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for COLING2000 (2) – 낭시

▲ LORIA의 COLING Tutorial Session에서 만난 한국 분들과 함께 LORIA앞에서

LORIA 찾아 삼만리


다음 날(7/29)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튜토리얼이 있는 LORIA라는 연구소를 찾았다. 우리가 묵은 호텔이 학회측에서 안내한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호텔에는 튜토리얼 장소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어서 일단 밖으로 나갔다. 학회 홈페이지에서는 XX행 Y번 버스를 타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 버스가 어디서 서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역 앞에서 상주형이 근무하는 동경대의 학생들 3명을 만나, 우리 일행은 7명이 됐고, 동방에서 온 불쌍한 7명의 학회 참가자들은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맸다. 한참을 헤매다가 버스안내소를 찾게 됐고, 그곳 근무자와 전혀 말이 안통하는 가운데, 지도를 놓고 얘기한 결과 우리가 가야하는 버스 정류장을 찾게 되었다. (말이 안통하는데도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줬음)

이곳의 버스는 깨끗하면서도 조용했다. 어떤 버스는 차량 2대를 이어서 운행하는 것도 있었고, 우리 나라 버스처럼 차량 한 대로만 이루어진 버스도 있었다. 버스에는 문이 2~3개 정도 있었다. 이 문을 통해서 일단 버스를 탄 다음에, 자신의 버스 카드가 있는 사람은 버스 안에 설치된 요금 계산기에 버스 카드를 넣으면 자동으로 버스 요금이 계산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버스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기사한테 가서 즉석에서 돈을 주고 1회용 표를 산 후, 요금 계산기에 카드를 넣어 계산을 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요금을 안내고도 탈 수 있을 듯한 시스템이다. –;

이후에 독일이나 룩셈부르크에서 보게 된 버스도 표 모양만 달랐지, 버스의 형태는 대동소이했다. 최근 딴지일보에서 독일의 버스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읽었는데, 이 버스는 휠체어나 유모차 같은 걸 쉽게 태울 수 있도록 차체가 약간 문쪽으로 기울어 질 수가 있다고 한다. 원래 이곳 버스의 문턱 자체가 우리 나라 버스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인데도, 차체를 기울여 편의를 제공한다는 말인데 참으로 놀랍다. 또 프랑스나 독일 버스들은 각 정류장에 붙어 있는 시간표 대로 버스가 움직였는데, 교통 체증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거의 오차 없이 버스가 시간표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 시간표를 맞춰 버스를 운행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 같은 총알 버스는 있을 수도 없다고 한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다시 버스에 타 있는 우리 일행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버스에서 내리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미 버스 안내소에서 하차할 정류장까지 알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하차한 곳에서 LORIA를 찾아가는 것! 하차한 장소에는 LORIA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나와 용재형은 학회측에서 제공한 LORIA 주변 지도를 나름대로 해석해서 아무렇게나 발을 옮겼고, 그 뒤를 우리 동양인 일행 및 버스에 같이 탔던 또 다른 학회 참가자들이 따랐다. 그런데 그 길은 잘못된 것이었고, 다행히 또 다른 학회 참가자가 제대로 된 길을 알아냈다. 그 결과, 우리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 후,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몇 분을 걸으니 대학 건물 같은 것이 나왔고, 우리가 찾고 찾던 LORIA라는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LORIA란 낭시 제 2 대학 내에 있는 하나의 건물, 즉 하나의 연구소 이름이었기에, 낭시의 대부분의 사람이 몰랐던 것이다. (이건 마치 고려대학교 안에 있는 “자연계 생활관”이란 건물을 찾으려고 안암동 주민에게 “자연계 생활관이 어디 있죠?”라고 묻는 것 – 물론 우리는 자연계 생활관이 고려대학교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알고 있는 상태이고, 지역 주민들은 자연계 생활관 따위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 과 같은 거다.) “LORIA”란 이름을 가지고 이 곳을 찾아오려고 한 우리가 바보지…

