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회 첫날 점심 때 먹은 샌드위치 세트
7월 22일, Main Conference가 시작되었습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 오전 session을 듣고 점심 시간이 됐습니다. 학회 장 앞에 Diagonal Mar 라는 쇼핑몰이 있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할 만한 곳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알고보니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을 1시 30분 정도부터 먹기 때문에 우리의 식사 시간인 12시에는 식당들이 문을 잘 열지 않는 것이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문을 연 음식점 중에서 제일 먹을만한 샌드위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샌드위치 4쪽과 콜라를 포함한 세트 사진이 메뉴 옆에 있어서 손짓과 안통하는 영어로 그걸 시켰는데, 종업원이 쇼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십여 종의 샌드위치 중에서 4개를 고르라고 하더군요. 속에 뭐가 들어있는 샌드위치인 지도 모르고, 또 “두번째 줄에 있는 왼쪽에서 3번째 샌드위치”라는 식으로 말을 사용하지도 않고 고르려니 되게 힘들더군요. 우리 일행 4명이 4쪽씩, 총 16번을 골라야 했기 때문에 주문에만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리고 기껏 먹은게 저 위에 사진의 샌드위치 세트죠. 기름지지 않은 음식이라 먹기엔 괜찮았지만,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는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학회의 오후 세션이 끝난 시간은 저녁 5시 경. 우리는 음악분수쇼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가이드 북에 따르면 한 번 공연에 수억이 든다는 바르셀로나 음악 분수쇼.
음악분수쇼는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다가 지나쳤던 에스빠냐 광장에서 했는데, 우리는 버스를 이용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버스 노선도는 대부분의 큰 버스 정류장의 유리 벽에 붙어있습니다. 제가 바르셀로나에서 감동먹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바르셀로나 시내 버스 노선도입니다. 바르셀로나의 지도 위에 모든 버스의 노선이 표시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란 도시 자체가 작아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도시 안의 버스 노선 수가 적어서 가능한 것인 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관광객에게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되는 노선도였죠. 목적지만 알면 무슨 버스를 어디서 갈아타면 되는 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스 노선도에 감동 먹어서 사진을 찍어 온다는 걸 깜빡 했군요. 쩝)
거기다 우리는 학회에서 받은 5일 교통권(버스, 지하철, 트램 등을 5일 동안 무한정 무료로 탈 수 있는 카드)이 있어서 버스를 잘못 타더라도 내려서 딴 버스를 다시 타면 됐기 때문에 버스를 잘못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죠.
우리는 호텔에서 41번 버스를 타고 에스빠냐 광장 근처인 Rocafort역에서 내려 에스빠냐 광장까지 걷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그리고 당연히 계획대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지도를 보고 계획한 여정이 실제 상황에 딱딱 맞아 떨어질 때의 기분은 정말 좋습니다.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죠). 스페인 입국 첫날, 버스 안에서 멋지다고 감탄을 한 그 광장입니다. (이날, 제 카메라는 충전이 덜된 관계로 들고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온통 도길이와 희철이의 사진기로 찍은 사진들만 있습니다. 사진기를 안들고 가니 편해서 좋더군요.)
▲ 에스빠냐 광장 중앙에 있는 분수대 (분수쇼를 하는 분수대가 아님) 앞에서
▲ 역시 에스빠냐 광장에서. 저 두개의 탑은 마치 반지의제왕 1편에 나왔던, 계곡 양쪽에 서 있던 거대한 석상을 연상시켰습니다.
두 탑을 지나 언덕 위에 위치한 까딸루냐 미술관 (원래는 무슨 궁전이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의 분수에서 음악 분수쇼가 펼쳐집니다.
