뜰이다. 네 개의 튀어나온 면이 외부로부터 고전주의 포르티코처럼 배치한 등을 향해 결합되고, 그 위로는 첨탑을 세웠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1888년 안토넬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고, 안토넬리 사후에는 그의 아들인 코스탄초가 완공까지 감독하였다. 오늘날 몰레 안토넬리아나는 영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관람객들은 돔의 셔터가 자동으로 닫히며 역사적인 영화의 프로젝션 스크린으로 변하는 순간의 드라마틱한 조명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대한 홀을 올라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다. (출처: 몰레 안토넬리아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