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for COLING2000 (3) – 낭시 to 자브뤼켄

▲ 자브뤼켄의 호텔 주변(정확히 어디인지는 까먹었음). 뒷편의 하얀차가 SMART란 찬데, 진짜 작다. 오른편에는 현대의 ATOZ도 보인다. SMART는 ATOZ의 절반정도밖에 안된다.
▲ 샐러드를 점심으로 먹고 있는 나와 원호

프랑스의 화장실

7월 30일(일요일)은 자부뤼켄으로 떠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밥을 먹은 후 다시 잤다. 오전에 들을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시쯤 일어나서 짐을 싸 가지고 다시 LORIA로 향했다. 도착하니 딱 점심 시간이어서 샐러드와 빵을 먹을 수 있었다. 만족할 만한 식사는 아니지만 밖에서 사먹으려면 다 돈이 아닌가? ^^;

식사를 마치고 들어야 할 튜토리얼을 들었다. 그런데 이 LORIA의 화장실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화장실에 있는 소변기의 ‘높이’인데, 그 높이가 매우 높아서 발 뒤꿈치를 들어야지만 그나마 편안하게 일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아, 이 유럽 사람들이 키가 크다 보니깐 이렇게 높은 위치에 소변기를 달아 놨군. 엽기적인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른쪽을 돌아보는 순간 그 생각이 잘못됨을 깨달았다. 내 오른쪽 옆에는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프랑스 아저씨가 아무 문제 없이 볼 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유럽 사람들은 키가 큰게 아니라 다리가 긴 것이었다! 옆의 프랑스 아저씨는 키는 나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나보다 길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하긴, Orly 공항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 곳 사람들은 몸의 2/3가 다리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으니… (좀 오버했나? –;)

화장실에서 나와 이 얘기를 용재형한테 해주었더니, 용재형은 Orly 공항에서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 주었다. 화장실 변기가 너무 높아서 다리가 땅에 안닿아 힘을 주기가 힘들었다는 경험담. ^^;

낭시에서 자브뤼켄으로

하여튼 튜토리얼은 무사히 끝났고, 학회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Main conference가 열리는 독일의 자브뤼켄(Saarbrücken)으로 이동해야 했다. 버스는 총 3대였는데, 자브뤼켄에서 묵는 호텔에 따라서 자신들이 타야할 버스가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 꼼꼼치 못한 프랑스 인들이 버스에 목적지 호텔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한 버스 화물칸에 짐까지 싣고 편히 앉아 있다가 다른 버스로 짐을 들고 갈아타는 황당함을 경험했다.

자브뤼켄은 낭시에서 가깝다고 알고 있었지만 예상외로 버스로 3시간이 넘어 걸린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교통표지판에 우물라우트가 보이는 순간 독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국경을 넘었지만 특별한 절차는 전혀 없었다.

차내에서 바라본 독일은 건물의 모양부터 프랑스와 차이가 났다. 지붕이 뾰족하며 전체적으로 단순한 건물들. 프랑스의 평평한 지붕과 정교한 장식으로 꾸며진 건물들과는 차이가 명백했다.

자브뤼켄은 깨끗해 보였다. 도시 한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강 주변 잔디밭에 피크닉을 나온 듯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프랑스보다 잘사는 독일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중에 알고봤더니 이 자브뤼켄은 독일 중에서 잘사는 편엔 못드는 도시라고 한다. 이 도시는 독일의 한 주인 잘란트(Saarland)의 주도(State Capital)인데, 잘란트라는 주 자체가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이기 때문에 주도도 가난하다고 한다. 현지 유학생의 “서독 속의 동독”이라는 표현으로 우리는 이 도시의 성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이 지방이 독일 땅이 된 얘기가 재미있다. 이 역시 이 곳 유학생에게 들은 것인데(정확히는 기억이 안난다.), 원래 이 땅이 프랑스 땅이었다가 2차 대전 때인가 독일에게로 넘어 갔다고 한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을 하면서 이 땅의 소유권 문제를 결정해야 했는데, 이를 이 지역 주민들의 투표에 맡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독일은 패전국이어서 병역의 의무가 없었고, 반면 프랑스에서는 병역의 의무가 있었다고 한다.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두 독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땅은 그 이후로 독일의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 땅은 그런 역사적 배경과, 프랑스에서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독일마르크와 프랑스프랑이 모두 통용되는 듯 했다.

도착하는 날의 저녁은 호텔로 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한 한국 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주문하며 빵에 질려서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는 얘기를 하였는데..

후중 :
역시 한국인은 밥이예요. 빵에 너무 질렸어요. 하루에 빵을 5번이나 먹은 적도 있어요.
주인 아줌마 :
빵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독일 빵 참 맛있어요.
상주형 :
저흰 지금 프랑스에서 막 오는 길이라서요, 프랑스 빵만 먹었어요.
주인 아줌마 :
어머, 프랑스 빵은 더 맛있죠!!!
우리 4명 :
–;;;;

과연 이 아줌마와 대화가 통할지 의심이 되었지만, 다행히 주문에는 문제가 없었다. 간단히 불고기 2인분과 김치찌개 2인분을 먹었는데 그야 말로 너무너무 맛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인심이 후하신 편이라 밥과 김치를 무한정 갖다가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을 수 있었다. 음료는 맥주와 사이다를 섞은 것을 마셨다. 독일에서 이런거 마시는게 유행이라고 하는데, 마셔본 결과 “영 아니올시다”였다. –; 이렇게 먹은 음식 값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7~8만원. 높은 물가의 동경에서 살다 온 상주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학교 앞의 3000원짜리 밥을 주식으로 해온 3명의 고려대학교 대학원생은 많이 놀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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