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회 참석차 1999년에 베이징에 다녀온 후 놀러 다닌 얘기 위주로 적은 후기입니다.
1999. 11. 4
베이징에서 Natural Language Processing Pacific Rim Symposium이라는 학회가 있어서 연구실 사람들 3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향했다. 무협지 앞에 실리는 칼라 화보의 주무대인 중국이라…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도착한 곳은 Bejing Capital Airport. 지은지 얼마 안되는 공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깔끔 그 자체. 중국하면 떠오르는 약간 지저분한(–;)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미리 도착해 있던 지도 교수님과 다른 학교 교수님, 그리고 우리의 베이징 여행을 도와줄 조선족 여행 가이드 아가씨를 만났다.
베이징에 체류할 시간은 총 4박 5일. 그중에 3일은 학회에 참여해야 하고, 마지막 날은 짐 싸서 공항으로 와야 하기 때문에 결국 관광을 할 날은 베이징 도착 당일, 하루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에 와서 어찌 관광을 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래서 워크샵이 있는 학회 첫날은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일단, 베이징 Capital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도 들르기 전에 짐을 그대로 들고 택시를 타고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재미있는 점은 택시 크기에 따라 요금제가 다르다는 것. 요금제는 차 창문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택시 기사와는 전혀 말이 안통했다. 영어가 전혀 안통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중국말을 못하고, 중국 택시 기사는 우리말을 못한다.) 가이드까지 전체 일행이 8명이어서 택시를 2대 이용했는데,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조선족 가이드 단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일단 목적지를 택시기사에게 말하면 4명은 그 차를 타고 떠나고, 뒷 택시에 그녀를 포함한 4명이 타고 따라오는 형식으로 이동을 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택시 기사와는 대화 자체가 안되므로 이동중에는 매우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래서 잠도 잘왔다. 깨보면 목적지였다.
베이징은 첫느낌이 뿌옇다. 스모그 때문인지 하늘이 제대로 안보였다. 전체적인 건물의 색상도 칙칙했다. 그런 색깔만으로도 ‘사회주의 국가’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상관이지? -_-a)
하여튼 택시는 사진과 방송을 통해서 많이 보던 천안문 광장 한 귀퉁이에 멈췄다. 천안문 광장. 엄청~나게 넓었다. 총면적은 40만 평방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넓은 광장이란다. 나중에 느꼈지만, 중국은 뭐든지 크다. 첫 관광 장소인 천안문 광장에서부터 중국의 “한넓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천안문에는 역시나,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사진의 크기도 어마 어마 했다. 그 사진 아래에 문이 있는데, 그 문을 통과하며 지나 가면서 ‘이 때 이 사진이 떨어지면 깔려 죽겠군’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천안문을 지나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관광지 “자금성”으로 들어갔다.
천안문을 지나가니 엄청나게 큰 문이 하나 있었다. 남대문? 광화문 우습다. 중국을 우리 수준으로 보지 말라. 자금성의 대문 격인 “우문”이라는 문인데, 세계에서 제일 큰 문이란다. (옆의 사진을 보라. 나와 문의 크기를 비교하지 말고, 문 아래 서 있는 사람의 크기와 문을 비교 해보라. 이건 문이 아니다. –;; 그냥 ‘건물’이지.)

하여튼 이 문을 지나가면 또 이만한 문이 몇 개 더 있다.
재미 있는 것은 각 문마다 작은 문 (문 아래 있는 구멍 -_-)이 5개인가 3개씩 있다는 것인데, 가장 가운데 있는 문으로는 황제만이 다녔다고 한다. (뭐, 황제말고도 다른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경우가 몇 경우 있다고 하는데 다 까먹었다.)

