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했던 부처님오신날 연휴 여행을 취소하고, 당일 오전에 예매하고 가서 본 뮤지컬 JCS (Jesus Christ Superstar: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 날 출연 배우들은 마이클 지저스, 지상 유다, 선아 마리아, 동현 헤롯. 마이클리가 포함된 건 만족스러웠다.
지저스는 1997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할 때 보고 두 번째다. 그 당시에도 윤도현씨가 유다를 맡았는데, 유다만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미리 예매했다면 마이클 지저스, 도현 유다를 골랐겠지만…
1997년 12월 11일 한겨레 18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쳐)
잘 알려진대로 JCS는 예수가 죽기 전 일주일 동안의 얘기인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인간적인 고뇌에 괴로워하는 예수와 현실의 혁명을 원하는 유다에 초점을 맞춘 락뮤지컬이다. 한 때 한국 프로덕션들은 원작에는 없는 예수의 부활 장면을 포함하기도 했단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97년 공연에도 마지막에 부활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 대부분 공연들이 잘 만들어져 올라오는데, JCS 역시 잘 만들어져 올라왔다. 내가 JCS 음악을 좋아해서인지, 무척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더 큰 히트 뮤지컬인 오페라의유령이나 캣츠보다 JCS의 음악이 더 좋다. 대표 넘버들도 좋고, ‘Hosanna’나 ‘Everything’s alright’같은 자잘한 합창 넘버들도 좋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곡은 마이클리의 겟세마네와 정선아의 I don’t know how to love him. 공연 중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 겟세마네에서 뒷 부분에 한 번 끊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실수로 박수친 건 챙피함 -_-;
마이클리의 겟세마네. 영상으로만 봐도 소름 돋는다. (Youtube lullumallart님 영상)
미스사이공에서의 마이클리는 노래에 비해 한국어 발음이 너무 부족해서 많이 아쉬웠는데,이번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한국어 발음이 일취월장했다. 화내고, 고뇌하고, 고민하는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잘 연기하고 노래한 그에게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겠다. 97년 JCS공연엔 유다에 비해 지저스가 너무 묻혔는데, 마이클은 아주 훌륭하게 지저스 역을 해주었다. 참, 97년엔 지저스가 외국인이었다. 위 기사에 따르면 Chan Harris란 배우다. 갑자기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니 홈페이지도 있다. 홈페이지엔 97년의 JCS 역에 대해서도 나와있다.
In 1997 he was asked to play Jesus in the Korean-language Jesus Christ Superstar for the Hyundae Theatre Company in Seoul, South Korea. For this role, he was the first foreigner to work as an actor in Korean-language theatre and the first foreigner to win a “best actor” award at the Korean Theatre Awards.
Korean Theatre Awards란건 한국뮤지컬대상은 아닌 것 같고… 상 받은 건 몰랐네. 하여튼 이 외국 배우가 한국어로 연기하던 예수의 모습이 아주 띄엄띄엄 기억이 난다. 마이클리의 한국어 발음보다 훨씬 못했다. ^^
한지상씨의 ‘Superstar’ (Youtube lullumallart님 영상)
한지상 유다. 귀여운 외모에 고음도 잘 질러주지만, 마이클리와 음색이 비슷한 게 아쉬웠다. 지인은 유다와 지저스의 음색이 비슷했기 때문에 “유다와 예수는 결국 같은 사람”이란 해석에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해석했지만 난 유다와 지저스의 음색이 좀 더 대조적이길 바랐다. 유다 vs 지저스 대결로 봤을 땐 난 마이클 지저스에게 한 표.
그래서 마이클 지저스 vs 윤도현 유다가 궁금하다. 한지상 유다가 더 높은 음은 내겠지만 윤도현씨도 그만의 거친 목소리가 매력적이니까.
무대… 싸게 보겠다고 극장 꼭대기엔 A석에서 봐 정면에서 볼 때의 무대가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주 용머리해안을 닮은 무대 장치와 아이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웠던 조명은, 단순하지만 극의 배경을 살리는데 충분했다.
이 공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영어를 가사에 섞어 쓴 것. 요즘 대중가요에도 영어 가사가 섞여있으면 참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JCS는 좀 심하도록 섞었다.
지저스가 시작 바닥이 된 성전의 사람들을 ‘한국어’로 다 쫓아낸 후 갑자기 ‘Get Out!!!!’하고 고음으로 화를 내는데, 너무 웃겨서 풉!!! 하고 웃었다. 그 진지한 장면에서 말이다.
아…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연출의 결정인 것 같은데 의도가 뭔지… 차라리 원어로 공연을 하고 한국어 자막을 넣지… 한국어랑 영어랑 섞어 쓰면 그렇지 않아도 잘 안들리는 가사를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일단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리면 머릿속에 있는 영어 언어 모델과 한국어 언어 모델을 이용해서 언어를 파악한 후 문장의 뜻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 이런 식으로 영어 섞어 쓰는 공연들 다 사라지길.
이 외의 사소한 불만들이 좀 더 있긴 했다. Superstar 씬에서 방송국과 기자들의 카메라가 잔뜩 등장했어야 어울릴텐데, 희안한 가림막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의미하는 걸까?)을 치고 유다와 몇몇만 노래를 부르는 건 낯설었다. 제사장 3인방(정확히 역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음) 역의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지, 저음이 힘겹게 나오는 점도 아쉬움.
그래도 안 좋은 자리에도 불구하고 큰 감동이 있었다.
2013년 5월 17일 오후 6시 30분
샤롯데씨어터 2층 C구역 10열 3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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