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뮤지컬 이외에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좋은 기회가 생겨 파슨스댄스컴퍼니 (Parsons Dance Company)의 내한 공연을 보러 가게 됐다. 잘 모르는 단체였는데 미국의 현대무용단이라고 한다. 당연히 창설자는 파슨스 (David Parsons).
공연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6분짜리 Caught와 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는 Remember me. 마치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앞에 짧은 단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Caught은 단 6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척 인상 깊었다. 무용가가 사이키 조명을 켜놓고 뛰어 다니는데, 조명 덕분에 공중 부양을 하고 있거나 공중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키 조명 때문에 닌텐도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도… -_-; 관객은 배우가 공중에 멈춘 장면만 봤지만 그걸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팔딱팔딱 뛰고 있었을 배우를 생각하니 한편으론 우스우면서도 박수를 아낄 수가 없었다. 신시사이저 건반을 찍찍 눌렀을 때 나올 법한 배경 음악도 꽤나 잘 어울린다.
Remember me는 삼각관계를 다룬 레퍼토리. 확실히 뮤지컬에서 보는 군무보다 나은 군무를 보여주었다. 여러 배우가 각자 자연스럽게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모두의 합이 딱 맞아 떨어지면 단순한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다 화음이 들어갈 때처럼 짜릿짜릿 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후반부의 강간 장면인데, 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나려는 여배우의 춤이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돼 ‘아름답게 슬프다’는 표현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특이하게 레코딩된 음악에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가수가 직접 나와 오페라 넘버들을 부른다. 남자 가수 한 명, 여자 가수 한 명이 나오는데, 남자 가수가 지난 미스사이공 공연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한 마이클 리였다. 교포 배우라 한국어 발음이 안 좋은 게 단점이었는데 다행히(?) 이 공연의 음악은 스페인어, 영어 등의 외국어이거나 창이나 아프리카 원주민이 낼 법한 묘한 소리를 내는 곡이었다. 그런데 마이클보다는 여자 가수가 참 잘 했다는 ㅎㅎ.
공연은 멋지고, 열정적이었다. 마지막에 Caught의 조명에 맞춰 전원이 팔딱 뛸 때는 깜찍하기까지 했다. 참신하고 색다른 공연이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낌없이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었고. 아, 그리고 이날 1층 정중앙에 앉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LG아트센터에서 앉은 좌석 중 가장 좋은 좌석이었는 듯.
2012-11-21 수요일 오후 8:00
LG아트센터 1층 14열 17번
VIP석 미투데이 주한미국대사관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