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팸어랏 – 대놓고 웃기는 작품

미국에 스팸어랏이란 코미디 공연이 있다는 얘기를 몇년 전에 들었고 한국에서 공연을 시작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더왕과 관련된 뮤지컬 카멜롯을 미국에서 너무 지루하게 봐서 동일 소재인 스팸어랏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상륙한 스팸어랏을 보고 포복졸도 했다는 지인들의 평이 트위터에 많이 보여 이 공연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얼마 전 무척 즐겁게 봤던 코미디 뮤지컬인 톡식히어로가 떠올라 스팸어랏을 보기로 결정.

At the lobby of theater for Musical Spamalot
공연장 로비에서 박아더와 아내

At the lobby of theater for Musical Spamalot
저 무셔운 토끼!!!! 이렇게 보니 더 무섭다.

(이후 스포일러 있음)

공연 시작 전, 핸드폰을 끄라는 안내 방송부터 날 웃게 만든다. 잉글랜드를 소개했는데 핀랜드 안무가 나와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낄낄 웃게 된다. 곧 이어 등장하는 주인공 아더왕의 말 발굽 소리에 또 한번 뻥 터지고, 야자열매가 잉글랜드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논하는 로빈과 베데베르의 씬에서도 역시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이 뒤에도 웃기는 씬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줄줄이 등장한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란 소재는 카멜롯이나 스팸어랏이나 같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스팸어랏의 모든 씬은 관객을 웃기기로 작정하고 만들어 졌다. 흔히 보는 코미디 뮤지컬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모든 순간 웃기는 것에 집중했다.

Musical Spamalot Dress Rehearsal

[사진: 스팸어랏 공식 카페] 원탁의 기사들.

그런데 보다 보니 너무 대놓고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웃기는 척 하면서 능청스럽게 웃겨야지 정말 웃긴 법인데 대놓고 웃으라고 하니 은근함의 매력이 없다. 예를 들어 호수의여인과 갈라하드가 부르는 ‘The song that goes like this’ 같은 곡은 뻔뻔하게 불러야 더 웃길텐데, 너무 오버해서 부르니 재미가 좀 떨어진다. (이 곡 가사에선 뮤지컬 러브송은 원래 오버해서 부르는 거라고 하지만 ㅋ) 신의 목소리로 등장하는 박명수의 목소리는 오버의 절정. 최근 본 톡식히어로와 비교하면 웃은 양은 스팸어랏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코미디로서의 재미는 톡식히어로가 나았다. 톡식의 코믹 넘버인 ‘Hot toxic love’와 위에 언급한 ‘The song that goes like this’를 비교해보면 (둘 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곡들 ㅜㅜ) 코믹한 가사를 진지하게 부른 ‘Hot toxic love’가 훨씬 더 우아하게 웃겼다.

Musical Spamalot Dress Rehearsal

[사진: 스팸어랏 공식 카페] The song that goes like this의 장면. 사진은 구원영씨와 예성군.

이 작품의 빼어난 장점은 한국화가 참 잘됐다는 것. 이런 류의 코미디를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권으로 옮기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공연은 별 거슬림 없이 받아들여진다. 하나의 예: 공연을 보며 2막의 소위 ‘연예인 송’ (You Won’t Succeed On Broadway)의 원가사가 뭐였을지 무척 궁금했다. 미국이나 영국에도 연예인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경우는 많은지, 그에 대한 비판은 어떤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원가사를 찾아보니 원래 이 곡은 번안된 가사와는 전혀 다른 ‘유태인 송’이었다. 브로드웨이 작품에 대한 유태인의 영향력을 노래한 넘버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번안인가? 연초에 본 금발이 너무해가 현지화가 무척 잘 돼서 감탄을 했는데, 스팸어랏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히 한국화 된 작품이다.

Musical Spamalot Dress Rehearsal

[사진: 스팸어랏 공식 카페] 재범씨. 이게 연예인 쏭 장면이였던가?

배우 중에선 역시나 주인공 정성화씨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오버가 난무한 가운데 정성화씨는 절제된 코미디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그 적절한 선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역시나 훌륭한 배우. 그 외에 기억에 남는 배우는 김재범씨. 약간 콧소리 나며 또렷한 재범씨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스팸어랏에서는 공주 역까지 맡아 (어울리지 않게) 제대로 코미디 연기를 보여줬다. 아, ‘The song that goes like this’에서 근사한 목소리로 신영숙씨와 듀엣을 부른 박인배씨의 목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이 분 노래 잘하시던데 솔로나 듀엣처럼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이 없었는 듯.

Musical Spamalot Dress Rehearsal

[사진: 스팸어랏 공식 카페] 좋은 배우 정성화씨와 김호씨. 원작에선 패시(김호씨)가 알고보니 유태인이라고. 이 설정은 한국 공연에선 빠졌다.

집에 와서 위키피디아를 뒤져보니 기억과는 달리 이 공연에 넘버가 엄청 나게 많다. 1막 14곡, 2막 14곡이다. 공연 때에는 몇 곡 없다고 느꼈는데 코미디에 음악이 묻힌거였던 것 같다. 뮤지컬인데 음악이 묻혀버린게 아쉽다. 뭐 어쨌든 엄청 웃긴 공연인 건 사실.

배우: 정성화 (아더왕), 신영숙 (호수의여인), 정상훈 (란셀롯), 김재범 (로빈), 김대종 (베데베르), 박인배 (갈라하드), 김호 (패시)

At the lobby of theater for Musical Spamalot


2010년 11월 02일 오후 8시 00분

한전아트센터 1층 N열 011번

R석 초대권 구입: 30,000원

PS: 처음으로 중고물품동호회에서 초대권을 돈 주고 사서 보러 갔는데, 같은 R석이라도 초대권용 블록이 따로 있는 듯. 기획사마다 다르겠지만.

스팸어랏
  • 공연기간 : 2010.09.28 ~ 2011.01.02
  • 공연장소 : 한전아트센터
  • 출연 : 박영규,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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