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닥터 지바고 – 음악이 좋은 작품

아내가 내 생일 선물로 내가 좋아하는 김지우씨가 출연하는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예매해줬다. 볼 생각을 안 했던 공연이었는데, 쌩큐 베리 머치임! 어떤 작품인지 좀 찾아보니 원래는 2006년, 샌디애고 La Jolla Playhouse에서 선보였다가 오디뮤지컬컴퍼니랑 외국 제작사가 함께 브로드웨이 입성을 목표로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고쳐 만든 것 같다. 작년에 호주에서 첫 공연을 올린 후 한국으로 옮겨 와 공연 중. 호주와 한국을 테스트 베드로 사용하며 작품을 다듬고 있는 것이지 (완벽한 작품이 아니면 티켓 가격 좀 낮췄음 좋겠다). 뮤지컬 드림걸즈랑 좀 비슷한 케이스인 듯 (둘 다 오디에서 제작).

Musical Dr. Zhivago, Feb 2012

남녀 주인공인 지바고와 라라의 역은 더블 캐스팅을 했는데 이 날 공연은 홍광호씨와 (당연히) 김지우씨 공연. 이제는 오페라의유령의 팬텀과 라울, 지킬과하이드의 지킬 같이 굵직한 역을 두루 거친 ‘미친 가창력’ 홍광호씨는 4~5년 전에 스위니토드 무대에서 본 후 두번째로 보게 되는 거다. 그 당시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홍광호씨의 노래 실력 덕분에 조연임에도 머릿 속에 뚜렷히 남아 있다.

김지우씨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많이 썼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생략. 작년에 렌트의 미미를 맡았을 때도 김지우씨가 기존에 보여준 이미지와 다른 역을 맡아 좀 놀랐는데, 닥터지바고에 출연 한다는 것에도 많이 놀란 편. 그동안 해보지 않은 클래시컬 뮤지컬에서의 모습도 기대가 됐다. 극중 역이 ‘마성의 라라’라고 불리는 매력 만점 여성인데 빛나는 외모가 그 역의 연기에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했다. 이 두 주인공 외의 최현주, 강필석, 서영주 같은 조연들도 다들 정상급 배우들. 캐스팅은 일단 합격 점수.

Musical Dr. Zhivago, Feb 2012

좌석은 3열(이라고 하지만 앞에서 두번째 줄) 최우측 좌석. 3열 시야가 안 좋다는 후기를 보고 갔는데 정말 시야가 안좋다. 앙상블이 벽이 되어 주인공들을 가리는 경우와 주인공들의 뒷통수만 보는 경우도 아주 많아 화가 날 정도였다. 여러 공연을 봤지만 이렇게 사이드에서 시야가 안 좋은 경우는 처음이다. 무대에 살짝 경사를 뒀는데, 그 경사가 있어 무대 앞쪽 사이드에 앙상블이 서 있어도 무대 뒷편 중앙의 배우가 관객에게 보일 거라고 생각을 한걸까? 엄청 할인을 해 주는 다른 공연의 시야 방해석에서보다도 공연 관림이 불편했다. R석의 ‘R’이 Royal(왕가의)을 의미하는데 왕족을 이런 자리에 모셨다간 제작자는 막바로 귀향가야 할 판. 반드시 중간 블럭에 앉으시길.

musical Dr. Zhivago seating chart

플레이디비와 유튜브에서 한국과 호주 쇼케이스 영상을 보고 갔다. 중요 넘버들이 귀에 익어서인지 Lucy Simon의 뮤지컬 넘버들은 훌륭하다! 뮤지컬이 음악이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하지만 좋은 음악과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공연 자체는 아십다. 격변의 시대에 싹튼 격정적 사랑이 표현돼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홍광호 지바고 (홍바고)와 김지우 라라 (지우라라) 사이의 케미스터리가 영 별로다. 누구는 김지우에 비해 홍광호의 키가 크지 않아서란 말도 하더라. ^^ 홍-김 페어의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라 사랑 테마곡을 부를 때도 별로. 둘이 사랑에 빠진 걸 관객이 느끼기에 스토리가 너무 부실 했으며 연애 표현에 필요한 섬세한 연기도 부족했던 것 같다.

스토리 상으론 지바고가 라라를 처음 봤을 때 강한 인상을 받고, 2년 후(던가?) 길에서 두번째로 봤을 때 매력에 빠졌어야 하는데 그런게 안 느껴졌다. 그 이후 전장에서 만나 함께 의사와 간호사로 일하면서 내일이 오지 않을지 모르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전쟁에서 산전 수전을 같이 겪으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싹 트는 장면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정작 나온 장면은 위태로운 병사 한명을 순싯간에 회복시킨 것과 병사에게 뇌물을 주는 장면 (소위 말 하는 ‘기적’드립이 터지는 두 장면)… 참 이해 안가는 극본과 연출이로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판 사랑과 전쟁 – 불륜 소재니까 ㅎㅎ. 그런데 진짜 전쟁이 나오는 ㅋ- 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랑 축이 힘이 없으니 전쟁 축 역시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작품 전체가 약해 진다.

그래도 이 작품의 대표 넘버라고 할 수 있는 “Now”가 나오는 장면은 참 좋았다. 노래의 처음이 지바고와 라라의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랑 고백 편지 내용이지만 지바고와 라라의 고백으로 변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넘버 자체도 훌륭하다. 비록 이전까지의 내용 때문에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아 ‘쟤네들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긴 하지만 ㅎ. 아.. 진짜… 이 장면 전에 베르테르의 ‘번갯불에 쏘인 것처럼’ 같은 넘버가 하나 쯤은 나와 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요즘 베르테르 음악을 자주 들어 이런 생각이…)



[미디어코난] 프레스콜에서 홍광호-김지우가 부른 “Now”. 그리고 뒤 이어 홍광호의 “Ashes and Tears”.

