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안 가던 키자니아를 1년 3개월 만에 다녀왔다. 목요일이지만 키자니아랑 같은 동네에 있는,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휴일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주말에 비해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보호자 한 명을 무료 입장시켜주는 이벤트가 있어, 아내와 내가 모두 갔고, 만 3세 미만 유아는 무료 입장이라 아들도 데려갈 수 있었다. 즉, 보호자와 어린이 티켓 한 장씩으로 온 가족이 출동을 했다.
한동안 안 간 사이에 로비가 대폭 바뀌었다. 사진만 보면 진짜 공항 같다. 짐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는 보기와는 달리 입장 대기 할 때 앉는 의자다.
입장 방식도 조금 바뀌었다. 예전엔 발권하고 로비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갔는데, 이제는 발권순으로 입장 클래스가 정해진다. 당연히 먼저 발권하면 먼저 입장한다. 줄서서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로비에서 대기할 수 있었다. 우린 일찍 가서였는지 가장 빨리 입장하는 A 클래스였음.
예전엔 발권을 할 때 주는 키자니아 지도를 대기 시간에 딸과 함께 보며 어떤 체험을 어떤 순서로 다닐지 상의 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키자니아에 입장한 후에야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대기 시간에 딸과 할 일이 없어져 아쉬웠다.
이 날 딸이 체험한 직업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던킨도넛 메이커
- 중앙일보 기자
- 해결의 책 상담 (이건 직업도 아니고 그냥 상담을 받은 것…)
- 적성 검사 (이것도 검사를 받은 것…)
- MBC 뉴스 기상 캐스터
- 네이버 대학 수강 (이건 학위 받으려고 수강…)
- 병원 복강경 수술
- MBC 라디오 초대 손님
- 은행 (이건 돈 입금…)
적어보니 직업이라고 체험한 건 몇 개 안 된다. 여러 번 와서인지 직업 체험에 대한 흥미가 좀 떨어진 것 같다. 기다리는 것도 싫어하고 (원래 그랬지만), 남자 애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으면 체험을 안 하려고 해서 직업 체험을 다양하게 못 했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입장한 딸이 최고 인기 체험인 미스터피자나 소방서부터 시작하길 원했으나, 딸은 도넛이 먹고 싶다고 던킨 도넛으로 향했다. -_-;
눈에 보이는 새로운 시설 몇 개 중 하나는 ‘해결의 책’ 상담이란 곳. 예전 하나투어용 버스를 개조해 예전의 암벽등반 코스 아래 세워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급조된 느낌. 하나투어와 암벽등반은 이제 없어졌나 보다. 해결의책 상담은 포츈텔러 체험도 아니고 그냥 상담을 받는 건데, 키자니아에 잘 안 어울리는 시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덴 스킵해줬으면 했으나 딸은 냉큼 들어가보더라.
울 딸은 얼마전 삐끗한 발목에 대해 상담을 했다더라. 상담의 책이 뭐라고 해줬는지는 모르겠다.
또 못 보던 시설 중 아르바이트 안내소란 곳이 있었다. 취업이 힘들어 알바로 연명하는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가? 사람이 많을 때 제대로 된 직업 체험을 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키자니아 판 88만원 세대를 위한 곳이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딸에게 라디오 DJ 체험을 추천해줬는데, 딸은 라디오가 뭔지 정확히 모르더라. 확실히 지난 시대의 미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일까? 라디오 DJ 체험을 하려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딸이 혼자 대기를 했는데, 적어도 참여자가 2명은 돼야 진행을 할 수가 있다고 했다. 가장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는 방송 대본이 3인용인데, 키자니아 직원이 1명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1명이 더 필요했던 것. 꽤 기다려서야 1명 추가 인원을 모집해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방송은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으로 청취자를 초청해 레시피를 공개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스튜디오에 들어가 리허설을 거쳐 방송을 하면 방송국 밖의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흘러나온다. 딸의 목소리가 방송에 꽤 잘 어울렸다. 방송을 녹음한 CD는 3000원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데 별로 사는 사람은 없는 듯. 우리가 산다고 하자 키자니아 스탭은 예상 외였는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라디오 DJ는 딸이 뽑은 이날 가장 재미있었던 체험.
주중 (목요일)이라서 그런지 이른 시간엔 사람이 별로 없어 신문 기자 체험도 딸 혼자서 했다. 중앙일보 기자 체험을 했는데 키자니아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관한 기사를 써야 했나보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없어 제대로 기사를 못 썼다는…
그래서 뜬금 없이 취재 중 캐롤을 부르는 오디션 프로인 “캐롤 스타” 체험에 나섰다. -_-;;; 이건 예전 사진관 체험 장소였던 입구 옆에 생겼다. 나는 창을 통해 딸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스피커를 통해 딸이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딸이 모르는 캐롤이었는지 완전 개판으로 부르더라…. ㅠㅠ. 울 딸 꿈이 가수인데 ㅠㅠ
캐롤을 부르고 다시 취재 현장으로 복귀. 기사를 작성한 후 기사가 인쇄 된 신문을 받아야 하지만 신문사 프린터가 고장나 …. 몇 군데 돈 뒤에 받을 수 있었다.
딸이 체험을 하는 동안 아들은 애기들의 쉼터인 우르바노 하우스에 가서 좀 놀기도 했으나, 누나가 뭘 하는지 궁금했는지 자꾸 쉼터에서 나오려고 했다. 예전엔 유아들이 유치원 원아 역할을 할 수 있는 체험 시설이 있었는데, 유치원 체험 시설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 자리엔 진동 의자가 몇 개 놓인 보호자용 휴게 시설이 들어왔고.
어쨌든 오전 세션 끝까지 알차게 체험을 마치고 온 가족이 모두 지친 채 키자니아를 빠져나왔다. 애들은 신이 나고, 어른들은 몸살이 나는 곳이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예전엔 딸이 체험 들어간 동안 시간이 맞고 사람이 적은 직업 찾아 다니느라고 많이 뛰어 다녔는데, 오늘은 다 포기하고 제 자리에만 앉아 있어 그나마 덜 힘든 편이었다.
처음 오픈 했을 때에 비해 시설이 약간 낡았고, 직업 체험이란 본질에 맞지 않는 시설들이 몇몇 보이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아직 키자니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아이들은 한 번 쯤 와볼만한 덴 것 같기는 하다.
복강경 수술 체험중인 딸. 가위로 혈관을 자르면 피가 쏟아진다고… -_-;
네이버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딸. 아빠는 네이버 다니는 박사인데 너도 박사는 받아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