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꼭 보고 싶은 문화(?) 두개가 투우와 플라맹고였다. 지난 번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는 둘 다 안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보려고 했다. 보통 투우는 일요일에 하는데 마침 우리가 마드리드에 간 날이 일요일이어 투우장 Las Ventas에 가서 티켓을 사고 시작 시간인 오후 6시에 맞춰 경기장에 입장했다. 경기장은 꽤 넓은데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 일부러 잘보려고 꽤 비싼 자리를 샀더니 제일 앞자리다.
‘투우’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로는 사람과 소의 싸움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를 잡는 의식에 가깝다. 사람과 소가 맞짱을 뜨는 것이 아니다. 싸움이라고 보면 투우사라는 치사한 상대와 싸우는 소가 불쌍할 뿐.
일단 1:1의 싸움이 아니다. 각 투우사 (정확히는 마따도르)는 5명의 부하(?)를 데리고 나온다. 이 중 두명(삐까도르라고 한다)은 갑옷으로 무장한 말을 타고와서 소를 긴 창으로 찌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세명(반디리예로)은 맨몸으로 소 등에 두개의 짧은 창을 꽂는 사람.
흠… 부하들이 다 창으로 꽂고 찌르면 투우사는 뭘 할까? 바로 창을 맞아 피를 흘리는 소를 데리고 잘난 척이란 잘난 척은 다 하고 한 방에 소를 죽이는 역할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나쁜 황제 같지 않은가?
시작 시간이 되면 빵빠레가 울리며 오늘의 출연진이 등장한다. 하루에 여섯 경기를 하는데 세명의 투우사가 나온다. 즉, 각 투우사가 두번씩 등장하고 총 여섯 마리의 소가 오늘 경기에 죽어 나가는 것이다.
경기가 시작 되면 한쪽 문이 열리고 검은 소가 달려나온다. 그러면 세 명의 투우사가 나와 제각각 핑크색 망토를 흔들며 소를 옆으로 스쳐보낸다. 만약 소가 투우사에게 돌진하면 얼른 경기장 외곽에 마련된 방어벽 뒤로 숨는다. 방어벽과 바깥 펜스 사이가 매우 좁아 이 사이로 소는 뿔을 들이밀수가 없다. 배 나온 사람은 절대 투우사가 될 수 없을 듯.
곧 긴 창을 들고 말을 탄 부하 두명이 등장한다. 소가 말 옆을 들이 받으면 말을 탄 사람이 소를 창으로 찌른다. 소가 세게 받으면 말이 들썩이기도 한다. 말도 불쌍하다.
창잡이들이 긴창으로 소를 적당히 찌른 후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세명의 짧은 창잡이들이 등장한다. 이 세사람이 가장 스릴있는 작업을 한다. 짧은 창 두개를 양손에 각각 들고 자신에게 소가 달려오면 소 목에 창 두개를 꽂는다. 제대로 창을 꽂으려면 소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왔을 때 꽂아야 하기 때문에 살짝 피하며 창을 꽂는다. 소가 창에 찔리면 멈칫하기 때문에 이 때 옆으로 피하는 것. 물론 창을 제대로 못꽂는 경우도 많다. –; 소가 열받아 달려들면 창잡이는 얼른 펜스를 넘어 필드 밖으로 도망간다. 펜스를 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몸이 날랜 것을 알 수 있다.
총 세명이 창을 총 여섯개 소등에 꽂으면 (물론 다 성공적으로 꽂히는 경우 여섯개다) 드디어 주인공인 투우사가 등장한다. 굉장히 느끼하고 거만한 자세로 망토를 흔들며 소를 도발한다.
소가 달려오면 투우사는 살짝 피하며 망토를 쓸어 내린다. 이 작업을 몇 번씩 하는데 이때의 자세가 꽤나 멋지다. 투우사가 두 발을 땅에 고정시키고 허리를 살짝 굽히며 팔만 움직여 망토로 곡선을 그릴 때 특히 아름답다.
이렇게 느끼하게 소를 도발하고, 달려드는 소를 아름답게 피하는 장면을 몇번 연출한 뒤 경기장 밖에 있는 동료로부터 긴 검을 받아든다. 그리고 몇 번 더 소를 가지고 놀다가 마지막 순간, 검으로 소를 겨냥한다. 그리고 소가 투우사에게 달려오면 살짝 피하며 검을 소의 목에 찔러 넣는다. 손잡이도 잘 안보일만큼 깊숙히. 그러면 소는 피를 토하며 무너지듯이 쓰러진다.
가이드 북에 따르면 잘싸운 투우사에게는 소의 귀를 잘라준다고 하는데, 첫 경기의 투우사가 소의 귀를 받았다. 소의 귀를 들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 관중들이 모두 손수건을 꺼내 흔드는데 그 광경이 아름답다. 투우사가 우리 앞에 왔을 때 투우사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는데 미남이다. 투우 실력 뿐 아니라 마스크도 굉장히 중요한가보다. 펜스 뒤에 날래게 숨어야 하므로 몸매 관리도 중요할 듯.
첫 경기부터 소 귀를 잘라 주길래 원칙적으론 잘 싸운 경우에만 잘라주지만 실제로는 남발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경기부터 여섯번째 경기까지는 소 귀를 받은 경우가 한번도 없었고 실제로 첫번째 경기만큼 깔끔한 경기도 없었다. 투우사가 검을 찔러 넣을 때 제대로 못 넣어 검이 들어가다 마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꽂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소한테 제대로 걸려 소를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꽤 비싼 자리를 사서 첫 줄에 앉았지만 실제 소와의 싸움은 우리와 반대쪽 부근에서 일어나 잘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안 본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더라.
그리고 아래는 카메라 설정을 잘못해놓은 걸 모르고 투우장 바깥을 찍은 사진. 이 카메라에 아직 익숙치 않아 설정을 잘못 놓고 찍은 경우가 꽤 많다. 위에 있는 사진들도 저렇게 쨍쨍한 날에 ISO를 800이나 놓고 찍었다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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