LORIA 건물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 안에 들어가 등록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문에는 왼쪽 방향으로 가라고 표시되어 있고, 그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한참 돌아가면 다시 오른쪽으로 가라는 화살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화살표를 만들어 놨는지, 그 때는 진짜 몰랐었다. 역시나, 한참을 헤맨 다음에야 왼쪽으로 가라는 화살표는 건물 안에 들어가는 입구를 표시하는 것이고, 오른쪽으로 돼 있는 화살표는 특정 튜토리얼을 하는 건물을 향한 화살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학회를 할 때 우리가 화살표를 붙여놓으면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헤맬까? 오늘 겪은 모든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생각해봤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예상외로 꼼꼼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결국 등록은 무사히 했지만 꽤나 지각을 해 버렸고, 튜토리얼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어서 슬펐다. 그곳에서는 오전, 오후에 있는 coffee break에는 빵과 커피를, 점심에는 빵과 샐러드(그나마 빵보단 샐러드가 낫지)를 제공하였다. 또 저녁에 있었던 리셉션에서도 빵과 과자를 제공하였다. 이 날 우리는 총 5회에 걸쳐(아침에 호텔에서 먹은 빵도 포함) 빵을 먹게 되는데, 주로 밥을 먹는 나에게는 큰 문화적 충격이자 기록이었다. 리셉션 직전에는 작은 강당에서 피아노 및 노래 공연을 했는데, 노래가 언제 끝나는지 몰라 박수 치는 타이밍을 놓치는 고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빵과 과자, 그리고 오렌지 주스에 백포도주를 탄 듯한 음료는 아무리 먹어도 못마땅한 음식이었기에, 우리 일행 4명을 비롯한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2명, 모두 6명은 LORIA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새로 추가된 일행 한명의 안내를 따라 낭시에서 가장 중심가라는 곳을 향했다. 중심가라는 곳을 향하는 도중,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길 여기 저기에 똥이 널려 있는 것이다. –; 지뢰밭처럼 말이다. 어떤 똥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어떤 똥은 눌려 짖이겨진 형태로 널려 있었는데, 이는 아마 주인을 따라 거리를 산보하는 개들의 분비물인 듯 싶다. 낭시에는 길에 엄청나게 많은 개들이 있었다. 아주 작은 개부터 곰만한 크기의 개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개들이 주인의 손에 이끌려, 혹은 주인을 이끌며 활보하고 있었다. 이 많은 개들이 길에 똥을 싸는데도 주인들은 치울 생각을 않는지, 온 길이 똥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똥을 피해 걷기 위해 하이힐을 발명했다는데, 역시 그럴 만한 나라다, 싶었다. 우리는 이 도시에 “똥시”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Place Stanislas (Stanislas 광장)

▲ Stanislas 광장

골목 골목을 거쳐 들어가자 갑자기 광장과 함께, 광장을 둘러 싼 화려한 장식의 3층 석조 건물, 그리고 금칠을 한 검은 창살이 보였다. 이곳은 바로 Place Stanislas란 곳. 폴란드 왕이었던 Stanislas Leszczinski가 1737년 로레인(낭시가 위치한 지역명)의 군주가 되자, 그의 사위인 프랑스 왕, 루이 15세를 찬양하기 위해 이곳에 광장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1752년 3월에 초석이 섰고, 1755년 11월 완성되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루이 15세의 동상을 세웠었는데, 대혁명 때 없어지고, 1831년에 낭시 시를 위해 많은 일을 한 Stanislas의 동상이 다시 세워지게 됐다. 광장의 사방에는 Stanislas의 건축가였던 Emmanuel Here가 설계한 프랑스 고전적인 형태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유산 중의 하나이다. 출국 전에 인터넷의 낭시 관광사무소 웹사이트를 들어가 봤는데, 그 웹사이트에 사진으로 많이 나왔던 바로 그 광장이었다. “무지하게 멋지다!”라는 감탄과 함께 사진을 마구 찍은 후, 그 근처의 공원을 잠깐 돌아보고 계속 길을 걸었다.

▲ Stanislas 광장의 Stanislas 동상 앞에서

길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하루 종일 빵만 먹은 후라 뭔가 괜찮은 걸 먹고 싶었다. 저녁 시간이라 일반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식당은 모두 영업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여서 어제 밤에 안보이던 사람들이 다들 식당 안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식당밖에 붙은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 본 후, 한 식당을 골라 들어가서 각자 먹을 것을 주문하였다. 또 프랑스에 온 만큼 와인을 안먹을 수가 없어 와인도 함께 시켰다. 난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특별히 맛이 뛰어나다는 것은 모르겠지만 양이 많다는 점에서 해피했다. ^^ 다른 사람들이 스테이크를 시켜서 함께 프렌치 프라이스(French Fries)가 나왔는데, 프랑스에서 먹어보는 프렌치 프라이스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됐다. 물론 프렌치 프라이스 맛은 맥도널드의 그것보다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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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회에서 만난 한국 분들과 함께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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