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출장#6-6] 뮤지컬 렌트 러쉬 티켓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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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to get Rent Rush Ticket, SF
사진이 흑백이고 고풍스러운 건물 때문에 옛날 사진처럼 보이나 어제 찍은 사진

전통적으로 렌트(Rent) 공연에서는 공연시작 몇시간 전에 추첨으로 혹은 선착순으로 무대 바로 앞 좌석을 할인된 가격(20$)에 판다. 브로드웨이 초연에서부터 시작된 이 전통은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다루는 이 작품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인 듯하다.

이 전통은 렌트의 투어에 그대로 이어져 이번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도 공연시작 2시간 전에 러쉬 티켓 (rush ticket)이라고 불리는 20$짜리 한정된 수량의 할인티켓을 선착순으로 판다. (단 현금 결제만 가능) 샌프란시스코 직전의 내한 공연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적용해서 ‘얼리버드석’이란 이름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할인된 가격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표를 원하고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때는 극장앞에서 밤을 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정가 $100에 비하면 한참이나 싼 이 표를 노리고 주말 일찍 샌프란시스코의 극장으로 향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2시 공연의 러쉬티켓은 12시에 판매를 시작하므로 10시에는 극장에 도착해야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10월 10일 토요일, 아침 8시가 안됐는데 눈이 뜨였다. 알람도 안맞춰놨는데. 샤워하고 옷입고 나오니 8시 20분. (이 와중에도 기록을 남기려고 카메라를 들어 시계를 찍었다. –V)

Way to get Rent Rush Ticket, SF

호텔 로비에서 도넛과 바나나를 하나씩, 오렌지쥬스를 한 잔 부어 들고 차에 올라 북쪽을 향해 악셀을 밟았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무료주차 Bart(지하철)역인 Dali City에 도착하니 9시 정도. 이 근처에서 프레지던츠컵이란 중요한 골프대회를 하는지 지하철 역에 이와 관련된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렌트 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골프 구경이나 갔으면 하고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_-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향하는 Bart에 오른다.

Way to get Rent Rush Ticket, SF
Dali City 지하철역의 골프 대회 플래카드

Powell 역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Curran Theater를 향해 올라가 9시 30분쯤 극장에 도착했는데…

극장 앞에는 이미 적어도 20명은 기다리고 있다. ㅠㅠ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낚시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담요 꽁꽁 싸매고 앉아 있는 사람 등등, 노숙자 모양새의 사람도 꽤 된다.

Way to get Rent Rush Ticket, SF

주윗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제일 앞에 후드티 뒤집어 쓰고 있던 금발의 여자 애는 새벽 6시에 왔단다. (내가 영어로 말은 잘 못하니 주워 듣기만 한다 –) 별로 부지런해보이지 않는 미국애들도 이런 면이 있구나 싶기도 하더라. 이 추운 날, 공연 좀 싸게 보겠다고 네들이 고생이 많다. 하긴, 몇십불 아껴보겠다고 일찍 줄선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다. ㅋㅋ

2년 전쯤 이 극장의 뮤지컬 Jersey Boys 러쉬티켓의 수가 17장이었고 이번에도 그 정도 표가 준비돼있다고 가정할 때 한명당 최대 표 두장씩을 살 수 있으니 내가 러쉬티켓을 손에 쥘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일단은 줄 끝에 앉아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해본다. 어차피 다른 할 일도 없기 때문에. (이때 포기 안하길 참 잘했다. ㅎㅎ)

제 돈 내고 낮 공연을 볼 것인가, 아니면 저녁 6시까지 계속 줄을 서 있다가 저녁(8시) 공연의 러쉬티켓을 살 것인가?

극장 문턱에 앉아 가져온 논문을 보기 시작한다. 30분 정도는 열심히 읽었는데 돌바닥에서 엉덩이로 올라오는 냉기를 참기 힘들다. 옆에 앉아 끊임없이 통화를 하고 있는 여자는 이 추운 날씨에 짧은 치마를 입고도 잘 앉아있다. 다리엔 닭살이 잔뜩 돋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에서 내린지 좀 된 공연이지만 렌트의 인기는 여전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12시 10분전에 가도 5명 줄 서 있는 남태평양과도 비교된다. (하긴 남태평양의 러쉬티켓은 자리가 무지 않좋다.)

내 뒤에 서 있는 여자 둘은 저녁 5시까지 기다려서라도 저녁 공연 러쉬티켓을 사고 말거란다.

나는 추워서 저녁까진 못기다릴 것 같았다. Jersey Boy 러쉬티켓 구할 때 추웠던 교훈을 바탕으로 이번엔 한국에서 가져온 옷을 꽤 껴 입고 왔는데도 춥다. 극장 앞이 북향인데다 그늘까지 져서 그렇다. 따뜻한 LA 같은데면 줄서서 기다릴만 하겠다.