자금성의 전체적인 배색을 보면 벽은 자주색이고, 지붕은 황금색이다.(중국 사람들 금색 엄청 좋아한다.) 참고로 자주색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란다. 그리고 자금성에는 방이 9,999칸이 있다고 한다. 하여튼 엄청나게 큰 건물인데, 다 보려면 한도 없고, 우리처럼 바쁜 사람은 그냥 가운데 길 따라 쭈욱 끝까지 봐야 할 것이다
위에 본 것과 같은 문을 몇 갠가 지나면 위 사진의 건물 (건물 앞에는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 건물은 태화전이라고 하는데 황제 즉위식 등등의 중요한 행사를 할 때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에서도 본 기억이 난다. 높은데 서서 이 넓은 광장에 가득 서 있는 병사와 신하들을 보는 황제의 기분은 끝내줬으리라.
태화전 뒤로 보화전, 중화전과 같은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 되어 있다. 처음엔 그 웅장함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는데, 보다 보니깐 그 건물이 그 건물 같아서 지루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흐흐
‘그게 그거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발길을 이어갈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
오옷.. 그 풍경은 내가 중국에 와서 본 그 어느 것보다도 멋진 장면이었다.

자금성의 건물은 크게 앞 면에 있는 건물 3개(‘외조’ 라고 한단다.)와 뒷면에 있는 건물 3개(‘내정’이라고 함)로 나뉘어 진다고 한다. 앞서 본 태화전, 보화전, 중화전이 외조의 세 건물인데, 주로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고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던 곳이라고 하고, 뒤의 세 개 건물은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앞 건물의 세 개는 지상 위에 쌓아올린 3개층 위에 존재하고, 뒷 건물을 ground level에 존재하는데, 내가 바로 그 때 본 풍경은 3개층 위에서 바라본 뒷 부분의 궁궐의 모습이었다. 금빛 기와가 얹어져 있는 궁궐의 담은 층층이 겹쳐져 보이는데, 마치 여러 마리의 용이 꿈틀꿈틀 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중앙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주욱 걸어가면 이제는 눈에 익은 비슷 비슷한 건물들이 나타났고, 황제의 정원이었다던 곳을 거쳐 자금성의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천단으로 향했다. 천단은 황제가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배가 고픈 우리는 일단 입장 전에 군고구마를 사 먹었다. (오옷.. 중국에 군고구마라니..) 중국 고구마는 한국 것보다 조금 더 크고 오렌지 색이었던 것 같다. 맛은 비슷했고…
입구에서 끝까지는 상당히 멀어서 여전히 한참을 걸어다녀야 했다.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그 넓은 천안문과 자금성을 걸어 다닌 직후라 보고 뭘 느끼고 할 것도 없었다.
기억 나는 것은 회음벽. 벽 자체가 동그랗게 생겼는데, 벽을 향해서 말을 하면, 소리가 둥근 벽을 따라 돌기 때문에 멀리서라도 그 벽을 보고 있으면 그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 곳에 있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벽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직접 실험은 안 해봤다. 회음벽이 둘러 싸고 있는 공간의 중간 쯤 위치한 곳에서는 박수를 허공에 대고 치면 공중에서 박수소리가 메아리 쳐진다고 해서 허공을 향해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그 어수선함은 말로 다 못한다.
계속 걸어가면 끝 부분에 원구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 역시 책을 통해 눈에 익은 건물이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천단을 둘러 보며 가이드로부터 들은 바가 상당히 많았는데, 모두 다 까먹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천단”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한 번 해보시길. ^^
대충 첫날 관광을 마친 후, 호텔로 들어가서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였다. 저녁 식사는 호텔 부근의 중국 식당에서 했는데,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예전에 홍콩에서 먹던 오리지널 중국 음식 맛은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었다~
호텔에서 중국 TV를 보며 (볼 만한 건 홍콩 영화 정도? 한자 및 영어 자막이 나와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
1999. 11. 5.
이튿날, 북경 교외로 나아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관광을 시작했다. 다행히 어제와 같이 택시를 나눠 타고 이동하는 형식이 아니라, 미니 버스를 빌려서 이동했다. 여러 모로 편리하였다.
우선 명나라 황제들의 무덤이 몰려 있는 곳 13릉(13명의 황제의 묘란다.)으로 갔다. 사실 북경 안에서는 산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금성 뒤에 산이 하나 있는데, 이건 원래 있던 산이 아니라 사람들이 흙을 쌓아서 만든 산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중국 스타일이다. -_-;) 원래 북경이 있는 곳이 광활한 평야이기 때문에 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북경 교외로 나가니 능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3릉 중, 공개가 되어 있는 정릉이라는 곳으로 갔다. 이런 묘를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다. 돌로 되어 있는데 튼튼하기 여지 없었다. (옆의 사진은 정릉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별칭이 “지하 궁전”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정릉 구경을 마치고 산 꼭대기에 있는 호수 같은 데로 갔는데 이름이 기억안난다. (용경협이던가?) !.!