▲ 까딸루냐 미술관과 주변의 분수. 가운데에 있는 분수가 바료 음악분수쇼의 분수
일단 분수쇼를 보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분수쇼가 시작되는 8시 반가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올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면 좋은 자리에서 못볼 것 같아 굶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저녁 8시 반은 다가오고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몰려왔습니다. 분수쇼가 시작되기 직전, 몰려든 관광객을 상대로 불쇼를 보여주고 동전을 챙기는 영특한 entertainer도 잇었습니다. 🙂
드디오 8시 반이 되고 분수 주위의 스피커에선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생각외로 분수쇼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분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광경을 보았거든요 (분수가 사람이나 유령처럼 보였습니다.) 여러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지만 관광객에게 뭔가 더 볼거리를 제공해주기 위하여 이런 분수쇼를 하는 듯 합니다.
▲ 분수쇼
여러 시간을 기다렸던 분수쇼는 약 10~20분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잠시 쉰 후2부를 시작하는 걸 알았지만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엉덩이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더 이상 구경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돼서 일어나고 말았죠.
다시 버스를 타러 Rocafort 역으로 걸어가면서 식당을 찾다가 지하철 역 근처의 식당 하나를 결정하여 들어갔습니다. 웨이터가 메뉴를 가져왔는데 스페인어로 된 메뉴였습니다. 우리가 글자로만 이루어진 메뉴판을 보고 난감해 하자, 웨이터는 이건 beef, 이건 pork, 이건 salad, 식으로 대충이나마 음식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또 다른 웨이터가 “8개국어 대역 음식 리스트”를 휙 던져주더군요.
▲ 8개국어 대역 음식 리스트
예를 들어 메뉴에 스페인어로 “ABCDEFG”란 음식이 적혀 있으면, 이 리스트의 스페인어 색인에서 ABCDEFG란 음식을 찾아 해당 페이지를 펼치면 까딸로니아어, 불어, 영어, 독어, 중국어, 등으로 된 해당 음식 이름이 나오는거죠. 물론 이 다국어 리스트에 한국어 번역은 없었습니다만, 영어 번역을 보고 3명 모두 beef steak 류의 음식을 시켰습니다. 와인 한 병과 함께 말이죠.
▲ 우리가 시켰던 음식
매우 오랫동안 기다린 후 (이 사람들은 모든 일이 여유만만인 것 같습니다.) 주문한 요리가 나왔습니다. steak은 기대했던 두꺼운 고기가 아니라 꽤 얇은 고기였습니다만, 꽤나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었기 때문에 모두 즐겁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음식은 5.75 유로 (8000원 정도?), 와인 한병은 8유로 (12000원 정도). 적당한 가격의 괜찮은 식사였습니다.
▲ 스페인에서 처음 먹는 제대로 된 음식과 와인에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 -_-;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11시 20분 정도.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이런, 버스 정류장에 붙은 버스노선도를 보니 우리가 탈 41번 버스의 막차는 11시 15분에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탔습니다.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호텔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날 저녁에 햄버거를 먹은 곳이 이 지하철역 주변이어서 알고 있음),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가니 동서남북이 구별조차 안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험을 즐기는 편이라 감으로 한방향을 정해서 주욱 걸어갔는데, 몇 분 걸으니 아무래도 그 방향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밤 12시가 다 돼서 깜깜한 상황. 벽에 붙은 거리 이름과 지도를 비교해보며 해변쪽 (호텔이 해변 앞에 있음)을 갸늠해봤지만 쉽지 않더군요. 마침 옆을 지나가던 스페인 사람 2이 있어서 지도와 함께 해변쪽을 가고 싶다고 했더니 방향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려던 방향하고 다른 방향을요. ^^;
그렇게 늦은 밤에 혼자 골목길을 다녔다면 되게 겁이 났을텐데, 도길이, 희철이랑 같이 다니니 겁나는 건 하나도 없더군요. 오히려 스페인 사람들이 깜깜한 밤, 골목길에서 동양인 3명을 보면 더 무서워 했을 지도. 흐흐.
▲ 셋째날, 우리들이 간 곳들. 호텔 및 학회장이 있는 곳과 분수쇼를 하는 에스빠냐 광장이 멀어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멀지는 않았음 (학교에서 강남가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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