내 뒤로도 사람들이 붙고 붙어 꽤 많은 사람들이 떨면서 극장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지만 냉철한 극장직원은 공연 2시간 전인 12시에 칼 같이 문을 열었다.

Way to get Rent Rush Ticket, SF
매표소 문 열 때 되니까 다 일어나는 사진

줄의 제일 앞에서부터 표를 사기 시작하고 줄의 중간쯤 위치한 내 주변 사람들은 제발 러쉬티켓이 남아 있기를 기도하며 줄어드는 줄을 따라 움직였다.

내 뒤에 있던 여자는 이 공연을 보러 샌디에고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운전해서 왔단다. 저녁 공연을 보면 한밤 중에 한참동안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꼭 낮 공연 러쉬티켓을 샀으면 좋겠단다. 겨우 1시간 가량 운전한 나의 절실함은 이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줄이 꽤 줄어든 후에 초록자켓을 입은 직원이 나와 20$짜리 러쉬티켓은 다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현금 30$짜리 할인티켓을 추가로 판다고 한다. 러쉬티켓처럼 무대 바로 앞은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진 자리의 표라고 하는데 좋은 자리일 것 같진 않지만 30$이란 가격은 여전히 메리트가 있다. 몇몇 사람은 줄에서 이탈해 저녁 공연 러쉬티켓 대기 줄에 다시 서더라. 진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드디어 기다리던 내 차례가 와서 창구 앞에 섰고, 1층 측면박스석과 2층 뒷쪽 중앙 좌석 중 고르라고 한다. ‘공연은 무조건 앞에서‘란 소신을 가진 나는 1층 측면 박스석을 택했다.

Box seat of curran theater

나중에 극장에 들어가 보니 무대 양쪽에 높이 세워진 스피커에 가려 좌측박스석에선 무대좌측의 1/4 (위 그림에서 무대 중 빗금 우측 하단 부분)은 안보인다. 하지만 무대 중앙이나 우측은 무척 잘 보이고, 무대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배우 얼굴도 잘 보인다.

1막은 그 자리에서 보고 (좌석배치도에서 빨갛게 색칠된 사각형) 2막 시작 전에 비어있는 1층 측면 좌석(좌석배치도에서 빨간 네모)으로 옮겨 시야가 가리지 않는 자리에서 잘 봤다. 한국에서와 다르게 샌프란시스코에선 극장에서 자리 옮긴다고 직원이 뭐라고 하는 경우를 한번도 못봐서 종종 이렇게 했고 (그렇다고 심하게 옮기진 않았다) 다른 관객들도 이런다. 목요일 저녁에 왔을 때 내가 2막에서 본 자리 정도가 75$이었는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목요일에 그 자리에서 그 돈 주고 안 본게 참 잘한 듯.

극장 문 앞에서 줄선지 30분 정도 됐을 때, 냉정히 생각해서 낮공연의 러쉬티켓을 살 가능성이 0%이고 저녁까지 기다려 저녁공연 할인 티켓을 사기도 싫으니 그냥 제돈 주고 낮공연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줄에서 벗어나 길건너 스타벅스에 앉아서  커피나 마시면서 매표소 오픈을 기다리는 최적의 행동을 택하지 않은 우유부단한 이 마음. 어쨌든 결과는 좋았으나 일할 때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 한번 더 보고 싶은데, 러쉬티켓 줄 설 자신이 없다. ㅎㅎ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극장 앞 스타벅스 사진. 일행이 같이 온 사람들은 막 먹을거 사다 공수해 오는데 나는 혼자 외로이 줄서서 기다려야 했다. ㅠㅠ

Way to get Rent Rush Ticket, SF
Curran Theater 앞 스타벅스

공연 후기는 다음 편

5 responses to “[SV출장#6-6] 뮤지컬 렌트 러쉬 티켓 구하기”

  1. 가현엄마&가혀 Avatar
    가현엄마&가혀

    우리가 같이 같음 스타벅스에서 먹을 것도 사다주고 줄도 바꿔서줬을텐데~
    얼리버드는 아빠랑은 안어울려요~

    1. dr.chung Avatar
      dr.chung

      그러게.
      하지만 가현이는 추운데 오래 못기다릴텐데.
      울고 불고 안아달라고 난리칠텐데 :p

  2. 하얀우유꿀꺽 Avatar
    하얀우유꿀꺽

    저도 한국 공연 때 5시 반쯤에 왔었는데.
    할인티켓의 경쟁률은 대단하죠.^^

    1. dr.chung Avatar
      dr.chung

      허걱, 새벽 5시 반에요? 대단하세요!

  3. […] 붙였다) 한국에서부터 반드시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으며 지난 주말에 힘겹게 할인티켓을 구해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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