그리고는 만리장성 관람. 사실 만리장성은 알려진 명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많이 회손되었기 때문에 복원을 한 후 관광객에게 open을 하는 형식이라 어떤 “역사의 냄새” 같은 것은 별로 나지 않았다. 올라가는데 힘만 들 뿐. (옆의 사진에서 내가 입은 옷을 보라. 저런 옷 입고 만리장성 올라가면 진짜 덥고 땀난다. –;;;;)
하지만 모택동이 그랬다던가? 장성을 올라가보지 않은 자는 사내가 아니라고. 그래서 중간쯤 올라가서 놀다가 내려와 버렸다.

역시 저녁은 어제 식사를 했던 호텔 앞 중국 식당에서. 만리 장성을 등산(?)한 후에 하는 식사라서 진짜 꿀맛 같았다.
이걸로 베이징 관광은 끝이고, 그 다음 날부터는 학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999. 11. 6~8
사실 학회 얘기는 별로 할 것이 없다. -_-;

학회 중간에 호텔 바로 옆에 있던 북경 동물원에 갈 뻔(!) 했던 일이 있었다. 호텔 바로 옆에는 북경 동물원의 입구가 있었다.
중국에 왔으니 팬더를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동물원 입구로 갔다. 입장권을 끊는데로 가보니, 그곳은 북경 동물원 내의 수족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리고 수족관의 입장권은 너무나 비쌌다. 팬더 하나를 보기 위해 그만큼의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서는 수족관을 안보고 팬더만은 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위의 사진처럼 북경 동물원 간판 앞에서 사진만 찍고 호텔로 돌아와 학회에 참가하여야 했다.
가장 부담이 됐던 학회에서의 발표는 나름대로 산뜻하게(^^;) 마쳤고, 발표를 한 날 밤에는 호텔 앞 조그마한 상점에서 산 맥주 및 만리장성 가는 도중의 상점에서 산 중국 술을 마시며 호텔 방에서 파티(?)를 하였다. 중국 술은 맛이 참 좋았다. 빼갈과 비슷한 맛이라고나 할까? ^^
그 다음은 별로 쓸 얘기가 없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밤, 북경에서 상당한 번화가로 나갔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인데, KFC와 베스킨라빈스 31 등도 보였다. 심지어 한 쇼핑몰 지하에는 Starbucks Coffee까지 있어서 놀라웠다. 상당히 건물들이 화려했다. 지금까지 본 중국의 이미지와는 틀리다고나 할까?
그리고는 11월 8일 아침,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북경 Capital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행 대한 항공에 탑승했는데, 비행기가 떠날 시간이 됐는데도 안 뜨는 것이다. 기내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비행기가 출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당시 화제였던 “언론대책문건”의 작성자라는 문일현 전 중앙일보 기자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서 탄 비행기가 우리가 탄 비행기였고, 그 사람이 비행기에 늦게 탑승해서 그랬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에서 천천히 내렸는데, 만약 빨리 서둘러 내렸다면 많은 기자들 사이에 둘러 싸일 뻔 했다. ^^;
글을 마치며 ‘중국’에 대해서 정리하자면
크다, 뿌옇다, 싸다
정도의 키워드로 압축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