그 외에 기억 나는 장면. 라라가 파샤와 결혼식을 올리고 “When the music played”를 부르며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 라라가 끔찍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부르는 넘버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노래와 춤, 그리고 샴페인에 빠져들던 순간의 황홀감이 함께 표현되는 노래.

그리고 2막 뒷부분에 나왔던 “On the edge of time”. 홍바고와 지우라라의 듀엣곡이다. 음악은 좋았지만 이 둘 사이의 사랑이 절절함이 느껴지기엔 이전 이야기가 부족해 듀엣곡 매니아인 나도 별 감흥이 없었다. 번역도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다. 가사에서 이 곡의 제목을 “벼랑 끝의 시간에”라고 번역 했는데, 우리말적인 번역은 아닌 것 같다. 보통 ‘벼랑 끝에 몰리다’라는 말은 쓰지만 저런 식의 연어는 안 쓰지 않나? 지루한 스토리에 지쳐갈 즈음 이 노래를 들으니 공연에 빠져들기 보단 홍팬텀(혹은 라울)을 못 본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 홍바고의 묵직한 중저음이 매력적이며 달콤해서, 이 곡의 멜로디가 오페라의 유령의 “All I Ask of You”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홍의 음색과 팬텀, 혹은 라울은 잘 어울렸을 것 같다. 홍바고는 노래할 땐 목소리에 감정을 잘 싣는데, 노래를 안하고 대사를 칠 때는 섬세한 감정을 잘 못 살리는 느낌이다. 아쉬웠음.

섬세한 감정 연기가 장점이라고 생각한 파트너 지우 라라의 연기도 좀 부족한 느낌. 공연에서 라라는 대담하게 저격하고, 당차게 남편을 찾아 전쟁터로 뛰어 든다. 적어도 지바고와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강단 있는 여자라고 판단 되고 그게 ‘마성의 라라’의 근본이 되는 매력일 것 같은데, 지우라라의 연기에서 그런 인상은 못 받았다.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 연출의 의도인가? 그래도 지우라라는 전체적으로 기대한 정도의 모습은 보여 줬다. 와이프도 김지우씨 노래 좋다는 얘기를 했고. 처음 금발이너무해에서 연기 하는 걸 보고 관심을 가진 김지우씨가 점점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 그런데 지우씨 가발 쓴 모습이 상당히 신경 쓰였음. 처음 등장 했는데 얼굴과 가발의 경계면 부분이 너무 티가 나서 극 내용과 무관하게 자꾸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리더라.

내가 이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배우는 배역의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려워 기억도 안나는 서영주씨. 전두환의 ‘왜 나만 갖고 그래~’ 톤(?)과 비슷한 억양의 대사가 처음엔 조금 이상했지만 점점 더 귀에 익숙해 지며 캐릭터로 자리 잡아 갔음. “늑대가 문 여는 건 아직 못 배웠나보지”같은 주옥 같은 대사들도 많고 ㅋㅋ.무엇보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씹어 발음해 듣기에 좋았다.

공연 스탭들은 공연 진행에 신경을 좀 더 쓰고 집중 해야 할 듯. 마이크가 늦게 켜진 경우가 몇 차례 있었고, 심지어는 노래 한곡 (“Love Finds You”)전체 동안 필석씨 마이크가 계속 꺼져있었다 – 와이어리스 배터리가 없었나? 강필석씨 독창 할 때는 무대에서 가까워 강필석씨 생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5중창으로 연결되는 곡이었음. 본의 아니게 관객들은 4중창을 듣게 됐다는. 그 와중에도 강필석씨는 결연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 좀 웃겼다. 배우가 불쌍. 이 곡 참 좋은데 아쉽다. 또 빨치산에서 탈출하는 장면부터는 홍광호씨의 와이어리스 줄이 옷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옷 밖, 그 것도 앞 쪽으로 나와 덜렁 거려 계속 눈에 거슬리기도 ㅜㅜ.

원작이 그런진 모르겠지만 파샤가 자살 한 후의 뒷 부분은 극본 짜기에 지친 제작진이 급마무리를 하는 느낌. 투덜대기도 힘들다. 이 글도 급마무리를 해야겠다. -_-;; 하여튼 아쉬운 면이 많은 작품. 그래도, 아니면 그래서인지 한 번쯤은 더 보고 싶구나. 연기가 강점인 조승우 지바고의 공연도 궁금하다.

2012-02-07 오후 8:00
샤롯데씨어터 1층 C구역 3열 34번
R석 110,000원 이지웰 40%할인

“뮤지컬 닥터 지바고 – 음악이 좋은 작품”의 2개의 생각

  1. 오빠가 뮤지컬 보고 와서 이렇게까지 불만을 쓰시는 건 처음 본 듯한 느낌. 심지어 뮤지컬계의 이말년이라 하셨던 ‘늑대의 유혹’에 대한 리뷰도 이보단 나았던 듯.^^ 아마 기대치가 있어서 더 그렇겠지요? ^^ 요즘 논문에 긴축재정까지 겹쳐 뮤지컬 못 보고 있는데 으아아.ㅠㅠ 아쉬워요.

    1. 늑대의유혹은 초대권으로 봤고 지바고는 돈 내고 봤으니깐 ㅋㅋ.
      그런데 지바고 음악은 완전 좋다는. 아직까지 지바고 음악이 머릿 속을 맴돌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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